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18

부여 (8) 망국의 쓸쓸함, 부소산 백화정과 낙화암 그리고 사자루

고란사에서 서쪽 산길을 잠시 오르면, 솔숲 사이로 백마강을 향해 흐르는 짧고 높은 능선이 보인다. 그 능선의 가장 높은 곳, 바위 봉우리 위에 우뚝 솟은 정자 하나. 백화정(百花亭)이다. 지금 내 발길은 저 백화정을 지나 백마강과 벼랑으로 만나는 낙화암으로 향한다, 백화정 앞에는 낙화암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한 빗돌이 서 있다. 거기엔 이광수가 쓴 '낙화암'이란 시를 새겨 놓았다. 김대현이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려지기도 했던 시다. 사비수 나리는 물에 석양이 비낀 제 버들꽃 나리는데 낙화암 예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 있는 나그네의 창자를 끊노라.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이 시를 보면 일제 말(1940년) 함세덕이 쓴 이란 역사극이 떠오른다. 백제 멸망의 슬픈 역사를 다룬... 승전에..

부여 (7) 고란사 벽화에 담긴 이야기와 수수께끼

많은 사람들이 고란사를 찾는다. 부소산 북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등지고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며 패망한 나라 백제와 낙화암에 몸을 던진 꽃 같은 삼천 궁녀의 비극을 떠올린다. 그리고 백제 왕들이 늘 마셨다는 고란 우물을 마시고 희귀하다는 고란초를 찾아 보며 고란사를 찾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 고란사 전경 여기서 끝나 버리면 아쉬울 거다. 조룡대가 보이는 선착장으로 내려가 황포돛대가 달린 유람선을 타고 백마강 강바람을 맞으며 까마득한 낙화암을 올려다본다면 더욱 좋겠지. 법당 극락보전. 왼쪽으로 회고루, 오른쪽으로 영종루를 거느리고 있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그런데 고란사에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법당 뒷벽에 그려진 벽화다. 고란정 우물 맛을 보기 위해 법당과 영종루 사..

부여 (6) 부소산 등지고 백마강 굽어보는 고란사

궁녀사 뒤 산길을 얼마간 오르니 급경사를 이룬 능선에 이른다. 바로 아래로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백마강(금강 물줄기가 보인다.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고란사로 이르는데, 먼저 조룡대(釣龍臺)를 보고 싶어진다. 조룡대는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는 바위다. 안내도를 보니 고란사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듯하여 동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그 길에서 종종 기와 조각이 발견된다. 백제 기와인지 아니면 고려나 조선의 기와인지 가려 볼 줄 아는 안목이 없으니... 동쪽 능선 아래로 내려 갔으나 백마강으로 이어지는 길은 없다. 발길을 되돌려 처음 오른 위치에서 오솔길로 내려가니 고란사(皐蘭寺)가 모습을 나타낸다. 백제문화제 기간이어선지 좁은 고란사 경내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부소산을 등지고 가파른 언덕에 터 잡..

부여 (4) 부소산성 아름다운 산책길, 영일루· 군창지· 움집터· 반월루

삼충사를 지나 부소산성을 오른다. 울창한 숲속으로 나 있는 산책길은 완만하게 산허리를 돌고 도는데 시원스럽고 운치가 있다. 그리 높지도 않고 평탄하지도 않은 이런 멋진 산책길의 혜택을 받는 부여 사람들이 부럽다. 길 아래로 몽촌토성처럼 흙을 쌓아 올린 산성이 보인다. 산 봉우리를 띠처럼 두르는 이런 모양의 산성을 테뫼형 산성이라고 하는데, 전형적인 백제형의 산성이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해발 106m의 낮은산인데, 동쪽과 북쪽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다. 부소산 남쪽은 완만한데 부여읍내가 자리하고 있고 북쪽은 급경사와 절벽을 이루며 금강이 흐르고 있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부소산성에서 만나게 되는 유적지와 볼거리를 알리고 있다. 안내 팸플릿에는 답사 코스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부소산문(매..

부여 (3)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부소산 삼충사

폐허처럼 쓸쓸한 부여 동헌을 돌아본 다음 백제의 옛 도읍지 사비성의 흔적을 찾아 부소산성으로 향한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와 보고서 30년의 세월이 더 지나 지금 두번째로 찾게 되는 감회가 새롭다. 내 맘 속에도 백제는 그리 살갑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지 싶다. 작년 늦가을 신라 고도 경주 남산을 찾으며 느꼈던 감동을 이곳 백제 고도 부여 부소산에서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매표소가 있는 부소산문으로 발길을 옮긴다. 매표소에서 받은 부소산성 안내 팸플릿 표지 산문을 지나 숲속길을 조금만 걸으면 금방 아늑한 공간에 자리잡은 삼충사(三忠祠)가 나타난다. 백제의 운명이 다하던 순간에 목숨을 바친 의자왕의 세 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은 외문인 의열문(義烈門)과 내문인 충의문(忠義門)을 통하여 들어서도록 돼..

부여 (2) 폐허처럼 쓸쓸한 부여객사와 부여동헌, 그리고 도강영당

신동엽 생가 부근 어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부소산성으로 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성왕 동상이 서 있는 로터리를 지난다. 백제의 전성기를 구가한 도읍지 부여를 있게 한 성왕을 부소산성 가까운 큰길에 모신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백제 제26대 왕(523~554 재위)으로 이곳 부여(당시 사비성)로 도읍지를 옮기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정비한 왕이다.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회복하였지만 신라의 배반으로 신라에 빼앗기고, 신라 정벌에 나섰다가 관산성(지금의 옥천) 싸움에서 전사를 당한 비운의 왕이기도 하다. 부소산성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제57회 백제문화제'를 알리는 광고탑이 서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기대하지 않은 축제 기간에 부여를 찾은 ..

부여 (1) 민족시인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찾아서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겠다고, 깊어 가는 가을날 부여를 찾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먼저 신동엽 시인의 생가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생가의 위치는 터미널에서 계백장군 동상이 서 있는 군청 앞 사거리 못 미쳐 오른쪽 골목이다. 동남리라는 동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 어디에도 생가 방향을 알리는 팻말이 없어 한참 헤매어야 했다. 찾아가고픈 사람들은 큰길에서 성모의원을 돌아 보훈회관을 끼고 쭉 들어가면 된다. 기대했던 생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조잡한 시멘트 기와에 파란 페인트를 칠한 듯한 이 기와집이 설마 신동엽 시인의 생가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하였다. 생가 앞에 승용차들이 늘어선 채 가리고 있는 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대문에서부터 만나는 저 국적을 알 수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