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지리산 둘레길 제3코스, 인월-중군마을-황매암-배넘이고개-장항-상황마을

모산재 2012. 6. 27. 09:18

 

주말,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다. 아직은 5월이니 둘레길 걷기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인월에 도착하니 점심 때쯤. 애초 출발할 때는 작년 봄 실상사에서 상황마을로 가서 금계리까지 걸었으니 그 다음 구간인 금계-동강 길을 걸을까 했는데, 금계리 가는 버스가 몇 시간 뒤에나 있다는 걸 확인하고 계획을 바꾸어 인월에서 상황마을까지 걷기로 한다.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인월 기사식당에서 12가지 반찬이 나오는 정식을 주문한다. 6천원짜리 정식은 반찬이 12가지나 되면서도 푸짐하고 정갈하며 맛깔스럽다. 뚝배기맛이 된장 맛이라고 된장이 좋으니 맛이 좋을 수밖에...

 

 


먼저 지리산둘레길인월센터에 들러 둘레길 안내 팸플릿부터 하나 구입한다.

 



인월천 건너편 둑방길로부터 둘레길 제3코스 인월-금계 구간이 시작된다.  

 


 

 

바람에 잔물결이 파르르 이는 강물은 평화롭다. 물 속 바위 위에 함께 웅크리고 있는 오리 한 쌍이 정다워 보인다.

 

 

 


금계리 방향의 둘레길로 들어서는 다리, 구인월교.

 

그 아래 강변 풀밭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다리 위쪽 개울 한가운데 '영월대(迎月臺)'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띈다.

 

 

 

휘영청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누대, 그 멋스런 정자가 놓일 법한 지형도 아닌데다 뎅그러니 놓인 글바위도 그리 폼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는 '영월대'란 글씨...

 

그렇다면 정자가 있던 곳에서 큰물로 떠내려온 바위란 말인가...?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싶어 찾아보니, 인월천에는 영월대란 바위가 있는데 물 가운데에 수백 사람이 앉을 만하다는 넓다란 바위에서 인월팔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런데 인월이란 지명에는 영월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고려 말 우왕 때, 1380년에 키가 7척이 넘는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이성계가 운봉의 황산에서 맞았던 모양이다. 마침 그믐밤이라 적을 분별하여 싸움을 할 수가 없어 달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보름달이 환히 떠올랐고 이에 적군의 모습이 드러나자 이성계가 활을 쏘아 아지발도를 죽였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아지발도는 16~17세의 소년으로 견고한 갑옷과 구리 가면으로 무장하여 빈틈이 없어 죽일 수가 없었는데 이성계가 투구 윗 꼭지를 쏘아 투구를 떨어뜨리고 퉁두란이 이 틈에 그를 쏴서 죽였다고 한다. 이성계가 달을 끌어 올렸다 하여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영월정이란 정자는 이성계가 달을 끌어올려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것을 기념하여 세웠고 해마다 인월제(引月祭)를 지낸다고 한다.

 

영월정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버려진 듯한 영월대는 처량한 모습이다.

 

 


둑방길 가에는 아까시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벌써 여름 기운이 느껴진다.

 

 

 

파쇄된 잔돌을 두텁게 깔아 놓은 탓으로 자갈돌들에 미끄러져 둑방길을 걷기가 매우 불편하다. 패어진 부분만 보수하면 될 것을 ...

 

 


둑방길을 돌아가니 중군마을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로 들어선다.

 

 


 

도롯가에는 고광나무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도로가 내를 따라 돌아드는 언덕에 중군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이름이 참 특이하다 싶었는데...

 

중군마을은 임진왜란 때 군사 요새지였단다. 당시 전투 군단 편성 중 전군·중군·후군과 선봉부대가 있는데 이중 중군이 주둔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군마을을 지나자 잠시 계단식 논 사이로 난 길...

 

 

 


그리고 금방 들은 사라지고 산길로 접어든다.

