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무주 구천동 제1경, 나제통문(羅濟通門)

모산재 2008. 7. 15. 22:29

 

비 내리는덕유산 계곡, 백련사를 다녀온 다음 찾은 곳은 나제통문이다. 나제통문은 덕유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무주 구천동 계곡 입구에 있어 구천동 33경중 제1경이라고 한다.

 

 

 

터널 위쪽에 '나제통문(羅濟通門)'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 관문이라고 알려진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 터널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시대 당시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추정되고 있다.

 

지금도 통문의 양쪽 지역, 무풍 방면의 이남(伊南)과 무주 방면의 새말(新村)은 둘 다 행정구역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속하지만 언어와 풍속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하니, 이 작은 산줄기가 문화의 교류에 큰 장애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제통문이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신라와 백제의 국경 관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그 주장의 내용인즉 나제통문이 일제시대(1910년경)에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과 농임산물들을 옮겨가기 위하여 뚫은 굴로서 그 이름이 나제통문이 아니라 기니미굴이라는 것이다. 굴을 중심으로 위쪽마을은 '기니미 '마을이고, 아래쪽은 '이미리' 마을인데, 무주군청지인 <적성지>에도 도로 개설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나제통문이라는 이름은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붙여졌고 그때부터 교과서에까지 기니미굴이 나제통문으로 버젓이 실리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이 자리가 백제와 신라가 대치하던 국경지대인 것은 사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나제통문 앞을 흘러내리는 원당천 계곡은 병사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던 모양이다. 이 곳 깊은 물에는 '파리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시신의 핏물이 고여 파리가 들끓어서 유래된 것이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