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태고총림 승주 선암사에는 세 가지가 없다

모산재 2008. 1. 16. 00:46

 

 

승선교와 강신루를 지나면 비로소 절의 경내에 들어섰음을 느낄 수 있다. 눈 앞에는 나무 숲 사이로 언덕을 오르며 서 있는 산사의 건물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태고종의 총본산인 대가람 태고총림 선암사에 절집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는데도 일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 매표소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는 곳쯤에 있었어야 했는데, 그도 아니면 부도밭 못 미쳐 삼나무 숲이 있는 곳쯤에는 있어야 했는데...

 

 

그런데, 일주문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 삼인당 못 미쳐 눈길을 끄는 아름드리 서어나무 한 그루

 

 

 

 

 

그리고 이제 비탈을 이루며 오른쪽 언덕의 가람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조그만 연못이 나타난다. 삼인당!

 

 

 

 

● 선암사 삼인당(三印塘)

 

신라 말기인 경문왕 2년(86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 긴 알 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모습이 독특하긴 하지만 별다른 꾸밈도 없어 그저 평범해 보이는 연못인데, 이 축조물엔 그럴 듯한 의미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삼인(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3법인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은 변하며 머무르는 것이 없고 인연만 있을 뿐 '나'라는 것은 없으며 열반적정의 진상을 강조하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으로, 이러한 양식은 우리 나라에서는 선암사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 인(印이란 인신(印信)·표장(標章)의 뜻으로 일정불변하는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를 말한다.

 

 

 

 

 

경내로 오르는 길 주변 언덕에는 꽝꽝나무를 비롯하여 참식나무, 차나무 등의 상록관목들이 가득 자라고 있다.

 

 

 

꽝꽝나무 열매

 

 

 

 

 

삼인당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방향을 살짝 틀면서 선암사 경내로 오르는 공간은 갑자기 가팔라진다. 마치 다랭이논처럼 가파른 비탈진 언덕을 여러 단으로 깎고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들어선 절집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래서 선암사의 절집들은 좌우 방향으로는 넓으나 전후 방향으로 조밀하다. 계단처럼 늘어선 절집의 공간은 오르는 방향으로 분절되면서 위계성을 주고 펼쳐지는 듯하면서도 닫혀진 듯한 효과를 준다.

 

평지가 아닌 바에야 대개의 절집은 공간 구성이 이러한 위계성을 지니고 있다. 속계에서 부처님이 거하시는 천상의 불국토로 들어서는 종교적 의미를 위해서도 이러한 공간 배치는 당연할 것인데, 선암사는 이런 점에 대한 고려가 아주 잘 되어 있다. 매표소에서 승선교, 강선루에 이르는 길은 꽤 멀어서 그저 풍광을 즐기며 산책하면 된다. 그러나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면서 갑자기 다가서는 풍경은 단절을 요구한다. 가파른 비탈을 두 굽이나 돌아 올라야 하는 길은 절로 자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총림이 아니라 아주 작은 절에도 일주문은 큰길이나 마을까지 마중 나와 있는 것이 오늘날의 절이다.(예전의 일주문에서 더 멀리 나와서...) 지리산 성삼재의 어느 절이나 설악산의 유명한 절도 공원 매표소까지 일주문이 마중 나와서 절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관람료를 거둬들인다.

 

관람료야 선암사도 별 다르지 않겠지만, 선암사의 일주문은 뜻밖에도 바로 대웅전 앞에 자리잡고 있다. 크지도 않게,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 선암사 일주문

 

양쪽으로 담장을 거느리고 있는데, 선암사를 찾는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일주문을 안에서 본 모습. 저 일곱 자를 어떻게 읽는지...? 잘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 주시기를~.

 

(댓글을 통하여 청초호님이 '후청량산해천사'임을 알려 주셨는데, 조계산의 옛이름이 청량산이고 선암사의 옛 이름이 해천사여서 그 이름으로 된 편액을 뒤에다 걸어 놓았다는 것이다. 청초호님께 감사드린다.)

