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 4

안동 하회마을 (9) 삼일만세의 현장 화수정 노송, 서애 유성룡의 원지정사

작천댁(류시주 가옥)에서 강변으로 나와 부용대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강변에 만송정(萬松亭)이라 부르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어 하회마을을 더욱 기품 있는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높은 절벽을 이룬 부용대 서쪽으로 지세가 낮아지면서 마을이 북서풍이 노출되는 지형적인 약점을 가리기 위해 류성룡의 형 겸암 류운룡이 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유래된 이름이다. 몇 년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회마을의 명소이다. 솔숲 앞에는 그네가 매어져 있는 넓은 놀이마당이 있는데, 하회별신굿놀이가 벌어지는 장소이다. 놀이 마당 뒷편에 빈연정사와 원지정사가 자리잡고 있다. 놀이마당 뒤 언덕으로 올라서면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운동장이다 싶은데 과연 입구에는 '교적비'라는 비석이 있어 예전 풍남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임을 ..

안동 하회마을 (7) 12칸 긴 행랑채, 충효당 또는 서애종택

충효당은 양진당 앞 길 건너편에 서쪽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밖에서 바라보는 행랑채(대문간채)는 모두 12칸으로 길게 늘어서서 안채와 사랑채를 가리고 있다.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 8칸 오른쪽 3칸이다. ■ 충효당(忠孝堂) = 서애종택 / 보물 제414호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30여 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한다.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선생이 ..

양반 가옥과 하회탈춤의 고장, 안동 하회마을 산책

장마 시기가 한참 지났건만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 많은 한여름에 물도리동, 하회마을을 찾는다. 일곱 명의 동료들과 함께 휴가철을 맞이하여 정처없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탔다가 하회마을을 못 본 사람이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향하였다. 다행히 이 날 비가 그쳤지만 차라리 비가 쏟아지는 게 낫겠다 싶게 후텁지근한 날씨는 숨이 막힌다. 5년만에 다시 만난 하회마을은 입구부터 낯선 모습으로 다가선다. 차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서 멈춰서야 했다. 그리고 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생뚱맞은 상가... 여기가 무슨 중국의 관광지인가 싶게 상업적 욕망이 둥지를 틀고 장터거리가 섰다. 어쨌거나 사대부촌 하회마을이 가져야 할 기품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