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부처님이 동쪽으로 돌아 앉은 영광 불갑사

모산재 2007. 9. 17. 01:43

 

 

부처님이 동쪽으로 돌아 앉은 영광 불갑사

 

2007. 09. 08  토요일

 

 

 

 

친하게 지내는 분이 불갑사 꽃무릇 구경가자고 한다.

 

꽃무릇은 9월 중순을 넘어야 활짝 피는데

토요일인 15일은 쉬지 않는 날이라 부담스럽고

22일이 쉬는 토요일이지만 추석 연휴로 이어지니 그렇고...

 

 

그래서 좀 이를 것이라 싶은데도 7일(금요일) 저녁 1박 1일 계획으로 출발한다.

밤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계획도 잡지 않고 무작정 출발했는데

차 안에서 네 사람의 의견은 쉽게 모아진다.

 

 

영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주 효자동으로 달린다.

여관 동네에서 숙소를 정한 후

전에도 가 본 적이 있는 OO주막으로 향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 만 원짜리에 따르는 안주가 푸짐하여

세 주전자를 시켜 먹으니 술자리도 어지간히 달아오르는데

저녁을 따로 시켜 먹을 필요도 없이 배가 부르다.

 

 

노래방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숙소에서 잠이 든다,

 

 

 

자고 일어난 아침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남부시장으로 간다.

 

 

 

 

 

시장 안에는 콩나물 해장국집들이 많은데

으레 찾는 OOO 해장국집은 늘 김을 사 든 사람들이 줄 서 있다.

 

고부간에 사이 좋게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끓이고 

콩나물 위에 뜨거운 국물을 따르고 파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하는 사이

의자에 앉은 손님들도 김을 부숴뜨려 넣어가며 부지런히 먹는다.

 

문밖에 줄서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소박해 보여도 속이 확 풀릴 정도로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콩나물 해장국을 맛있게 먹고서 잠시 시장 풍경들을 즐긴다.

 

 

 

 

 

 

 

그리고는 곧장 시내를 빠져나와 불갑사를 향해 달린다.

 

 

불갑사 못 미쳐 커다란 호수 불갑저수지를 지나는데, 도롯가에는 개상사화라고도 불리는 노랑상사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서 노랑상사화 꽃을 감상하고 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 골자기로 접어드는가 싶은 곳에 불갑사의 일주문이 나타나고 일주문 앞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산과 모악산을 뒤로 하고 그 사이로 흘러 내리는 골짜기 언덕에 자리잡은 불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새 일주문은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단청이 안 되어 있는데 느티나무 원목을 그대로 다듬은 듯한 커다란 두 기둥이 눈길을 끈다. 자연스러움을 살리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불갑산(516m) 기슭에 자리 잡은 불갑사(佛甲寺)는 백제 침류왕(384년)때 불교를 처음 전래한 인도스님 마라난타(摩羅難陀) 존자가 남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침류왕 1 년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절이 모든 절의 처음이요 으뜸이 된다고 하여 불갑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항구 '법성포'라는 지명도 성인(마라난타)이 법(불법)을 가지고 들어 온 포구였다고 해서 유래하였다 한다. 삼국사기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마라난타 스님이 동진에서 오자 왕이 교외로 나가 궁궐안으로 맞아들여 예경함으로써 백제 불교가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한산에 사찰을 세우고 열명을 출가시켰다." 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라난타 존자의 불법 전래 후 392년 백제 아신왕은 불법을 믿으라는 교령을 전국적으로 내리게 된다.

 

 

 

 

※ 불갑사 등산 안내도

 

 

 

 

 

불갑사에는 일제 말기까지도 선원과 강원이 개설되어 정진하는 승려들이 많았으나, 6.25 전쟁시 빨치산 토벌대에 의하여 산너머 용천사는 물론이고 산내의 암자인 해불암, 불영대, 전일암, 오진암, 수도암 등이 불태워져 버리는 수난을 당했다 한다.