 

 

 

 

 

일주문을 지났으니 다음은 당연히 천왕문이 나타나야 하는데 바로 뒤에 범종각과 만세루가 이어질 뿐 아무리 찾아도 천왕문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이 절을 찾을 때에는 별 생각 없이 돌아보면서 천왕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선암사 가람에는 세 가지가 없어서 '삼무(三無)'라고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천왕문이라는 것이다. 천왕문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절 답게 과연 풍수지리 사상이 짙게 결합되어 있는 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선암사에 없는 나머지 '2무'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만세루를 지나 오르게 되는 법당, 바로 대웅전에 있었다.

 

 

 

 

● 선암사 대웅전(보물  제1311호)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660년에 새로 지었지만, 1766년(영조 42년)에 다시 불탄 것을 1824년(순조 2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앞의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삼층석탑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민흘림기둥에 화려한 다포계의 팔작지붕이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선암사의 3무 중 두번째가 주련이 없다는 것이다.

 

선암사는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열면 어긋난다.'고 하여, 깨달음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뜻에서 주련을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웅전 기둥에는 이렇게 버젓이 주련이 달려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절집이나 옛집의 주련을 보고 그 뜻을 더듬어 보기를 좋아하는데, 선암사의 주련을 보면서는 크게 어렵지는 않은 평범한 구절이라 한번 보고는 지나쳤다.

 

 

     巍巍堂堂萬法王(외외당당만법왕)    우뚝 높아 당당하신 만법의 왕
     三十二相百千光(삼십이상백천광)    32상으로 백천광명을 비춰 주는구나.
     莫謂慈容難得見(막위자용난득견)    자비로운 그 모습 뵈옵기 어렵다고 말하자 말라.
     不離祇園大道場(불리기원대도량)    기원정사 대도량을 떠나지 않으시나니.

 

 

※ 32상 : 부처님이 일반 중생과 달리 가지고 있는 32가지 모습으로, 발바닥이 평평하다거나, 손이 무릎가지 내려간다거나 음경이 몸 안에 감추어져 있다거나 눈썹 사이에 흰털(白毫)이 있다거나 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리고 3무의 마지막은 대웅전에 어간문(於間門)이 없다는 것.

 

어간문이란 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의 문에도 사람이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중앙의 문은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듯하다.

 

 

 

 

 

대웅전 동서로는 심검당과 설선당이 자리하고  앞마당에는 보물 제395호인 쌍동이 3층석탑 2기가 동서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중기 이후의 전형적인 이중기단 석탑 양식이다. 1986년 해체복원시 동탑 1층 사리공에서 금동사리함과 청자 및 백자 등이 발견되었는데, 사리구는 보물 제 955호로 지정되었다.

 

 

 

 

● 선암사 동탑 금동사리구(보물 제 955호)

 

 

 

 

 

 

대웅전 축대에 소녀 보살님이 걸터 앉아 부처님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세루 건물 세밀 묘사에 열중하고 있다.

 

 

 

 

참식나무 열매

 

 

 

 

대웅전 뒤꼍의 매화나무

 

 

 

 

 

대웅전을 지나 축대를 한 단 올라서면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조사전은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작으로 육조혜능 마조도일 등의 중국의 5대선사의 진영과 태고종의 종조인 태고보우국사, 그리고 선암사의 선을 널리 알린 침굉현변선사(枕肱 懸辯禪師,1616~1684) 진영을 모신 전각이고, 불조전은 대개의 사찰이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 및 역대 유명한 선조사들의 진영을 모시는 것과는 달리 과거 7불과 미래의 53불 즉 60분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다.

 

그리고 팔상전에는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데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시고 뒤에 화엄탱화가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무우전과 각황전 밖 돌담과 매실나무들. 꽃이 피면 환상적인 풍경이 될 것 같다.

 

 

 

 

 

각각 돌담으로 둘러선 원통전과 응진전, 각황전이 있는 공간은 출입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서쪽에 자리잡은 천불전인 무량수전도 시간에 쫓겨 보지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설선당 담장 밖 아왜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