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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 이야기

타래난초, 비틀린 삶도 꽃으로 피나니…

by 모산재 2007. 7. 15.

 

 

비틀린 삶도 꽃으로 피나니…
묏등 언덕에 피는 타래난초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바라기하는 양지바른 곳, 그 곳을 ‘묏등 언덕’이라 부릅니다. 마을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곳이나 낮은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묏등 언덕은 풀꽃들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사시사철 아름다운 풀꽃들이 피고 집니다. 예전 갈 곳 없는 시골 아이들에게 풀밭이 펼쳐진 묏등 언덕은 좋은 놀이터였으니 ‘근린공원’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눈 내리던 날 비료 부대를 깔고 눈썰매를 타던 묏등 언덕에 봄볕이 따사롭게 찾아들면, 할미꽃, 양지꽃, 봄맞이꽃, 솜방망이, 솜나물, 금창초, 조개나물, 각시붓꽃, 애기풀 등 키 작은 꽃들이 다투듯 꽃을 피우고 서둘러 씨앗을 맺습니다. 덤불이 우거지면 큰일입니다.

 

 

봄이 멀어져 가며 덤불이 우거질 무렵부터 묏등 언덕은 키 큰 꽃들의 세상이 됩니다. 미나리아재비가 하늘하늘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을 신호로, 붓꽃이 보랏빛 물결을 이루고 개망초 흰 꽃들이 진을 치는 가운데 한켠에서는 꿀풀, 엉겅퀴 들이 조심스레 꽃을 피웁니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 이들 호수 주변의 아득한 풀꽃 바다처럼 엄청나지는 않아도 묏등 언덕은 사시사철 온갖 꽃들을 차례대로 피우며 죽은자의 땅을 생명의 환희로 가득 채웁니다.

 

 

하지를 지나 햇살 뜨거운 7월이 가까운 무렵, 무성한 묏등의 푸른 풀섶 여기저기에서 하늘을 향해 분홍빛 실타래가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환상적인 꽃타래가 바로 타래난초입니다.

 

 

 

 

 

 

 

타래난초는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꽃이 실타래처럼 꼬여서 올라가며 피며 퉁퉁한 뿌리를 가진 난초 식구에 속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허리를 굽히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풀섶에 숨어 있는 가느다란 잎은 난초처럼 깔밋합니다. 분홍 꽃부리 속에 하얀 꽃입술을 살짝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끄럼 타는 청순한 소녀의 모습처럼 앙증스럽습니다. ‘소녀 그리고 추억’이라는 꽃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타래난초는 수줍고 겸허한 꽃입니다. 꽃을 피우기 전에는 그 존재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신을 숨기고 삽니다. 몇 개밖에 없는 가느다란 잎새와 호리호리한 꽃대는 자신의 영역을 최소화하며 다른 생명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타래난초의 몸가짐인 듯합니다.

 

 

 

 

 

 

 

그러면 타래난초는 왜 저렇게 꼬면서 꽃을 피웠을까요.

 

나선형 계단처럼 꼬인 자리마다 꽃핀 모습은 어느 분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분홍 참새들이 일렬로 모여 분홍색의 아침 회의를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러한 나선형 계단의 모양은 곤충들을 유인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랍니다. 타래난초는 벌나비만이 아니라 개미가 많이 찾는 꽃입니다.

 

 

아래 사진을 볼까요.

 

 

 

 

 

 

타래난초의 수술 끝에는 꽃가루 덩어리가 붙어 있습니다. 꽃가루 덩어리를 붙인 곤충이 다가서면 암술 끝의 끈끈이막은 재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내며 순식간에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만들어진 씨앗이 너무 작아서 싹트기에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합니다. 타래난초는 난균이라는 곰팡이 무리를 불러 모아 자신의 몸에 기생하도록 만들고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 균사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해 발아한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타래난초는 잔디뿌리의 박테리아를 교환하면서 공생한다고 합니다. 타래난초를 잔디가 많은 묏등 등의 풀밭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생존해 가는 생태계의 지혜를 타래난초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왼쪽으로 감거나 오른쪽으로 감는 것을 고집하는 여느 식물들과는 달리, 타래난초는 타래를 오른쪽 왼쪽으로 자유자재로 틀어 올립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타래난초의 모습에서 삶의 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꼬여 있으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타래난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스스로 꼬여서 스스로 추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나 자신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들 속에서 자신을 낮추고, 있는 듯 없는 듯 수줍게 살면서, 꼬인 몸으로 한순간 하늘을 향해 분홍빛 꽃을 피워 올리고 어느 새 사라지고 없는 타래난초, 그가 우리 인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비틀린 삶도 꽃으로 피나니…!

 

 

 

 

 

 

 

 

 

* 계간 문화지 <쿨투라 cultura>2007년 06 여름호에 연재 기고한 글입니다.

 

 

 

 

 

 

 

 

 

 

● 타래난초 Spiranthes sinensis   ↘   미종자목 난초과 타래난초속 여러해살이풀

높이 10-40cm이며 줄기는 곧게 서고 1~3개의 피침형 비늘잎이 있다. 뿌리가 다소 굵으며 4-5개의 방추형 다육성으로 여러줄의 거칠고 큰 백색의 수염뿌리가 있다. 큰 근생엽은 길이 5-20cm, 나비 3-10mm로서 주맥이 들어가고 밑부분이 짧은 초로 되며 줄기잎은 피침형이고 예두이다.

꽃은 5-8월에 피고 분홍색이며 나선상으로 꼬인 이삭꽃차례에 작은 꽃이 다수 옆을 향해 달린다. 꽃차례는 길이 5-10cm, 지름 7-12mm이며 짧은 샘털이 있다. 포는 난상 피침형이고 끝이 뾰족하며 길이 4-8mm, 폭 2-2.5mm이다. 꽃받침조각은 피침형이며 길이 4-6mm로서 점점 좁아지고 꽃잎은 꽃받침보다 다소 짧으며 위꽃받침조각과 더불어 투구처럼 된다. 윗꽃받침은 선상피침형으로 길이 5-7mm이며 끝이 둔하고 옆꽃받침조각도 길이는 같으나 폭이 좁으며 꽃잎은 길이 5-7mm로서 끝이 둔하다. 입술모양꽃부리는 색이 연하고 거꿀달걀모양으로서 길이 5-8mm로서 꽃받침보다 다소 길며 끝부분이 다소 뒤집어지고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씨방은 대가 없다. 삭과는 타원형으로 곧추서며 잔털이 있고 길이 5-7mm이며 8-9월에 익는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 속명 Spiranthes는 그리스어 'speira(나선상으로 꼬인)'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작은 꽃들이 나선형으로 화경을 감아올라가며 피는 모양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연상태에서도 화형을 비롯하여 화색 등의 변이종이 널리 출현하기도 한다

 

 

 

☞* 타래난초 => http://blog.daum.net/kheenn/15855446   http://blog.daum.net/kheenn/12002444   http://blog.daum.net/kheenn/8757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