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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 여행 (7) : 중국의 3대 문묘인 건수(젠수이) 선사묘

모산재 2007. 2. 7. 23:08

 

중국 운남 여행 (7)  건수(建水) 공자묘(孔子廟)

 

2007. 01. 22

 

 

 

 

8시에 일어나 호텔을 나선다. 아침은 텐진만두집에서 죽을 먹는다.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워 편안하다.

 

 

오늘은 이곳 젠수이(건수)가 자랑하는 공자묘와 주가화원을 돌아보고 난 후 다시 쿤밍으로 가서 징홍(景洪)으로 가야한다.

 

 

 

호텔 앞 뜰에 핀 영춘화

 

 

 

 

 

 

● 중국에서 두번째로 오래고 크다는 건수의 공자묘

 

중국의 문묘는 1800여 개에 달하는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공자의 고향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다. 바로 그 다음으로 오래고 규모가 큰 것이 바로 이곳 젠수이의 공자묘라고 한다.

 

젠수이의 문묘는 1285년 원나라 때 처음 건설되어 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40여 차례의 증보수를 거쳤을 뿐 선사전·문성각 등 주요 건축물의 규모와 건축술, 보존 상태가 완벽한 것으로 평가된다. 취푸 및 베이징의 공묘와 더불어 중국 3대 문묘로 꼽히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가 지정한 국가 지정 문물보호단위이기도 하다.

 

 

 

문묘 앞은 넓게 단장한 공자문화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조성한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하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시간으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공자의 자리는 넓어지고 평화롭다. 정면 끝 중앙에 공자상이 있고, 그 뒤쪽으로 공자묘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공자 석상이 자리잡고 았다.

 

 

 

 

 

 

공자사원 경내로 들어서는 문, '성역유자'라는 현판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부터 성역입니다.'라는 뜻...

 

 

 

 

 

그리고 다음 문에는 '○배천지(○配天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맨 앞 글자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광대함은 천지를 짝하고..."라는 주역의 구절에서 따온 것일까. 아니면 성인의 덕이 천지를 짝한다는 '德配天地'의 의미를 나타내는지... 아무래도 후자일 듯하다.

 

 

 

문묘로 들어가는 길, 넓은 뜰에 '미자화'라는 특이한 붉은 꽃이 만발하여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대성전으로 들어서는 문

 

 

 

 

 

대성전(大成殿)에 해당하는 문묘는 '선사묘(先師廟)'라는 이름을 붙였다.

 

 

 

 

 

 

선사묘에는 공자와 함께 수많은 제자들이 배향되어 있다.

 

 

공자상

 

 

 

 

공자 좌우에는 증자, 안회, 맹자, 자사 등 4성이 배향되어 있다.

 

 

증자와 맹자(宗聖曾子 亞聖孟子)

 

 

 

 

안회와 자사(復聖顔子 述聖子思)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는 모셔진 신주를 지키는 병장기들이 도열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모습

 

 

 

 

 

 

연주하는 어깨 너머로 '平湖秋月(평호강월)'이라는 이름의 악보가 보인다. 곡 이름처럼 '넓은 호수에 가을달이 비치는' 듯 아침 나절에 맑게 흐르는 음악이 아름답다.

 

 

 

 

 

물고기 꼬리 모양의 거대한 대성전 치미

 

 

 

 

 

 

이곳에서는 공자 탄생일에 '홍허(紅河) 공자 문화제'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한국의 석전대제에 해당하는 이른바 '젠수이 제공대전(祭孔大典)'이라는 축제 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

 

공자의 생애와 사상을 표현한 '문묘일무(文廟佾舞)'라는 수십 가지의 춤사위 등 눈길을 끄는 행사는 중국의 고위 관리는 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불러들일 정도로 젠수이의 대표적인 문화제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문묘 뜰에는 있는 '운남송(雲南松)'이라는 이름의 특이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다.

 

 

 

 

 

운남의 고산 지역에서 자라는  이 소나무는 가늘고 긴 솔잎이 머리카락이나 총채처럼 드리워진 모습으로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곳 사람들은 바람에 날리는 듯한 잎 모양으로 비송(飛松)이라 부른다고 한다. 추위에 약해 아열대 고산지대에만 자란다고 한다.