 

그곳에서 길은 둘로 나눠진다. 하나는 내를 따라 가는 도로, 또 하나는 황매암이라는 절 방향으로 가는 산길이다. 두 길은 고개를 넘어서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 길 중에서 황매암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이내 나타나는 황매암! 작은 암자이지만 황매암은 대웅전을 거느리고 있다.

 

 

 

 

2004년에 창건하였다니 얼마되지 않은 암자이다.

 

암자에는 창건한 일장스님이라는 분이 참선 수행 중이라는데, 널리 알려진 스님이라 한다. 확인해보니 성철 스님의 스승인 동산 스님의 마지막 상좌이며 실상사의 연관스님과는 절친한 도반. 그리고 석정ㆍ수안 스님과 함께 한국 선화(禪畵)의 3대 명장으로 불리는 분이다.

 

"팔만대장경 법문도 한 가지 실천행에는 못 미처"라는 인터뷰 기사도 찾아지는데, 이 분의 철학의 요체가 가슴에 다가온다.

 


해우소에 붙어 있는 글은 더욱 마음에 든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무를 껴안고 대화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리라.

맨발로 흙을 딛고 서는 법을 알게 하리라.

한마리 자벌레의 설교에 귀 기울이게 하리라.

 



그러나 일장스님도 절을 비운 것인지 산사는 인기척이 없고 마당 끝에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낯선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다.

 

 

세상에, 이 개를 처음 보는 순간 부처님인 줄 알았다. 어쩌면 저렇게 선량하고 너그러운 표정이란 말인가.

 

 

 

 

 

이 부처님에 정이 들고 곁을 떠나기 싫어 한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일장스님을 만나지 못해도 부처님을 만난 행복감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황매암에서부터는 고개와 능선을 넘는 산길이 이어진다.

 


꼬리풀 종류로 보이는 풀...





기대하지도 않은 희귀종 세뿔투구꽃 어린풀을 만난다. 꽃 피는 계절이 아니어서 좀 유감... 

 

 

 

 


산허리를 타고 능선을 넘는 숲길이 이어지고

 

 

 

 


다시 임도와 만난다.

 

계곡의 길가에는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다시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들어서는 둘레길...

 

 

 


물이 흐르는 이 곳을 이름하여 수성대 쉼터라 부른단다.

 

 


 

계곡에서 잠시 쉬며 땀을 식힌다음 다시 배넘이재라는 고개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배넘이재는 중군마을에서 장항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그런데 이 높은 지리산 기슭에 배넘이재라니 무슨 말인가...

 

그 옛날 운봉이 바다였을 때 바닷물이 이곳까지 넘어와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그래서 배마을이라는 주촌이 운봉 가까이에 있고 배를 묶어 두었다는 고리봉이 있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지명 전설이 재미 있기는 하다.

 

 


배넘이재를 넘으면 산내면. 배넘이재를 넘으니 은대난초가 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뻐꾹나리로 보이는 풀도 보인다.

 

 


 

재를 넘어 산발치로 내려서는 길에는 골무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멀리 매동마을과 등구재로 이어지는 풍경이 시야로 들어선다.

 

 


장항마을로 내려가는 길

 

 

 

 

 

장항마을과 멀리보이는 지리산 일성콘도.

 

장항마을은 장성이씨 집성촌이다.

 

 

 

산세가 노루목과 같다고 하여 노루 장(獐)자와 목 항(項)자를 합하여 장항이라 하는데, 지금도 노루목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을 뒤 언덕에 풍채가 당당한 멋드러진 낙락장송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장항마을의 소나무당산이다.

 

 

 

 

 

 

 

 

멋진 신목을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땀에 젖어 걷던 사람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발길을 멈추고 감탄을 쏟아내며 풍경을 담고 자신의 모습을 담느라 분주하다. 더러는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수령 400년으로 높이가 18m인 소나무는 용틀임하는 듯 붉은 가지들을 아래로 드리우고 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배경이 되어 주니 더욱 신성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이다.

 

 

소나무 아래에는 돌탑을 쌓아 놓았다.

