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일> 2000년 7월 29일 토요일
동네처럼 편안한 도시, 시안에서 역사의 향기를 맡다
김포공항 → 시안공항→ 비림박물관 → 섬서성 역사박물관 → 자은사, 대안탑
실크로드, 난생 처음 하는 해외 여행! 그런데 설렘과 기대되는 마음이 없다. 살아보지 않고도 인생을 다 알아버린 듯한 아이들처럼, 나 또한 “뭐 별거 있겠어?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겠지!”하는 심드렁한 마음조차 없지 않았다. 사실 새벽같이 일어나 2시간 걸리는 공항을 8시까지 나가야 된다는 압박감이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 더 앞설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여행용 배낭도 고급으로 사고, 반바지도 구했으며, 메모를 위한 수첩도 준비했다.
그저께 저녁엔 첫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과 새벽까지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엊저녁에는 또 통일캠프 평가회 자리에서 한잔 술을 하고 늦게 집으로 들어와 짐을 챙기느라고 부족한 잠에 일어나기가 참 괴롭다. 어쨌든 헐레벌떡 바쁘게 챙겨 나왔는데도, 구 청사 신한은행 환전소 앞에 20분 늦게 도착했을 때는 모두들 다 나와 있었다.
10시, 아시아나 항공 이륙하다. 기내식을 하며 가벼운 마음, 별 흥분되는 마음은 없다. 2시간이 더 지나 시안 가까운 대륙으로 접어들자 지형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은 산들과 넓은 평원, 그리고 평원을 가르는 물 없는 계곡. 평원과 계곡의 모습이 질 나쁜 바둑판이 쩍쩍 갈라져 있는 듯한 풍경. 사막이 곧 시작될 듯 산은 앙상하게 벗었다. 마을들도 바둑판처럼 모두 반듯한데 고층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함양공항에서 시안 가는 길
후줄그레한 모습의 공항 종사자들이 먼저 보이는데, 첫인상이 우리 시골 동네에서 봤던 모습이다. 도착하자마자 가이드 이상학 씨 마중 나오다. 중국 흑룡강성에서 온 24세의 마르고 작은 몸집의 조선족 청년. 퍽 해맑은 인상. 아버지의 고향은 경북 성주란다.
짐을 승합차에 실어 놓고, 국내선 청사 쪽으로 이동하여 공항 청사 내 식당에서 점심 식사. 야릇한 향기가 나는 식사. 중국 특유의 향채라는 채소를 넣은 탓이란다. 입에 맞진 않았지만 후일에 대비하여 열심히 먹다. 이 공항은 시안 시내에서 많이 벗어난 함양 땅이란다.
시안으로 이동하는 4차선 고속공로, 제한 속도는 80-120km로 되어 있다. 국도변은 이름하여 ‘관중(貫中)’평원. 평원을 황허의 지류인 위수가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진시황도, 항우와 유방, 유비와 관우 제갈량 조조 등도 황토 흙먼지 날리며 이 길을 달렸으리라.
푸른 들판 대부분 옥수수가 차지하고 있다. 10월에 수확을 끝내면 바로 밀 농사로 들어간단다. 들판 곳곳 숲속에 앉은 가옥은 황토색 벽돌담 속에 갇혀 있다. 벽돌공장이 도로변에 더러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숲들이 대부분 오동나무들이다.(가끔씩 포플러, 회화나무 등이 있지만…) 더위를 막아주는데 적합한 나무란다. 내 생각엔 잎사귀가 넓어 황토 먼지를 막아 주는 데 더욱 좋을 것 같다. 복숭아밭, 포도밭도 더러 눈에 띈다.
멀리 뒤쪽으로는 친링산맥이 달리고 있고, 왼쪽으로 여산이 남산처럼 솟아 있다. 북쪽으로 회색빛이 나는 황토고원지대다. 황토 언덕엔 사람들이 살았던 굴집들이 보이기도 한다. 예로부터 이곳 주민들은 가옥, 축사, 창고, 심지어 들판에서 쉬는 그늘도 굴을 파서 만들었다 한다. 시골 도처에 벌집처럼 굴이 많은데, 요즈음 벽돌집으로 주거 개선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곳의 황토는 북서쪽 약 20만년간 고비사막으로부터 실려온 황진이 퇴적돼 이루어졌는데, 황토층이 두꺼운 곳은 수백 m에 달하는 곳도 있다한다. 바로 위수분지와 황하 본류 사이의 황토고원이 바로 그곳이다. 다공질 황토이기 때문에 비가 쉽게 스며들어, 퇴적의 밑부분이 죽처럼 되면서 붕괴되어 이루어진 지형이 바로 비행기에서 봤던 그런 쩍쩍 갈라진 계곡이다.
가로수는 배롱나무와 수양버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시안에 가까워질 무렵 왼편으로 한경제능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거대한 화력발전소가 나타난다.
