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해남 달마산 미황사

모산재 2005. 12. 22. 12:57

해남 달마산 미황사

2005. 1. 18

 

 

보길도 가는 길, 석양에 물든 서해 바다를 보고 싶어 미황사를 찾는다.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절, 달마산 바위봉우리들을 병풍 삼아 서해 바다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미황사가 우리 여행의 첫번째 목적가 되었다.

 

 

미황사의 옛 기록에는 한결같이 달마대사의 법신이 항상 계시는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 1264년 겨울에 중국 남송의 배 한 척이 달마산 동쪽 바다에 도착하여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고 하던데 이 산이 그 산인가." 하며 한 고관이 주민에게 묻고서는 주민이 그렇다고 하자 달마산을 향해 참배하고 화폭에 담아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면벽수도한 달마대사는 선종의 2대 조사인 혜가대사를 만나 선법을 전해주고는 중국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는데, 달마대사를 선종의 초조로 모시고 있는 중국, 베트남, 한국, 일본 어디에도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그런데, 그때의 중국인들은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가 안주한 곳이 이 곳 달마산이라며 찾아오고 부러워했던 모양이다.

 

 

미황사는 달마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석축 위에 세워진 전각들이 아름다운 절집이다.

 

 

 

 


미황사 사적비(1692년, 숙종 18년)의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어느 날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배 안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지만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의조화상이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이끌고 포구가 나갔다. 그러자 배가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 안에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문수보살,40성중(聖衆) , 16나한, 그리고 탱화, 금환(金環), 검은 돌들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이 불상과 경전을 모실 곳에 대해 의논하는데 검은 돌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왔다. 소는 순식간에 커다란 소로 변했다.

 

 

 

그날 밤 의조 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이 “나는 본래 우전국(優塡國)왕인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의조 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 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했다. 의조 화상은 소가 처음 누웟던 자리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美黃寺)를 창건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 천불벽화가 있는 대웅전(보물 947호)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의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단정하게 앉았다. 돌담의 격조와 색감이 함께 잘 어울린다. 오랜 세월에 씻겨 건물 외부의 단청이 지워지고 나뭇결이 보드랍게 살아 대웅보전을 찾는 이에게 소박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전해준다. 응진전과 함께 1751년에 중수되었다.

 

 


법당 안에는 목조삼존불(석가모니불, 아미타불,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천장에는 범어(인도 산스크리스트어)로 쓰여진 글자와 일천불의 벽화가 있는데 국내에서 보기드문 수작이다.

 

특히 천장 곳곳에 그려진 천불의 부처님 때문에 미황사 대웅전에서 세 번만 절을 올리면 천 배가 되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미황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배(인도에서 경전과 부처님상을 싣고온 배)를 상징하기도 하고, 반야용선의 의미도 있는데 이는 중생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는 배를 상징하기도 한단다. 

 

 


 

■ 응진전(보물 1183호)

 

대웅전 뒤쪽 저 계단 위에 날렵하게 앉은 미황사의 부불으대웅전과 같은 해인 1751년에 지어졌다.

 

 


응진당은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아난, 가섭존자가 모셔져 있고 16나한상, 인왕상, 시자상, 동자상 및 불패가 모셔져 있다. 내부 벽면에 수묵(水墨)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선필(禪筆)의 경지를 보인다고 한다.

 

응진전 마당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진도와 서해 섬들의 풍경이 절경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볼 수 없다.

 

 

대웅전 기둥

 

 

 

돌담

 

 

 

대웅전 돌쩌귀

 

 

 

대웅전 문고리

 

 

 

대웅전 주춧돌

 

 

 

대웅전 포와 쇠서

 

 

 

 

 


■ 요사채

 

 


 

■ 부도밭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오솔길을 걸어 작은 고개를 넘으면 나타난다.

 

 

 

 

 


흰둥이. 심심해선지 사명감에서인지 우리를 졸래졸래 따라 다녔던 녀석이다. 어둠이 깃들자 눈에 화등을 켰다,

 

 

 

금방 어둠이 내려 앉고...

 

 

 

 

다음 목적지 보길도로 가기 위해 서둘러 땅끝으로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