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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이 없는 절, 여수 영취산 흥국사

모산재 2007. 1. 13. 01:03

 

석탑이 없는 절, 여수 영취산 흥국사

 

2007. 01. 03

 

 

 

 

매년 4월이면 영취산은 붉은 빛으로 타오른다. 흥국사 대웅전 뒤 해발 439m의 영취봉과 510m의 진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진달래 군락이 핏빛으로 물들며 장관을 이룬다. 영취산 진달래축제는 봄빛을 찾는 사람들에겐 이미 널리 알려진 축제이다.

 

흥국사는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영취산 기슭에 자리잡은 절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흥성함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사찰이다.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가 호국 사찰로 세운 것을 여러 번 고쳐 지었는데, 인조 2년(1624)에 계특대사가 건물을 고쳐 세워 지금에 이른 것이라 한다. 호국사찰답게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 경내에 300여명의 승병 수군이 조련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절 입구, 참나무 한 그루가 동그란 벌레집을 달고 있다.

 

 

 

 

 

 

 

경내에는 흥국사 대웅전(보물 제396호), 팔상전, 불조전, 응진당 등 10여 동의 목조건물이 있다. 또한 흥국사괘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대웅전후불탱(보물 제578호), 경전, 경서판각본, 흥국사홍교(보물 제563호) 등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 그외에도 흥국사 노사나괘불탱(보물1331호), 수월관음도(보물1332호), 십육나한도(보물1333호) 등 3점의 보물이 더 있다.

 

 

 

 

흥국사 홍교(虹橋)

 

흥국사 입구에 있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이다. 선암사 입구의 다리인 승선교와 양식이 비슷하다.

 

 

 

 

 

개울 양 기슭의 바위에 기대어 쌓았는데, 부채꼴 모양의 돌을 서로 맞추어 틀어 올린 다리밑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을 이루고 있다. 양옆으로는 둥글둥글한 돌로 쌓아올린 벽이 학이 날개를 펼친 듯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룬다. 홍예의 한복판에는 양쪽으로 마룻돌이 튀어 나와, 그 끝에 용머리를 장식하여 마치 용이 다리밑을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다리로, 지금까지 알려진 무지개형 돌다리로서는 가장 높고 길며, 주변 경치와도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일주문

 

 

 

 

 

부도밭

 

 

 

 

 

 

영취교 건너 천왕문

 

 

 

 

 

사천왕상

 

 

 

 

 

 

봉황루(鳳凰樓)

 

 

 

 

 

봉황루 2층 누각의 아래층을 왜 저렇게 봉쇄해 놓았을까. 누문 아래층은 법당으로 진입하는 통로로 이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인데, 답답하고 부자연스런 느낌이 든다.

 

영취교를 건너 천왕문, 봉황루, 법왕문, 최종적으로 대웅전까지 만들어지는 동선은 원래 직선적이었다고 한다. 근래 봉황루 하부 계단을 막고 이곳을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측면으로 진입하도록 변경했다고 한다.

 

 

법왕문(法王門)

 

 

 

 

 

법왕문을 통해 대웅전이 들여다 보인다. 다른 사찰에서는 대개 보이지 않는 전각이다. 흥국사의 가람 배치에서 가장 특이한 요소는 전체 건물들 한 중앙에 법왕문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법왕문은 해탈문, 불이문에 해당되는 것으로 내부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데, 전체 가람 배치에 있어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법왕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송광사 배치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송광사에서도 역시 가람의 중심에 이러한 법왕문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화엄종 교리중 하나인 중심으로의 통합 사상을 표현하는 예라 한다.

 

 

 

 

대웅전(보물 396호)

 

 

법왕문을 지나서 대웅전 마당에 들어서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특이하게도 법당 마당에 있어야 할 석탑이 없다. 석탑이 사라진 자리에 자질구레한 석조물들이 널려 있는데, 법당의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

 

 

 

 

 

인조 2년(1624) 계특대사가 절을 고쳐 세울 때 다시 지은 건물로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오르는 돌층계 양쪽에 세워 놓은 돌사자상이 (만든 지도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왠지 왜색이 느껴져 보기에 거북하다.