흐르는 개울은 거의 없다. 황하의 지천인 위수가 흐르긴 하지만…. 연 강수량이 600mm 정도라 우물은 다 관정, 그나마 가난한 집들은 공동으로 우물을 쓴다고 한다.
비림(碑林), 섬서성역사박물관
시안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 비림은 남문 안쪽에 있다. 한나라에서 수,당,송에 이르기까지 역대 비석 1095기를 전시해 놓은 비석박물관이다.
1천여 년 전 송나라 때 조성되었는데, 왕희지, 구양순, 저수량, 안진경 등 대서예가의 대작이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고대 로마에서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가 전래된 사실을 입증하는 '대진경교류행 중국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현판의 글씨는 아편전쟁의 영웅 임칙서가 썼다는데 비(碑)자의 꼭지가 없다. 군데군데서 탁본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기 때문에 비석은 먹물 자국을 잔뜩 쓰고 있다.
당나라 때는 서역 상인들의 숙소와 음식점, 시장이 근처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입구에는 말을 매었던, 동물들 모양의 석주가 도열하고 있다. 남문 밖에 섬서성 비림과 함께 있던 역사박물관을 옮겨 놓았다.
자은사, 대안탑
삼장법사 현장이 경전을 번역한 사원이라 한다. 우리의 사찰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스님들도 건들건들하는 모습이 너무도 분방해 보인다. 대웅전 앞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위해 붉은 왕초에 불을 밝히는 대형 촛대가 있는데, 촛농과 향을 태우는 연기와 향내로 자욱해 마치 시장바닥 같아 정숙한 맛은 전혀 없다.
14살에 당태종의 부름을 받아 궁녀가 된 측천무후도, 한때 바로 이 절에 유폐되어 때를 기다렸던 것을 어느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되살아난다.
☞ 측천무후
산시성 문수현에서 목재상의 딸로 태어나다. 본명은 조(照), 그녀가 황제가 되면서 백성들은 이 글자 대신 ‘조((曌)’를 쓰게 된다.
당태종 이세민은 그녀에게 ‘무미(武媚)’라는 이름을 내리고 궁녀로 삼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랑(媚?)’이라 불렀다. 당태종이 병석에 누웠을 때 태자 치(治)가 병문안을 갔다가 시중드는 미랑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태종이 병사하자 태자는 제3대 고종황제가 된다. 바로 이 시기 무미는 선왕의 비로서 자은사에 유폐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고종의 사랑과 그녀의 야심이 만나면서 라이벌 소숙비를 제거하고, 다음엔 황후 왕씨를 모함하여 내쫓는다. 왕후를 내쫓기 위하여 왕후가 사랑하던 자신의 딸을 목 졸라 죽이고 왕후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그 뒤 두 여인은 곤장 백 대에 수족이 잘리고 술항아리 속에 넣어져 죽음을 당했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55년 그녀의 나이 32살 때 그녀는 황후로 책봉된다. 이로부터 측천무후로 불리며, 책봉을 반대했던 장손무기 등을 유배보내 제거하고, 정치에 관여한다. 고종은 간질병으로 정무를 거의 보지 못해 660년 이후에는 아예 그녀가 정무를 처리한다. 바로 그 해 그녀는 소정방을 보내 백제를 멸망시키고, 8년 뒤 고구려까지 무너뜨려, 수양제와 당태종도 이루지 못한 한반도 정복을 달성한다.
그녀의 야심은 황태자 홍, 둘째 아들 현(賢)을 독살하거나 자결하게 만들고, 셋째 아들 현(顯)도 고종이 죽은 후 중종으로 즉위한 지 1년만에 쫓아내고 자객을 보내 죽인다. 그리고 690년, 그녀 나이 67세에 나라 이름을 주(周)로 고치고 신성황제라 칭하며 여황제에 등극한다. 넷째 아들 단(旦)을 황태자로 하여 성을 무씨로 고친다. 그러나 15년 뒤 재상 장간지가 쿠데타를 일으켜 중종을 복위시키고 당 왕조를 재건한다. 그해 겨울 무후는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다.
이후, 중종비 위씨가 무후를 꿈꾸며 고기만두에 독을 넣어 남편 중종을 살해하나, 단의 셋째아들 이융기가 황제 자리에 올라 정치를 안정시키는데, 이가 곧 현종으로 ‘개원(開元)의 치(治)’를 이룩한다.
사원 내에는 현장법사를 모시고 있는데, 그 왼편에 신라의 원측스님상도 모셔져 있다.
대안탑은 자은사 뒤에 있다.
이 탑은 당 현종의 죽은 어머니 문덕황후를 위해 세운 자은사 경내에 있는 서안의 상징이다. 서유기로 널리 알려진 당의 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가지고 온 불전의 보존과 번역을 위해 건립을 진언한 652년에 세워졌다. 7층이며 높이는 64m, 최상층까지 올라가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당대에는 과거 시험에 합격한 자들이 여기에 와서 이름을 적은데서 안탑제명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이 탑의 이름을 더욱 세상에 떨치게 되었다. 경내에는 현장, 삼장의 여행과 관련된 문물이 전시되어있다.