 

 

 

설날 다음날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소나무 당산 옆 언덕에는 미나리아재비가 대군락을 이루고 노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당산을 내려서면 바로 장항교를 건너게 된다.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아 수량이 줄어든 개울. 아낙들이 다슬기를 줍고 있는 모양이다.

 

 

 

 

장항교를 건너며 돌아본 장항마을 입구, 당산 소나무

 

 

 


60번 국도를 건너 매동마을로 향하는 언덕길로 들어선다.

 

언덕길 양쪽에는 솔방울을 엮어 주렁주렁 걸어 놓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단순히 장식용 볼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민속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코를 찌르는 진한 향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흐드러지게 핀 때죽나무 꽃.

 

 

 


언덕의 능선으로 돌아드는 곳에 금계리와 매동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둘레길 걷기를 계속하려면 금계리로, 멈추려면 매동마을로 내려서면 되는 거다. 산내 삼거리로 매동마을에서는 금방이다.

 

 

 


길을 접기는 아직 해가 남아 두어발 남아 있는 편이어서 일단 상황마을까지 걷기로 한다.

 

상황마을까지는 산길. 20~30년 생 소나무들이 들서선 숲길은 그리 험하지 않고 아기자기하다. 상큼한 솔향을 맡는 것도 행복하다.

 

 

 

 

사람들의 발길에 뿌리가 시달린 탓일까. 백 년은 되었을 법한 나무 한 그루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올해의 극심한 가뭄을 온전히 견뎌내고 푸르름을 회복할 수 있을지....

 

 

 

몇 굽이 능선의 허리를 타고 흐르는 산길, 곳곳에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천막 쉼터들이 있다. 하지만 문을 닫은 모습들...

 

 

 

숲속 길 옆으로 쌓아 놓은 석축, 무엇이 있었을까 싶은데, 논이 묵은 자리란다. 한때 오곡이 자라던 농토가 이렇게 산으로 변해 버린 것...

 

 

 


 

숲을 벗어나기 직전의 골짜기에는 갈퀴나물 종류가 꽃을 피웠다.

 

꽃차례와 꽃색이 좀 낯설어보이는 것이 갈퀴나물이나 등갈퀴나물 등 자생 갈퀴나물류는 아닌 듯하고, 유럽에서 들어온 벳지(털갈퀴나물)가 아닐까 싶다.

 

 

 

 

드디어 길은 상황마을에 접어들고, 계획대로 둘레길 걷기는 멈추기로 한다. 벌써 6시를 지나고 있다.

 


산내 쪽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자 '실상사 작은학교' 팻말이 나타난다. 예전 실상사 옆에 자리잡고 있던 학교가 2007년 이곳으로 이전해 온 것이다.

 

 

 

꽤 넓은 골짜기에 마을을 형성한 실상사 작은학교

 

 

 

 

 

2001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깨달음은 나무처럼 자라난다>는 상징 문구를 내세우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대안학교이다.

 

 

시간이 좀 널널하다면 살펴보면 좋으련만... 생활관에서 교사 1명과 학생 3~6명이 작은 가정을 이루고 자율적으로 합의한 생활 방식에 따라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확인해 보았으면...

 

하지만 언제나 길을 가기에만 급급한 여행자는 멀찍이 서서 사진 몇 장만 담고 돌아서고 만다.

 

 

 

 

큰길을 따라 내려오다 꽃받이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거칠고 덩굴을 이룬 줄기의 길이가 훨씬 긴 지치과의 풀을 만난다.

 

 

 

 

꽃과 잎을 봐선 개지치 같은데, 줄기가 이렇게 길게 자라고 가지가 많이 벌어져 있는 모습이 낯설다.




그리고 이내 산내에 도착한다.

 

산내 거리에 지리산댐 건설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 있다. 부산 사람들 식수원 확보를 위해 엄천강 상류 국가명승예정지인 용유담이 수몰될 위기에 이곳 주민들이 발벗고 나선 모양이다.

 

 

 

 

 

지리산 케이블카 건설을 두고 남원, 함양, 산청 등 지자체가 서로 다투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어지는 둘레길 제3코스 상황마을-금계리 => http://blog.daum.net/kheenn/1585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