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운남 여행 (3) 웬양(元陽) 하니족 민속마을
2007. 01. 20
안개 속에 출몰하는 다락논들을 구경한 후 아침 식사를 하러 가나 했는데, 가야할 곳을 잘못 찾았는지 조그마한 마을 멍핀(勐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이 곳 웬양의 도로변이나 마을길에는 뚱딴지(돼지감자)꽃들이 아주 흔하게 보인다. 끊임없이 출몰하는 안개 속에서 이 뚱딴지꽃만이 샛노란 수기를 가만히 흔들며 자신 있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바로 그 아래에 내 고향집 마당만한 운동장에 낡은 3층 건물로 된 소학교가 나타난다.
번즈화 멍핀(樊枝花 勐品) 소학교이다. 교문에는 아이들이 붙어 서 있고, 노점을 차려 놓고 두 아주머니가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교문 안을 들어섰더니 낡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딱지치기 놀이를 하고 있다. 방학인지 아이들은 몇명 보이지 않고 책상 안에는 책가방이 놓여 있다. 칠판은 너무 낡아서 판서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싶다. 문득 내 유년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바깥 길가에서 담 너머로 본 학교 모습
학교 옆 골짜기에 앉은 마을 풍경
길가에는 무시무시한 가시를 자랑하는 도깨비가지(? ), 이 평화롭게 늘어진 땅에서 지켜야 할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 녀석은 나만큼 좀 오버하고 있는 것 같다. 열매가 쬐끔 아름답긴 하지만...
그리고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역시 또다른 다락논의 풍경이 펼쳐지는 근처의 식당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주변을 거닐며 풀꽃들을 찾고, 또 다른 것들을 보러 잠깐의 산보를 즐긴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꽃, 떡쑥이 따스한 볕살 아래 풍성하게도 피었다.
밭 언덕 돌틈에는 우리 땅에서는 보지 못했던 개모밀덩굴이 꽃을 피우고 있다.
식당 뒤편 밭언덕에 보이는 하니족의 무덤...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하교길인지 가방을 멘 아이들이 한떼 나타난다. 해맑고 순박한 표정들이 꼭 떡쑥 같다.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의 나를 대면하는 듯한 느낌에 빠진다.
흰도깨비바늘과 아주 닮은 꽃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저걸 이 계절 베트남에서도 많이 보았지. 이름을 묻자 '후아끗런'이라며 깔깔 웃던 하노이의 현지 가이드 청년 얼굴이 떠오른다. '돼지똥꽃'이라는 뜻이라며...
점심을 먹고 바로 아래에 있는 하니족 민속마을로 내려간다. 차는 두고 흙길을 걷는데 마음이 여유롭고 편해서 좋다.
다락논 끝 숲이 마을과 논의 경계이다. 저 구름(안개) 속의 마을로 10여분 걸어가면 된다.
안개는 시시각각으로 마을과 논밭의 경계를 짓다가도 허물어뜨리는 일을 하고 있다. 경계란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이라는 듯이...
마을로 내려가는 길, 산 언덕에서 이국의 여러 풀꽃나무들을 만난다.
잎맥이 독특한 이 나무는 멜라스토마라는 식물이다.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목노보단(野牧丹)이란 일본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는 원예종이다.
구슬붕이 같기도 하고 용담 같기도 한 이 풀꽃은 우리나라의 것과는 다른 모습...
다랑이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자, 길은 하니족 민속마을로 접어든다.
멀리 밭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논에서 사는 오리들
혼자서 탈것을 타고 노는 아이
마을로 접어드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시간과 공간이 엉키어 있지 않으니 시간을 의식하지 않아도 눈치를 볼 이유도 없는 절대적인 평화...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 대나무 숲과 키큰 나무들이 마을과 논의 경계를 지으며 신성한 공간을 이루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을 감추며 살짝 돌아서 들어선 입구에 잠시 펼쳐진 넓은 마당은 마을 사람들의 공적 영역의 넓이를 확인하는 것 같아 더욱 푸근하게 느껴진다.
하니족(哈尼族)은 운남의 남서부, 훙허(紅河) 서쪽의 아이라오(哀牢)산악 지역에 주로 산다고 한다. 인구는 150여 만 정도로 대부분 해발800m 내지 2500m에 달하는 산악 지역에 거주하며 주로 벼농사와 차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계단식 논밭, 곧 제전(梯田)을 일구어 살아가는 소수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언어는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는 하니어를 사용하고, 문자는 없었으나 1957년에 로마문자를 기본으로 한 표음문자를 만들었다는데 널리 사용되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다.
자연과 조상을 숭배하며 순하게 살아가는 하니족은 청남색을 선호하며, 부녀자들은 가슴 장식과 귀고리를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니, 누가 결혼을 했는지 살림살이를 나르고 있다.
마을우물과 빨래터
팔자 좋은 돼지. 이 지역에선 거의 방목되다시피 한다. 우리에 갇혀 있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살림도구 수선하는 모습
마을 중앙 광장
민속품 진열실
2층 진열실에 진열된 하니족 복장
하니족 마을의 지붕은 다 초가이다.
마을과 논과의 경계는 이렇게 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다. 숲은 성스러운 공간이다. 인문적으로는 마을과 경작지 사이의 경계인 듯하면서도 생태적으로는 둘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매개의 공간이다.
마을 우물과 빨래터 2
연료로 쓰기 위한 소똥이 담벼락에 붙어 있다.
과자를 파는 소녀, 그리고 소들
소녀의 모습과 소들의 표정이 어쩐지 묘한 대조를 이룬다고 느낀다. 팔아야 할 원색의 과자 봉지를 보며 아직은 송아지처럼 순박한 소녀가 밀려오는 자본의 유혹 앞에서 겪어야 할 불편한 긴장이 느껴진다.
소녀의 삶도 언제까지나 이 소의 가족처럼 편안하고 따뜻하게, 저 송아지의 맑고 초롱한 눈망울처럼 순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노인과 아이들
제사를 위한 동물 희생 장소
마을 앞 풍경
마편초
향채(상차이). 우리 이름으로는 고수(나물)
입술망초. 우리 나라에서는 귀해서 실물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는 종종 보인다.
논둑을 따라 풀꽃 탐사를 하는데, 오리 새끼들이 갑자기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달려 온다. 나를 먹이를 주는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되돌아 나오는 길. 다시 안개가 몰려들고 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성수들이 더욱 신비로워 보인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인
자연의 리듬과 신체의 리듬이 하나가 된 넉넉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햇살과 바람이 생명들을 편안히 어루만져 주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얽혀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답답했던 삶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 하니족 축제
● 신미지에(新米節)
하니족 민족 축제이다. 음력 8월 용의 날에 햅쌀 축제를 연다. 하니족 말로 롱(龍) 발음은 ‘더욱 더’ 또는 ‘증가하여’ 라는 의미이다. 올해에 더 많은 햅쌀을 수확하여 닭과 고기를 사고 풍미로 신선한 야채를 돌려 받는다.
● 쿠짜짜(苦扎扎)
매년 5월의 첫 원숭이일에 시작하여 3일에서 5일간 지속된다.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명절이다. 마을은 명절 분위기에 젖어있고 신년 복장을 입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탈곡장에 모여서 돌림그네의 방식으로 경축한다.
● 꾸냥지에(姑娘節)
가장 화려한 처녀시절, 음력 2월 2일은 하니족의 미혼 여성의 날이다. 젊은 여성들은 이 날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전통의상 저고리와 짧은 바지를 입는다. 가슴이 살짝 보이고 다리는 노출되어 보이는데, 젊음과 건강을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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