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악회에서 용늪으로 가는 대암산 산행이 있다며 함께 가자는 동료 J의 제안에 귀가 솔깃하여 오케이, 한달 반 전에 예약한 산행에 나섰다. 용늪이 코스로 끼어 있어선지 일찌감치 예약 마감이 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용늪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다만 전망대에서 잠시 용늪 일대를 내려다보고 대암산을 거쳐 하산하는 게 산행의 전부! 3년 전에도 용늪이란 미끼를 덥석 물었다 용늪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대암산만 올랐다 하산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용늪 부근을 지나치긴 했지만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용늪에 대한 꿈에 부푼 채 산악회 버스에 올랐다.
인제를 지나 대암산 가는 길은 비록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눈에 익었다.
서흥리 용늪마을 입구 논장교 부근 용늪마을생태학교에서 현지 길라잡이 두 분이 나와서 우리 산행을 안내해 준다. 가이드비도 1인당 5천 원씩 냈으니 이제 용늪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 대암산 용늪 등산 지도
임도를 따라 올라갈 때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차가 오르지 못하여 모두 내려서기도 하며 도착한 곳은 3년 전 하산길로 물을 건넜던 곳.
일기예보에는 며칠간 지속되던 장마가 오늘 오전 중에 갠다고 하였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입구가 잘 정비되어 다리도 놓여 있다.
이곳에서부터 용늪과 대암산 산행은 시작된다.
※ 대암산 용늪 및 심적습지 안내도
다리 아래로 힘차게 흐르는 계곡 물
물소리가 굉응처럼 울리는 계곡을 따라 등산로를 30여 분쯤 오르자 물을 건너야 하는 곳과 마주친다. 3년 전에도 건넜더던 낯익은 곳!
며칠간의 장마비로 종아리를 훑어가는 물살이 제법 거세어 몸이 휘청거릴 정도다.
계곡을 건너 5분쯤 오르자 대암산 방향(왼쪽)과 용늪 방향(오른쪽)의 등산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산정 부근에 있는 고산습지가 발달한 탓인지 대암산 오르는 길은 계곡이나 다름없는 물길로 이어진다.
계곡을 건너기 전까지만 해도 이리저리 물길을 피하며 발이 젖지 않도록 노력하였지만 어느 사이에 모든 걸 포기하고 저벅저벅 거침없이 물길을 걷는다.
등산화 속에서 물이 가득차 오르는 것을 시원스레 느끼며 걷는다.
말나리꽃이 젖은 채 군데군데 꽃을 피웠다.
약초꾼들이 거주했다는 열린 터에는 아마도 그들이 재배했던 것으로 보이는 당귀와 만삼이 흔하게 보인다. 아직 꽃봉오리만 올렸을 뿐 꽃이 피지 않았다.
당귀
만삼
어수리
단풍취가 벌써 꽃을 피웠다.
두메담배풀은 아주 흔하다.
국수버섯과로 보이는 버섯, 쇠뜨기버섯일까...?
이것은 밀버섯이지 싶다.
병풍쌈 못지 않게 잎이 대형인 박쥐나물도 꽃을 피웠다.
물길이나 다름없는 흥건한 등산로
능선에 가까워지면서 큰세잎쥐손이가 흔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흰꽃바디나물
동자꽃
네잎갈퀴나물
산꼬리풀
꼬리조팝나무는 잎이 단단하고 왜소해 보인다.
능선에 거의 이른 곳에서 만난 개구리미나리, 비교적 흔치 않은 종이다.
송이풀이 꽃을 달았다.
능선에 다가설 무렵 빗방울은 그쳤는데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정오 무렵에는 해가 반짝반짝 나리라던 일기예보는 어찌된 것인지...
등산화 속에 가득고인 물의 찰랑거림을 느끼며 물길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습지식물 방울고랭이가 모습을 보이고...
물 고랑 속에서 눈비녀골풀이지 싶은 골풀이 무더기로 자란다.
드디어 능선에 오르고...