대안탑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는 시안 시내의 전망은 그만이다. 숲속에 들어앉은 전원도시의 풍경이랄까? 사원의 오른쪽 켠에는 새로 대불상을 조성하는지 공사중이다.
저녁 시간, 저자거리 다니기
잠시 ‘海潮音茶藝?’이란 곳을 들러, 최초의 쇼핑을 하다. 여러 가지 차를 맛보고, 일행들 아낌없이 150원이나 하는 차들을 산다. 그리고 당현종의 집무궁이었다는 흥경궁 앞에 있는, ‘양성왕자대배루(羊城旺仔大排樓)’라는 식당에서 우리의 만두에 해당하는 교자를 위주로 저녁 식사를 하다. 10여 가지가 넘는 교자가 다양하여 제법 호기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썩 맛있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후 ‘시안황성빈관(hotel royal xian)’에 짐을 풀다. 820호에 최성수 선생과 함께 배정받다.
어둠이 내린 저녁 시간, 호텔 앞 도로 남쪽 방향을 따라가다 미용실이 많은 거리에 있는 음식점에서 생맥주를 마시다. 메뉴의 내용을 몰라 비싼 것 위주로 시킨 요리들이 지독한 향신료, 매운 고추, 과다한 소금으로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야 할 정도!
가게를 나올 때 건너편 미용실 간판에 적힌 글귀가 시선을 붙들다. “天下頭等事業 人間頂上功夫.” 다 같이 지혜를 모아 풀어본 뜻 : “세상에 최고의 사업은 인간을 최상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길거리 과일 장수로부터 중국의 남쪽 꽝저우에서 많이 난다는 열대과일인 리지(力枝)를 사다. 양귀비가 아주 좋아했던 과일이라는데, 탱자보다 작은 것이 몇 알 정도 먹을 만했으나, 즐겨 먹기엔 거북하다.
호텔 건너편 시장통 거리에 구걸하는 여인들, 아이들이 간혹 나타나 붙잡는다. 시장통 입구 구멍가게 같은 데서 맥주를 사는데, 이 장면을 노선생이 사진으로 담는데, 웃통을 벗고 있던 주인 아저씨, 발가벗고 있는 5~6세 가량의 여자 아이 황급히 옷을 갖춰 입고, 최성수 선생 함께 사진을 찍다.
● 시안 : 시골 동네처럼 편안한 대도시
비단길이 시작되는 서부의 중심도시. 산시성의 성도(省都). 주 나라 이후 진, 전한, 수, 당 등 12왕조의 도읍지로서 ‘장안’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곳에서 실크로드가 시작된다. 서문밖 길 한가운데에는 실크로드를 떠나는 대상들의 대형 조각석상이 보인다.
관광, 방직, 제약업 발달. 일본회사 진출이 많다. 인구는 300여만. 함양까지 포함하면 600여만에 이른단다.
남문 밖 인력시장 풍경. 거리 인도에는 자리를 깔고 자는 사람과, 도색 롤러를 어깨에 멘 채 일자리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저녁 동문밖에는 모래를 쌓아 놓고 파는 차들 풍경, 토목 건축용으로 매우 비싸단다.
개인 소유 상점들이 꽤 형성되어 있다. 가로수는 주로 회화나무와 플라타너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가로가 그대로 숲을 이룬 느낌. 예전 우리의 시골 마을 같은 풍경과 정서를 자아낸다.
바쁘게 걷는 사람도 급하게 달리는 차들도 없다. 거리엔 신호등이 거의 없다. 중앙선이 있어도 아무데서나 유턴하고, 이에 욕지거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전거 도로가 있는데, 오토바이도 다녔으나 올해부터는 금지시켰단다. 그러나 간혹 오토바이 타는 모습이 보이고, 심지어 밤늦은 시간 폭주족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보인다. 공중버스인 무궤도 전차의 기사는 대부분 여성이다.
남자들은 시내에서도 웃통을 벗고 다니기 예사고, 아주머니들은 6-70년대 우리들 모습이다. 그러나, 처녀들의 옷맵시는 세련되었다. 짧은 원피스차림에 드러난 다리매가 시선을 꼭꼭 붙들어 맬 정도로 아름답다. 침대 생활과 늘 마시는 차 때문에 날씬하다는데, 매운 음식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도시는 도시인데, 시골 동네처럼 편안히 느껴지는 대도시 시안! 최성수 선생은 “시간이 버려진 도시"라고 표현한다. 그렇다. 시간에 쫓기는 삶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에 인간이 순응하며 사람들은 느긋한 걸음걸이를 보인다. 6~70년대 근대화되기 이전의 우리 도시 모습이 이랬을까?
♣ 시안 관광 안내도 ♣
▲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필자가 직접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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