 

 

 

무사전(無私殿)

 

사사로움이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무사전'이란 이름이 붙은 이 전각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절의 지장전, 또는 명부전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조선시대의 전형적 배치를 하고 있는 사찰 중 대웅전 오른편에 명부전을 배치하고 있는 예는 특히 전남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선암사, 동화사의 예가 그 경우라 할 수 있다.

 

 

 

 

 

 

흥국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3점의 탱화가 있다.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보물 제578호)

 

대웅전 본존 뒷면에 숙종 19년(1693)에 그린 영산회상도후불탱화(보물 제578호)로 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탱화는 화면 중앙에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앞쪽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이 배치되었고, 그 옆으로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따르는 무리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석가여래상은 왼쪽 어깨에 옷을 걸쳤고,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모습이다.

채색은 대체로 붉은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졌는데, 머리광배의 녹색은 지나치게 광택이 있어 은은하고 밝은 맛이 줄어든다. 그러나 꽃무늬나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결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숙종 19년(1693)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天信)과 의천(義天) 두 승려화가가 그린 이 탱화는 원만한 형태와 고상한 색채의 조화로 17세기 후반기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 흥국사 노사나괘불탱(보물 1331호)

 

 

 

 

 

거대하고 화려한 몸광배에 둥근 머리광배를 하고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조그만 불상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두 손을 어깨 위까지 들어 좌우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 상단에는 노사나불과 관련이 있는 천궁과 같은 건물의 처마 끝이 표현되어 있고 하단에는 좌우로 보탑이 배치되어 있다.

18세기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의겸 스님과 함께 활동했던 비현 스님이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선이 아름답게 구사되고 있어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불화의 뒷면에는 후에 괘불을 보수하면서 기록한 화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흥국사 수월관음도(보물1332호)

 

 

 

 

 

둥근 몸광배를 하고 있는 관음보살은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오른 무릎 아래쪽에는 선재동자가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합장하고 서 있다. 맨 하단에는 일렁이는 물결이 묘사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양팔 좌우로는 푸른 대나무 및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과 새가 표현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음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따르고 있는 관음도로서 부분적으로 도식적인 면이 엿보이지만, 안정된 구도에 적·녹·청색의 조화로운 배색으로 화려함과 따뜻한 느낌을 준다. 또한 단정하고 적당한 얼굴표현과 신체비례, 바위면 처리에 있어 회화성 넘치는 표현 기법 등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18세기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의겸 스님이 그린 그림으로, 비록 화면 하단부에 일부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필치, 조화로운 색채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흥국사 16나한도(보물1333호)

 

 

응진당(應眞堂)에 있는 십육나한도로, 나한은 아라한이라고도 하는데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중앙의 영산회상탱은 없어지고, 지금은 나한도 여섯 폭만이 남아 있다.

 

 

 

 

하원장군, 직부사자, 제석천, 16존자



좌우 각각 세 폭씩인데, 중앙의 본존불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1·3·5·7·9·11·13·15존자가, 우측에는 2·4·6·8·10·12·14·16존자가 대칭을 이루면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독특한 구성법을 보여주고 있다. 여섯 폭 모두 황토색 바탕에 인물과 함께 명암처리가 두드러진 바위와 고목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였으며,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중간색을 많이 사용하여 차분한 느낌을 준다.

 

 

가섭존자, 1,3,5존자

 

 

 

 


여섯 폭 가운데 좌1폭은 중앙 본존불을 향하여 예를 갖추고 서 있는 늙은 비구 모습의 가섭존자와 1·3·5존자가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좌2폭은 7·9·11·13존자 순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좌3폭은 15존자와 대범천 및 그 권속들이 그려져 있다. 우1폭에는 중앙을 향해 단정하게 서있는 청년 비구 모습의 아난존자와 함께 2·4·6존자를 그렸고, 우2폭은 8·10·12·14존자가 그려져 있다. 우3폭은 다소곳이 앉아 합장하고 있는 청년 비구 모습의 16존자와 하원장군과 직부사자를 거느리고 있는 제석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6,4,2,아난존자

 

 

 

 

15존자, 범천, 임제사자, 상원장군

 

 

 

 

불화에 수묵화 기법을 도입한 의겸 스님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십육나한도로, 이후 조선 후기 십육나한도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절 뒤편 길가, 마른 씨앗을 달고 있는 만수국아재비

 

 

 

 

 

 

 

※ 흥국사의 가람 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