용늪 전망대 조금 못 미친 임도, 박석을 깔아 놓은 길바닥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이슬비는 여전히 내린다. 해가 날 가망이 없어 보여 실망스럽다.
이제 용늪으로 들어설 거라 생각하여 렌즈를 100mm로 바꿔 장착!
그런데 이게 큰 실수가 되고 만다. 용늪 탐방은 계획에도 없었고 안개가 자욱하여 용늪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못하고 말았다. 게다가 배낭에 두었던 100mm렌즈는 온도와 습도 차를 견디지 못하고 뿌옇게 김이 서리면서 초점을 맞추지 못해 애를 먹인다.
마타리가 꽃차례가 왜 저럴까 하고 보니 마타리가 아니라 솔체꽃인 듯하다.
아직 꽃차례가 달리지 않은 쇠서나물
구릿대
능선길에는 가는오이풀이 흔하게 자란다.
긴오이풀과 워낙 비슷해서 구별이 어려운데, 긴오이풀은 수술이 많이 짧은 편이다.
용늪 전망대에서 해설사는 용늪의 지질학적인 특성과 용늪에 사는 생물들, 그리고 용늪의 생태학적 의의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짙은 안개에 덮인 용늪은 모습을 드러내길 거부하고, 멀리서나마 구경도 못한 채 능선길을 따라 대암산 정상을 향한다.
이 때서야 용늪이 오늘의 방문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 둔감이란 원...
뭣 때문에 안내자 두 명씩이나 따라 붙고 5천 원식 탐방비를 내야했는지... 대암산 등산 입장료를 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도라지모시대
참좁쌀풀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비나물
꽃이 아주 노랗다. 누른말나리로 봐도 될까...
큰세잎쥐손이
꽃잎을 연 곰취
열매를 단 세잎종덩굴
현삼 종류가 흔하게 보이는데, 잎겨드랑이에서 꽃차례가 발달하고 꽃받침 열편이 길게 뾰족한 것으로 보아 토현삼인 듯하다.
이곳의 오리방풀은 잎의 폭이 넓어서 지리오리방풀로 보는 게 맞을 듯...
야생화 10년 만에 구실바위취를 처음으로 만난다.
종자 날개에 단풍이 곱게 든 미역줄나무
꽃송이가 고개를 숙인 도깨비엉겅퀴도 유난히 많다.
깊은 산속에서만 사는 엉겅퀴~.
꿩의다리아재비 열매
벌써 가을이 가까워지는 건가?
난쟁이바위솔이 꽃망울을 달았다.
강원도 심산 능선지대에 흔히 발견되는 배초향
어둡고 습한 계곡, 렌즈는 김이 서려 피사체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애를 먹는다.
노루오줌
흰 꽃을 피우는 참나물.
줄기 하반부는 붉은 빛을 띠어 흰 꽃을 피우는 큰참나물이 아닐까 싶은데
사진이 그 특징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만다.
물고랑길을 벗어난 곳을 살펴보다 붉은덕다리버섯을 발견한다.
보정을 통해 이만한 이미지를 겨우 얻는다.
골짜기를 벗어날 무렵부터 하늘이 개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렌즈에는 여전히 뿌연 김이 사라지지 않아 초점 형성이 잘 되지 않는다.
꽃을 피운 두메담배풀
그리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활짝 개어 푸른 하늘을 드러내었다.
활짝 갠 하늘빛을 닮은 개미취 꽃
바로 한 주 전 고향에서는 빨갛게 익은 딸기를 입이 메어지게 따먹었는데,
이곳의 멍석딸기는 이제야 꽃을 피웠다.
용늪을 간다고 해서 나선 산행길인데 용늪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습하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풀꽃나무 사진도 온전하게 담지 못하고 물에 흠뻑 젖은 등산화를 털며 오늘 하루 대암산 산행은 마무리 되었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와서 신사동 뒷골목에서 치킨구이와 함께 마신 생맥주 맛은 참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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