 

물론 이곳도 빨치산 투쟁과 관련하여 500~600여 명에 가까운 양민들이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계류를 끌어들여 조성한 절 입구의 인공 연못과 정자

 

 

 

 

 

 

다리를 건너면 왼쪽 산 발치에 부도밭이 보인다.

 

이 부도밭은 1934년 가을 밤중에 모두 도굴당하고 파손되었는데, 

남아있던 부도 6기를 모아 현재 위치에 옮겨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탑비는 왜 이렇게 누워 있는지...

 

 

 

 

 

남아 있는 부도 중에서 가장 볼 만한 부도(종형으로 조선시대 양식)

 

 

 

 

 

 

불갑사 앞을 흐르는 계곡의 다리 위에서 바라본 전경

 

 

 

 

 

 

경내로 들어서는 문 양쪽으로 담장이 이어지며 경계를 이루고

앞마당은 스님과 신도를 위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불갑사의 가람 배치

 

절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화엄경의 수양 차례를 의미하는 53개의 계단이 놓여 있다. 그래서 한 계단 한 계단을 화엄경을 낭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오르면 천왕문을 통해 만세루가 눈에 들어온다. 만세루를 끼고 옆으로 들어가면 대웅전 앞마당에 이른다.

 

마당을 중심으로 만세루와 같은 축선상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좌측에는 일광당, 대웅전 우측에는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두 축으로 이루어졌는데 동서축은 만세루와 사천왕문으로 이어지며, 남북축은 부차적 공간이 자리한 축으로 일광당, 명부전이 놓여 있다. 불전 가운데 일부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데 칠성각과 팔상전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인왕문으로 조성되려는지, 단청도 되지 않은 것을 보면 세워진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하다.

 

 

 

 

 

 

 

 

천왕문

 

 

 

 

 

 

사천왕상(지방문화재 159호)

 

진흥왕 1년(540)부터 35년(574)까지 연기조사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고창 연기사에 모셔져 있다가 연기사가 폐사된 후 1870년(고종7년)설두대사에 의해 불갑사로 옮겨졌으며 조선중기에 조성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목조로서는 국내에서 제일 큰 거상으로 균형미가 뛰어나고 섬세하며, 화려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사천왕상은 고대 인도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흡수된 신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는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라 부른다. 지국천왕은 손에 4줄로 된 비파를 들고 있고, 증장천왕은 큰 칼을 가지고 있다. 광목천왕은 용과 구슬을 들고 있으며, 다문천왕은 창과 장식이된 탑을 들고 있다.

 

 

 

 

 

 

만세루(지방문화재 166호)

 

천왕문 뒤에 바짝 붙어 있다. 누(樓)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의 형식인 여느 절의 누와 달리, 낮은 중층을 이루어 건물의 모서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1644년에 중건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형 문루 건물로서, 법회 장소 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 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정면 현판엔 만세루가 아닌 불갑사로 써 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 건물은 주심포와 익공식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며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건한 미를 간직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절의 강당은 초기에는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뜰에 설치하였는데 불갑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세루의 한켠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모습

 

 

 

 

 

가람 배치도를 보면 5층탑과 대웅전 사이에 명부전이 있어야 하는데, 건물은 보이지 않고 휑한 공터만 남아 있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석축을 새로 쌓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람배치를 새로이 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절을 찾으면 명부전을 빠뜨리지 않는 내가 명부전을 찾지 못하여 의아스러워 하다가 나중에야 확인한 것이다.)

 

 

대웅전(보물 제 830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잡석으로 쌓은 2층 기단 위에 원형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불단이 서쪽 끝에 있어 본존불이 동향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에 맞춰 이 건물에서는 동쪽 벽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내었다. 이것은 드문 예로서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에서나 볼 수 있다. 앞면 3칸은 모두 창 역할을 하는 3짝의 꽃살문을 달았다. 

