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고구려

고구려, 백두산 순례 (4) 광복절에 오른 백두산 천지 그리고 풀꽃들

모산재 2006. 12. 31. 03:02

 

고구려, 백두산 순례 (4)

광복절에 오른 백두산 천지, 그리고 풀꽃들

2006. 08. 15

 

 

여행을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광복절을 의식하지 못했다. 여행을 챙기는 인천지부 선생님과 일정 이야기를 나누다가 백두산 오르는 날이 광복절임을 깨닫고 백두산에서 조촐한 행사라도 벌여야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건넸다. 

 

엊저녁 밤기차를 타고 오면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중국당국이 백두산에서의 어떤 상징적인 행사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특히 동북공정을 감행하는 그들에게 이 지역을 방문하는 한국사람들의 집단적 의식이 민족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불온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점은 가이드도 강조하는 듯하다. 결국 행사는 포기하는 걸로 한다.

 

몇 시간 눈을 붙였을까 싶은데, 날이 새고 기차는 이도백하에 마침내 도착했다. 5시 30분! 날씨는 흐리다.

 

역을 빠져나오는데, 장사꾼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지도와 손수건을 내밀며 사기를 권한다. 인민폐 10원이라는데 귀찮아 뿌리쳤다. 나중에 지도를 구입하려니 아무데도 파는 데가 없다. 원~.

 

대기한 새 버스를 타고 아침 먹을 곳으로 이동한다. 새 현지 가이드는 똘망똘망한 작은 몸매의 여성이다. 시끄러울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안내를 한다. 가까운 곳에서 아침을 먹는데, 여행을 온 이후 가장 맛이 없다. 이곳은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조선족은 20%밖에 안되는 곳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음식맛이 낯설다. 

 

버스를 타고 장백송 숲 지대를 한동안 지난다. 금강산에서는 금강송이라 불렀던 미인송을 여기에서는 장백송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백두산 아래 매표소에 도착한다. 여기서 또다시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버스로 갈아 타고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버스를 바꿔 타고 산길을 또 10여분 올라야 백두산 입구가 나온다. 차창으로 보이는 산 언덕에 지천으로 핀 야생꽃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번 여행을 온 목적 중에 하나가 백두산 풀꽃들을 만나는 것이었으니, 기대감으로 내 가슴은 벌써 벅차 오른다.

 

입구에 도착하여 걸어서 천지로 향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데 저 멀리 보이는 천지 오르는 길은 안개가 자욱해 살짝 조바심이 일어난다. 

 

 

 

오르는 길에서 제일 먼저 반긴 꽃은 금방망이. 처음엔 미역취인 줄 알았는데, 꽃이 너무 큰 게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이미지로만 보았던 금방망이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비나물

 

 

 

멀리 장백폭포가 뚜렷이 보이고, 이미지로 낯익은 풍경이 시야를 채운다.

 

 

 

 

여기가 달걀을 익혀 먹는다는 '취룡천'이라는 자연 온천

 

달걀을 박스채로 갖다 놓았다.

 

 

 

달구지풀

 

 

 

작은 고개를 넘어서자 환히 모습을 드러내는 장백폭포, 장쾌한 모습에 가슴까지 시원한 기분을 어쩔 수 없다.

 

 

 

여기서부터 내 발걸음은 자꾸만 늦어져 일행으로부터 처진다. 들꽃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꽃들을 담기에 바쁜 탓이다.

 

 

백두산에 자생한다는 염주황기

 

투구꽃. 저 뒤에 핀 노란 꽃들은 모두 금방망이이다.

 

 

 

금방망이

 

 

 

폭포 옆으로 오르는 길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난 돌층계인데, 낙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터널 통로공사를 거의 끝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폭포쪽 시야까지도 너무 심하게 가려 답답하고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폭포 옆의 가파른 계단길이 미어터질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는데, 중국 정부가 중국의 10대 명산의 하나로 지정하고 나서 중국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탓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남한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중국 관광객이 훨씬 많아졌다고 한다.

 

내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끄러운 성조로 말하는 중국 사람들이었다. 자본주의화한 중국에서 졸부들이 많이 생기고 이들은 경개 좋은 곳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는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은 이 지역 사람들이 아니라 중국 각처에서 모여든 유한계급이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동북 공정과 관련된 교묘한 정책도 숨어 있는 듯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불러 모음으로써 한국 사람들의 발길로 한민족의 영산으로 굳어지는 백두산의 이미지를 지워나갈 수 있다는...

 

폭포로 흘러드는 물

 

 

 

물가에 핀 오랑캐장구채와 두메양귀비

 

 

 

흐린 날씨와 안개 때문에 천지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거란 걱정이 많았는데, 장백폭포를 오르고 나니 안개는 말끔히 개었다. 흐릿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달문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 보이고 천지에 가까워졌다.

 

 

쉼없이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나간다는 것은, 그만큼의 물이 어디로부터인가로 공급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두산은 어디에서 이만큼의 물을 공급하고 있는 것일까? 봉우리에 설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석이 많다는 이 화석 지질에서 호수면 위에 있는 봉우리들이 이만한 양의 물을 머금고 있을 리도 없는데...

