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해학미 넘치는 낙안읍성 두 장승의 표정

모산재 2008. 1. 13. 13:51

 

 

장승만큼 편안한 예술이 또 있을까.

 

언젠가 목아박물관에서 박찬수 선생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장승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이유가 장승은 손이 없기 때문이란다.

 

손은 소유이고 소유가 탐욕을 낳는데

불상의 손도 결국 탐욕의 표현에 다름 아니니

손이 없는 장승이야말로 모든 것을 비운 존재가 아니냐...

 

낙안읍성에도 장승은 '쌔고 쌨다'할 정도로 눈에 많이 띄었는데

요 두 녀석만 데리고 왔다.

 

 

 

 

# 밝구나, 얼마나 편안한 웃음이냐~~~.^L^

 

  세상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초탈한 모습이면서도

  그 어떤 욕망도 다 받아들일 듯 '알뜰한 구속'의 표정,

  

  성(聖)과 속(俗)이 하나되니 모든 경계가 부질 없어라~.

 

 

 

 

 

 

 

# 온통 일그러진 얼굴, 그러나 즐거움은 어쩔 수 없어라...

  

  그리고 저 땅바닥에 불끈, 저 원초적 본능과 에너지는 어떠하고~.^^

  (나중에야 발견한 것이지만 저 동근 돌을 슬쩍 곁에 놓아 둔 센스의 절묘함...)

 

  어둠이 어디에 있고 밝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싱싱한 생명력이 모든 어둠을 다 지워내는 것을!

 

 

 

 

 

 

※ 장승에 대하여

이 땅 곳곳 민중과 함께하는 살아 있는 삶의 표정.

그 옛날 다산을 기원하는 성기 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장생고(長生庫)에 속하는 절땅의 표지에서 왔다기도 하고
나무장승은 솟대(소도, 蘇塗)에서, 돌장승은 선돌(立石)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지방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인데, 장승·장성·벅수·법수·당산할아버지·수살목 등이 있다. 이 동네 저 동네 사이에 서서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나그네에게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노릇도 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는데 남상(男像)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겨져 있으며, 여상(女像)은 관이 없고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귀신을 쫓는 민간 신앙이 반영되기도 하는데 동쪽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 그래서 장승을 서낭당, 산신당, 솟대와 동등하게 보고 액운이 들거나 질병이 돌 때에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