 

 

 

뜰에는 '지단후아(鷄蛋花)'라 불리는 꽃이 피었는데, 화심이 달걀 노른자 색깔이고 꽃잎 주변부는 흰자처럼 흰색이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흔히 '플루메리아'라 부르는 꽃이다.

 

 

 

 

 

문묘 앞으로는 넓은 호수가  조성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다.

 

 

 

 

 

 

※ 문묘(文廟 = 공자묘

 

당나라 때 공자가 문선왕(文宣王)으로 추봉(追封)됨에 따라 '문선왕묘'라고 부르다 원대(元代) 이후로 '문묘'라고 하였다. 한나라가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공자에 대한 국가적 규모의 제사를 행하였다. 처음에는 그 출생지인 궐리에 한정되었으며, 수나라 때까지는 주대(周代)의 문물제도를 정비했다고 하는 주공(周公)이 국학(國學)의 사당에서 선성(先聖)의 자리를 차지하고 공자는 선사(先師)로서 배향(配享)되었을 뿐이다. 그 후 당의 태종이 유교정치를 표방하면서 공자가 선성의 자리에 모셔지고 안회가 선사(先師)로 배향되었으며, 송대에 주희가 의리와 명분에 입각한 정통(正統)의 확립을 강조함에 따라 문묘의 향사제도가 정비되었다.

한국에서 공자 사당의 유래는 통일신라 때인 714년(성덕왕 13) 김수충(金守忠)이 당나라에서 공자와 그 제자인 10철, 72제자의 화상(畵像)을 가지고 돌아와 왕명에 의해 국학(國學)에 모신 것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에도 중국의 향사(享祀)제도를 따라 운영되었으며 주자성리학이 전래됨에 따라 대성전(大成殿) 건립이나 배향자 정비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치에서 유학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그 내용이 심화되면서 제도와 운영이 더욱 정비되었다. 중앙에는 성균관, 지방에는 각 군현의 향교에 세워졌는데 제도적으로는 종묘와 사직의 아래에 있었으나 정치와 유학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태종대에 공자에 대해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4성과 그 밑의 10철을 배향함으로써 유학의 큰 도통(道通)은 정리가 되었으나, 조선의 학자들을 모시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었다. 사림파의 이념적 정치적 승리가 완결된 시점도 광해군대에 김굉필 · 정여창 · 조광조 ·이언적 · 이황 등 이른바 5현이 문묘에 종사된 때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이이와 성혼에 대한 종사 문제는 서인 ·남인의 학맥과 연결되어 현실 정치 상황에 직결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최종적으로 공자를 정위(正位)에 두고, 좌우에 4성 ·10철 및 중국 송대의 6현(六賢)을 배향하고 동무(東>廡)와 서무에 각각 중국의 명현 47위와 한국의 명현 9위를 종사하였다.

광복 후에는 동무와 서무의 중국인의 위판을 땅에 묻고 한국의 명현은 대성전에 올려 모셨다. 현재 성균관에 전해오는 문묘는 1398년(태조7)에 완성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고 중수를 거듭한 것이다.

 

 

 

※ 대성전(大成殿)

 

문묘의 정전으로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이다. 공자를 중앙에 모시고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4성을 좌우에 모셔 합사한다. 중국에서는 산둥성 취푸(曲阜)의 것이 가장 크다.

한국에서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과 민손(閔損) ·염경(冉耕) ·염옹(冉雍) ·재예(宰豫) ·단목사(端木賜) ·염구(冉求) ·중유(仲由) ·언언(言偃) ·복상(商) ·전손사(顓孫師) 등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의 위패를 대성전에 모셨다.

문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로 구성되어 대성전에는 공자를 제사하고, 4성(四聖)을 배향, 10철(哲) · 6현을 종향하였다. 학덕 있는 사람을 문묘(文廟)의 양무에 위(位)를 모시던 일을 승무(陞廡)라 하는데,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는 공자의 62제자, 한 ·당 ·송 ·원의 32현, 한국의 18현을 합하여 112위를 종향하였다. 한국의 18현은 동무에 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서무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 종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