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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 일기

개천절 남한산성의 승마, 자주쓴풀, 개차즈기, 고사리삼, 쥐깨풀, 미꾸리낚시

by 모산재 2008. 12. 11.

 

금요일, 개천절입니다.

 

오늘은 마음 공부 하자 다짐하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갈피 없이 흩어지는 마음 다스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 동안 잘 보지 않던 책들을 뒤적뒤적 하다가

창문 열고 내다보니 볕살이 따스하게 쏟아집니다.


넋을 놓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자꾸만 손짓하며 불러냅니다.

 

 

배낭 주섬주섬 챙겨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마천행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아무도 마주서서 따뜻한 눈길 건네 주지 않는 풀꽃들 찾으며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그리움 얼른 지워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동안 봉오리인 채로만 머물고 있던 승마,

작년 이맘때쯤 처음 눈인사 나눴던 자주쓴풀,

좁쌀보다 작은 보랏빛꽃을 피우고 있을 개차즈기,

오늘은 이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등산로 초입 그늘진 언덕 풀섶에서 뜻밖에 고려엉겅퀴를 만납니다.

 

성벽을 배경으로 따스한 볕바라기하는 등성이에서나 만났던 녀석인데...

 

 

 

골짜기 등산로 옆 습기 많은 땅에서

물뚝새인지 좀물뚝새인지 아직 내 능력으로는 구분하지 못하는 녀석을 만납니다.

 

 

 

대암개발나물은 어느 새 반구형의 열매를 달았습니다.

 

 

 

길 따라 걷는 것이 지루할 듯하여 '크로스컨트리'하기로 합니다.

 

벌써 가을이라고 그렇게 무성하게 우거졌던 덤불이 스러지고

벌나비도 보이지 않는 휑한 숲 속은 적막감조차 돕니다.

 

 

무슨 풀이 저런 빛깔일까 하고 살펴보니

아무래도 주름조개풀이 변한 모습인 듯합니다.

 

 

 

누리장나무는 가을햇살을 잘 갈무리하여

어느새 옥구슬보다 영롱한 열매를 달았습니다.

 

 

 

골짜기 옆 언덕에서 '심봤다~.' 고사리삼 복이 터졌습니다.

 

며칠 전 대모산에서 두어 포기 만난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여기저기 제법 군락을 이룬 녀석들을 만나 한동안 시간을 보냅니다.

 

 

 

지나가던 아저씨 여인들, 너나없이 무슨 보물이나 만난 건가 싶어

카메라가 가리키는 곳을 살펴보곤 저마다의 감탄사를 던지고 지나갑니다.

 

 

텐트 넓이 만한 산속 작은 밭 옆에서 미꾸리낚시를 만납니다.

 

며느리배꼽(며느리밑씻개가 아니라)처럼 꽃잎 벌어진 것 보기 쉽지 않은데

이 녀석은 딱 한 송이꽃을 피워서 나를 감동시킵니다.

 

 

 

밭고랑에 자라난  전초 10cm의 땅꼬마 풀꽃,

쥐깨풀입니다.

 


맑은대쑥도 여느 쑥과 닮은 작고 볼품없는 꽃들을 피웠습니다.


 

 

물길 되어 패여나간 적막한 등산로 신나무 그루터기 아래로  

가녀린 이고들빼기 한 그루 환한 불꽃을 피웠습니다.

 

 

 

제비꽃이 여름을 지나면 이렇게 잎자루가 길어진 모습을 합니다.

무얼 기다리느라 저리 목을 빼고 있는지...

 

 

 

몇 번이나 찾아서도 봉우리인 채이던 승마가 꽃을 피웠습니다.

 

아니 철을 지나 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열매를 조랑조랑 단 나비나물은 벌써 꼬투리가 여물어갑니다.

 

 

 

지난해 꽃 핀 자주쓴풀 몇 포기 발견했던 곳 지나며

몇 번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아주 실망스런 마음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직도 꽃 한 송이를 달고 있는 나도송이풀을 만나 아는 척합니다.

 

 

 

늘 그 정체가 궁금했던, 이제는 나래새라고 생각하는 녀석을 제대로 담아보려고 애써 보는데

어두운 숲에서 가녀린 몸을 똑딱이 수준의 카메라가 잘 잡아내지 못해 아주 애를 먹습니다.