 

우루무치 천산산맥의 보고타봉에도 천지가 있는데, 그곳은 흘러나가는 수로가 없는데도 천지 바로 아래에 커다란 물줄기가 소용돌이치며 계곡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 호수는 보고타봉의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드니 호수는 언제나 같은 수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원이 노출된 천산 천지에 비해 근원을 비밀로 간직한 백두산 천지는 신비로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천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만 나는 풀밭을 어슬렁거리며 들꽃들을 눈맞춤하고 담는 재미에 빠져든다. 좁은 남한 땅에서 보기 어려운 이 녀석들을 얼마 주어지지 않은 짧은 시간에 실컷 보고 즐겨야 할 것 아닌가.  

 

 

바위구절초

 

 

 

 

그늘용담 

 

 

 

구름국화

 

 

 

 

껄껄이풀

 

 

 

비로용담

 

 

 

오랑캐장구채

 

 

 

드디어 달문이 나타나고...

 

 

 

천지가 모습을 보였다! 

 

감격스럽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다. 날씨가 흐려서, 거울처럼 맑고 쪽빛보다 푸른 호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았는데, 가까이 다가서면서 금방  실망으로 바뀌었다. 

 

달문 가까운 곳에 라면 등 온갖 음식물을 파는 매점이 있었는데, 음식물 국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지저분한 쓰레기들은 주변에 되는 대로 방치되고 있다. 게다가 바로 그 옆에는 푸세식 화장실가지 만들어 놓았는데, 위생상태가 말이 아닐 정도로 불쾌하다. 

 

그냥 여기까지 참을까 싶었는데, 천지 물에 손이나 담궈 볼까 하고 물가로 내려섰다가 기겁하고 말았다. 물 위에는 기름끼 있는 거품이 둥둥 떠다니고 물 속 바닥에는 쓰레기들조차 수없이 잠겨 있는 것이다.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실 수 있다던 천지 물이 손을 담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에 장삿속이 결합되어 백두산은 완전히 유원지가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관광객을 생각해 보면 백두산이 어떤 모습이 될지, 암담해지는 마음이다.

 

 

사람들이 왜 저 먼 곳으로 가는지도 알 만하다. 물이 더럽지 않은 곳을 찾아 손이라도 담궈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달문으로 물이 흘러나가다 보니 달문 쪽의 물(아래 사진)은 거의 오염된 상태이다. 아까 올라오면서 보았던 장백폭도도 이 더러운 물이라고 생각하니 정나미조차 떨어진다.

 

 

 

염주황기 꽃을 수면을 배경으로 멋지게 찍으려고 했는데, 바로 아래 더러운 것들이 떠다니는 물의 모습도 잡혔다.

 

 

 

 

결국 더러운 물가를 피해 구릉으로 올라서서 멀리 북한 쪽 천지를 담기로 한다. 그리고 온천욕을 위해 일행이 대부분 내려가 버린 시간, 나는 그 시간만큼 구릉을 다니며 야생화를 탐색하는 재미에 빠지기로 한다. 

 

 

 

 

 

큰오이풀

 

 

 

껄껄이풀

 

 

 

두메분취

 

 

 

자주꽃방망이

 

 

하늘매발톱

 

 

 

언덕을 올라 내려다 본 천지

 

 

 

꼬리가 없는 설치동물을 만난다. 나중에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선 '할리빵'이라고 부른단다.

아마도 쥐토끼라고도 부르는 우는토끼이지 싶다.

 

 

 

바위구절초

 

청초한 바위구절초처럼 이렇게 내려다보는 천지는 너무도 아름다운 빛깔인데...

 

 

 

오랑캐장구채

 

 

 

두메양귀비

 

 

 

큰오이풀 군락

 

 

돌아가는 길, 되내려오며 다시 본 풍경

 

 

장백폭포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풍경, 폭포 아래 첫번째 건물들이 있는 곳이 산행을 출발한 곳.

 

 

 

 

 

분홍바늘꽃

 

 

 

나중, 다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자리에서 우리 일행이 한 목소리로 성토했던 것이 바로 천지의 오염이었다. 다시는 중국을 통해서는 천지를 찾지 않겠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가겠다면 말리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고, 생각해보니 그 더러운 현장을 왜 카메라에 담을 생각을 하지 않고 피해 버렸는지 후회막급이었다. 그 더러운 현장을 기사화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했는데...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천지의 물이 중국쪽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중국쪽에서 더럽혀진 물이 달문을 통해 중국쪽으로 되나가니 북한쪽은 물론 대부분의 천지가 오염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돈벌이에만 급급한 중국 당국의 행태도 불쾌했지만, 백두산을 중국 10대 명산으로 지정하고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록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작게는 백두산이 중국의 것임을 알리고, 넓게는 고구려사와 고구려 영토가 중국의 한 소수민족사이자 변방 영토라는 동북공정을 현재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