 

 

 

 

 

기둥 위에 창방과 평방을 두르고 짜올린 공포는 내3출목·외2출목으로 된 다포계(多包系)이다. 작은 규모의 건물 내부를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 사천주(四天柱)를 세우고, 그 안에 불단과 닫집을 설치한 것도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규모이며, 조선 후기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동쪽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전

 

 

 

 

 

 

불갑사목조삼세불좌상(佛甲寺木造三世佛坐像 : 보물 제1377호 )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문에서 3 m 쯤 떨어진 곳에서 줌인하였는데 다행히 부처님 세분이 다정히 내게로 다가왔다.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인데,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하여 왼쪽에는 약사불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불로서 삼불 가운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엿보인다. 두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약간 굵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형식으로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옷주름은 두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양손 모두 마치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하여 사실성이 돋보인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불명확한 육계, 팽창된 얼굴, 분명한 이목구비, 부피감 있고 편안한 자세, 사실적으로 표현된 양 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에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에 오른팔을 드러내지 않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의하여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도우·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무염비구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전라도·충청도·강원도지역을 거쳐 폭 넓게 활약하던 무염일파의 작품과 경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모니상 좌대의 사자 조각>

 

사자의 표정이 어벙하다고 해야할까, 익살스럽다고 해야할까...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인 대웅전은 매우 화려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처마와 단청이 아름답다.

 

 

 

 

 

 

꽃창살문도 눈길을 끄는데...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문을 연꽃무늬, 국화꽃무늬, 보리수 무늬(보상화문)를, 좌.우칸에는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섬세하게 조각하여 매우 화사하다.;

 

 

<동쪽 문>

 

 

 

 

<앞면 꽃살문>

 

 

 

 

 

대웅전 서쪽 벽 윗면의 인물 벽화들

 

기둥이나 보의 단층들은 새로이 칠해졌지만, 인물 벽화들은 원상태로 보존하고자 한 것인지 퇴색한 모습인데 군데군데 훼손되어 있기도 하다.

 

산뜻한 채색을 자랑하는 심우도나 존자상 등의 벽화들이었다면 지나쳤을 것인데, 퇴락한 가운데 보이는 인물화의 선들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구경을 하였다. 내 눈에는 이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가 대단해 보였는데...

 

언제 누구에 의해 그려진 것인지 이 벽화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이다. 어쩌면 1635년 대웅전 삼세불좌상을 조성한  무염(無染)스님 등 10인의 화승들이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불갑사를 다녀온 뒤에 불갑사의 인상으로 가장 오래남은 것은 바로 이 인물상을 그린  벽화이고, 불갑사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벽화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불갑산 골짜기에 포근히 앉은 가람배치도 아름답고 대웅전 석가모니불 좌대의 조각들이 말할 수 없는 매력을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동쪽 마당에서 본 대웅전과 만세루

 

왼쪽 앞에 명부전이 헐려나간 자리가 뚜렷하다.

 

 

 

 

 

 

대웅전 뒤 언덕 위에는 칠성각과 팔상전이 자리잡고 있다.

 

 

 

 

 

칠성각 내부

 

 

 

 

 

범종각

 

불갑사 대법고는 174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길이 240㎝, 울림판 직경 200㎝, 높이 220㎝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큰북이다. 이것은 오래된 법고 가운데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범종각에서 본 만세루와 대웅전

 

 

 

 

 

 

 

절을 찬찬히 둘러보았으니 이젠 꽃무릇을 보러 가야할 차례이다. 다시 되나와 절의 동쪽에 자리잡은, 골짜기를 막은 저수지로 향한다.

 

절의 담장 밖에는 어린 참식나무들을 울타리처럼 심어 놓았다.

 

불갑산에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 자생지가 있는데,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특이하게도 겨울이 가까워지는 10월이나 11월에 꽃(암수딴그루)이 피는데 다음해  10월쯤에 열매가 붉게 익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다고 한다.

 

 

 

 

※ 불갑사 가람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