 

 

 

얼씨구, 기대했던 곳에서 만나지 못한 자주쓴풀을 전혀 뜻밖의 곳에서 만납니다.

 

딱 한 송이 꽃만 피웠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인지라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얼른 사진 몇 장 담아 두고

행여나 사람들 눈에 띄어 상할까 걱정되어 주변 억새를 휘어잡아 가려줍니다만 글쎄...

 

그리고 만나는 또 한 그루의 자주쓴풀,

이 녀석은 아주 길가에 노출되어 있어 어떻게 보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선의를 믿을 수밖에...

 

 

 

(그런데 얼마 뒤 흐드러지게 꽃 피었을 모습을 상상하며 찾았을 때 흔적조차 사라진 그 실망감이란...)

 

 

산성축제가 열리고 있는지 성가퀴 위에는 깃발들이 힘차게 나부끼고...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 사이 도톰하게 솟은 언덕에

보기 좋게 서 있는 담배풀 전초를 담아 봅니다.

 

 

 

뒤에서 따라오던 한 여자분이 무슨 꽃이냐고 말을 건네옵니다.

 

이러구러 꽃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 찍는 나와 보조를 맞추며 걷는데

이 땅의 산들을 아주 많이 다닌 분인가 봅니다.

 

꽃들이 많은 산과 위치를 일일이 열거하며 알려주더니

지금 지나온 곳에서 만났던 자주쓴풀의 자생지 정보도 귀띔해 줍니다.

 

여기선 거리가 먼 곳이라 오늘은 틀렸고 다음 주쯤엔 가 볼꺼나...

 

 

예전엔 그늘돌쩌귀로 불렀던 녀석이 아닐까 싶은 녀석을 만나는데

지금은 통합된 이름인 투구꽃으로 부르면 될 듯합니다.

 

 

 

 

개차즈기가 무더기로 자라던 곳을 찾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몇 포기 찾는데 아주 애를 먹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꽃이 제대로 피지도 않았거니와

숲그늘과 함께 서녁하늘 구름이 태양을 가린 탓으로 사진이 제대로 담기지 않습니다.

 

 

 

 

키가 닿지 않는 높은 언덕에 있어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이 녀석 담느라 낑낑대는데

함께하던 여자분은 좋은 사진 많이 담으라며 인사하곤 먼저 사라집니다.

 

 

숲그늘 덜한 곳에서 만난 명아주 꽃봉오리는 그런대로 잡히는구만...

 

 

 

밀려오는 어둠에 꽃가지를 무성히 벋은 이고들빼기는 이미 꽃잎을 대부분 닫은 모습입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남문 못 미쳐 성벽 바깥 길은 폐쇄되었고

별수없이 요금소 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듭니다.

 

요금소 옆 도로에 내려서니 서녁 하늘에 붉은 해가 걸리고

쓸쓸한 풍경이 그럴 듯하여 카메라를 들이대 봅니다.

 

 

 

멀리서 서성대던 한 아가씨가 내 카메라가 겨누는 곳을 바라보더니

동료까지 부르며 가까이 다가와

"어머, 저 해 지는 거 봐~" 감탄사 연발하며 사진 찍어댑니다.

 

그ㅡ리 감동할 장면까진 아닌데...

 

 

오늘은 성남쪽이 아닌, 한번도 가지 않은 다른 길로 내려가 보리라

내려서는 골짜기는 이미 어둠 속에 잠기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흰꽃바디나물을 만나 셔터를 눌러야 하는지...

 

 

 

흰진범을 만나 또 외면하지 못하고 한 동안 눈맞춤해야만 하는지...

 

 

 

그러구러 내려가는 골짜기는 얼마나 멀고 긴지...

 

 

뚜렷하게 나 있는 등산로를 내려가면서도 이 길은 아니다 싶었는데

아뿔사, 골짜기 끝에서 만난 것은 생각지도 못한 골프장입니다그려~~~

 

 

 

ㅎㅎ 군부대 골프장으로 들어선 겁니다.

 

들어서지 말라는 경고판도 없었는데, 이게 뭡니까.^^

 

끝없이 펼쳐지는 텅빈 골프장에서 출구를 찾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위병소를 지키는 위병과 여군의 놀라는 표정을 뒤로 하고

택시를 타는 곳까지 어둠 속 나 홀로 긴 행군...

 

나와 함께 걷는 편안한 나만의 시간,

아주  많이는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