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풀꽃의 학명에 자주 등장하는 나카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정보 검색을 하다가 아래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글쓴이가 전문가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생각해 볼 점이 많은 것 같아 옮겨 싣습니다.
아직도 용어조차 전부 일본식 조어가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식물학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네이버 백과사전' 을 주자료로,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자료를 보조자료로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국가 공식 정보자료인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자료는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예컨대 잎자루를 '엽병', 꽃부리를 '화관' 뿌리잎을 '근생엽', 줄기잎은 '근생엽' 등으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각' '거치', '수과', '협과', '미상화서', '수상화서' 등에 이르면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 외계어가 되어 버립니다.
이 땅의 풀꽃나무들에 씌워진 식민지시대의 두터운 굴레를 걷어내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 땅의 풀꽃들이 창씨개명(?) 당한 사연
얼마 전 YTN은 세계적으로 울릉도에만 서식한다는 희귀식물 섬시호의 모습을 촬영해 보도했습니다. 섬시호가 TV 카메라에 찍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식물도감에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 하니 사실상 멸종된 줄 알았던 식물이 우리 앞으로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저는 취재과정에서 이 섬시호란 식물을 도감에서 찾아보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섬시호의 학명은 Bupleurum latissimum Nakai. 여기서 나카이는 분명 일본식 이름입니다. 밤하늘에서 새로운 혜성이 처음으로 발견되면 발견자의 이름이 붙여지듯, 섬시호에도 이 풀을 처음 발견한 어느 일본 학자의 이름을 붙였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식물도감을 살펴보면 나카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식물에 붙은 일본 이름은 나카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대표적인 자생식물인 금강초롱의 학명엔 일본풍의 이름이 앞뒤로 두 개나 붙어 있습니다. Hanabusaya asiatica Nakai 가 그것입니다. 하나부사는 또 누구일까?
궁금증은 계속 이어집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인 광릉요강꽃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식물이라지만, 학명은 Cypripedium japonicum Thunberg입니다. japonicum은 일본에서 서식한다는 일본 고유종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인데 말입니다.
이밖에도 나도풍란,물부추,만년콩,애기등,무주나무등등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식물 혹은 보호식물들은 한반도 특산 식물임에도 학명만은 japonica,japonicus 등등 일본을 뜻하는 형용사가 붙어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취재해 보니 나카이라는 사람은 일본의 저명한 식물 분류학자라고 합니다.
지난 세기초 우리나라의 식물학계에서 분류학이란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못하던 시절, 우리 식물 천여 종에 비로소 이름을 붙이고 계통을 세운 한국 식물학의 개척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지은 ‘조선식물지’라는 책은 지금도 식물학도 사이에 필독서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아, 그렇구나 나카이 박사는 참으로 훌륭하고 고마운 사람이었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나카이 박사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한반도 식물의 작명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역사적 배경을 알아봤습니다.
한일합방 직후였던 당시 조선 총독부는 한반도의 일반 물자뿐 아니라 자연자원 중에도 착취할 만한 것이 없나 파악하기 위한 전국적인 자연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발로 방방곡곡을 누벼야 하는 이같은 정밀조사는 식민지의 값싼 조선인 노동력이 대거 동원돼 진행됐습니다. 이 조사를 처음 기획한 사람은 한일합방을 주도하고 초대 주한일본공사를 지낸 하나부사란 인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야생화 금강초롱의 학명 (Hanabusaya asiatica Nakai) 앞부분에 등장하는 그 이름입니다.
하나부사가 조선 생태조사사업을 위해 일본에서 초빙해온 식물 전문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앞서 언급된 식물학자 나카이씨입니다. 나카이는 조선총독부 촉탁 교수로 임명돼 식물조사사업을 총지휘하게 됩니다. 젊은 식물학도로서는 식물학의 불모지인 이국땅의 식물들을 마음껏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었습니다.그는 전국에서 조수들이 채집해 오는 이름없는 야생식물들을 분류해 계통을 세우고 학명을 붙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고유식물 학명에 자기 자신의 이름인 나카이도 붙이고 자신을 초빙해온 하나부사 공사의 이름도 일부 넣어주었던 것입니다. 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뜻에서 일본 식물을 뜻하는 형용사 japonica 같은 단어를 조선의 특산식물 학명에 죄다 붙여 놓았던 것입니다.
한국땅에 처음 올 때는 석사학위도 없는 젊은 학도였던 나카이는 결국 조선 식물의 독점적인 연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연거푸 받고 조선 식물 분류학의 권위자가 돼 나중엔 도쿄대 교수로서 명성을 날렸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우리 식물자원이 착취 당하고 수탈 당했는지는 다만 짐작만 할 뿐입니다.
물론 나카이 박사가 우리 식물 연구에 끼친 일부 업적을 모조리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학명이야 전문가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인데다 이미 정해진 학명을 이제 와서 뒤늦게 바꾸는 것은 국제 관행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은 남습니다.
문제는 나카이 박사의 '조선식물지'라는 책이 지금도 국내 식물분류학도들에게는 바이블과 같이 꼽힌다는 그 점입니다. 왜일까요? 나까이 이후로 단 한번도 우리의 힘으로 전국에 걸친 종합적인 정밀 식물생태 조사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같은 경우 나라마다 이미 16세기부터 이뤄졌다는 중요한 작업을 말입니다.
방대한 경비와 시간, 인력이 필요한 이같은 작업은 개인 연구소나 학교보다는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정부 자체가 자연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눈뜬 것이 아주 최근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긴 수출이다 개발이다 해서 먹고 살기도 바빴던 우리의 현대사에서 자연생태 조사 같은 '사치스런' 사업이 들어갈 틈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생물자원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수단으로까지 인정받는 21세기지만 우리는 생태자원 관리에 관한 한 한 세기전 일본총독부보다도 못한 셈입니다.
자, 이제 섬시호의 얘기로 돌아올까요? 아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조차 안 돼 보호 대책이 전무한 울릉도의 섬시호의 운명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만약 섬시호가 마지막 개체까지 절멸된다면 그래서 한반도 멸종식물 1호로 기록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우리는 또다시 나카이 박사 연구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제학계의 멸종 확인,즉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발견자가 채취한 표본[일본 도쿄대학 보관]이 근거요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태 연구에 관한 한 세계 최후진국인 우리에게 아직도 일본 학자 나까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 있습니다. (YTN 칼럼 - 함형건의 [환경취재 X파일] [200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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