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고구려

고구려, 백두산 순례 (6) : 항일민족정신의 요람, 용정촌과 대성중학교

모산재 2007. 1. 5. 20:37

고구려, 백두산 순례 (6)

 

항일민족정신의 요람, 용정촌과 대성중학교

 

2006. 08. 16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 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반독재민주화 시위에 나선 젊음들은 이 노래를 장중하게 합창하며 항일민족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굽힘없는 민주화 투쟁의 결의를 다지곤 하였다.

 

그런데, 만주벌판과 풍찬노숙하는 독립운동가의 기개를 떠올리게 하는 이 노래, '선구자'의 고향이 바로 용정촌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곡가인 조두남의 친일 행적과, 작사자 윤해영의 밀정설 등과 함께 이 비장한 한때의 독립운동가는 이곳 용정에서도 시멘트 덧칠을 당한 채 그 의미가 훼손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피끓는 청춘기에 새겨진 이 노래의 울림 탓인지, 용정촌과 연길을 여행하는 내내 내 입에서는 이 노래가 입을 맴도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침, 연길에서 용정으로 향하는 길이다. 버스로 30분 거리. 왼쪽으로는 멀리 해란강이 흐르고 넓은 벌판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에 사과배 과수원 풍경이다. 한인들의 집에는 집집마다 지하 저장고가 있는데, 사과배와 김치를 저장한다고 한다.

 

 

용정 시내에서 가까운 농촌의 풍경 

 

 

 

용정은 연길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작은 도시이다. 윤동주 시인과 문인환 목사가 다녔던 대성중학이 이곳에 있으며 윤동주의 생가와 무덤도 근처에 있다. 해란강과 용문교, 용두레 우물과 비암산 일송정이 있는 항일 민족정신의 요람이기도 하다.

 

예전의 육도하로 1913년에 연변현이 설치되었다가 1983년에 용정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88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작은 도시이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다는 느낌이 든다. 인구의 70%가 조선족인데, 교육열이 높아서 중국에 살면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해란강

 

 

 

 

 

 

 

민족정신의 요람 용정중학

 

교문

 

 

 

교사 전경

 

 

 

방학중인데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풀 뽑기를 하고 있다. 노력봉사를 하는 중이라는데, 아무도 딴전 부리지 않고, 고르게 간격을 유지하며 일을 하는 모습이 예쁘다. 성적에만 예민하고 기본 생활에는 눈치 보며 꾀 부리기에 바쁜 우리 아이들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통합되기 전 옛 대성중학교 건물

 

이곳에서 윤동주 시인, 문인환 목사가 공부하였다.

 

 

 

 

윤동주 시비

 

 

 

연합기념비

 

은진중학, 명신여중, 동흥중학, 광명중학, 대성중학, 광명여중 등 6개의 학교가 연합하여 용정중학이 되었다.

 

 

 

학교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안내

 

 

 

 

이상설 선생 역사전람관

 

 

 

2층 기념전시관에서

 

은진학교 교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노래

 

 

 

윤동주

 

 

 

 

해맑은 표정의 동포 학생들

 

 

아이들과 기념 사진

 

풀밭에서 보랏빛 쥐손이꽃을 꺾어들고 있길래, 무슨 꽃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단다. 이름을 가르쳐 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본다. 지금 1학년이 끝나고 9월부터는 2학년이 된단다. 인터넷도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금방 교사가 집합시키는 바람에 아쉽게 대화는 중단되고 급하게 메일 주소만 교환하고 헤어지다.

 

 

 

학교를 방문한 외부단체를 환영하는 식을 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지시를 어떻게 싹싹하게 잘 따르는지 이곳 교사들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맑고 태도도 순수해서 마치 30~40년 전의 우리 시골 아이들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해란강 용문교

 

두 사람이 건너고 있는 새 다리 저쪽에 보이는 출렁다리(현수교)가 바로 옛 용문교이다. 

 

 

 

비암산 일송정

 

올라가 보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맨눈으로는 정자가 보이지 않아서 줌으로 당겨서 담았다. 일제시대에는 늠름한 푸른솔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정자를 지었다 한다. 1992년에 선구자 노래비가 세워졌으나, 조두남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며 가사 글자는 메워졌다고 한다.

 

 

 

 

다시 연길로 돌아오는 길

 

팔작지붕을 한 한인들의 집 위로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우리의 가을 하늘도 이렇게 파랄까. 

 

 

 

 

모아산(帽兒山)

 

연길의 남산이라 할 수 있는데, 연길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란다. 연길과 용정 사이에 있는데, 모자 모양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란다.

 

 

 

연길과 용정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이 들려주는 가이드

 

 

 

차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아름답다.

 

 

 

 

역시 이곳에서도 일정에 쫓겨 윤동주 생가와 묘지, 용정 기원 우물 등을 돌아 볼 수 없었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볼 수 없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눈 구경만이 아닐 텐데, 이곳으로 처음 이주했던 사람들의 막막한 마음도 되어보고 윤동주가 별을 헤며 그리던 모든 것들에 대한 상념에도 젖어보고, 또 사람사는 모습도 느껴보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