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오후, 허쭤 천장터(天葬垈)
허쭤에 도착하자마자 '국색천품(國色川品)이란 식당에 다시 들러 점심을 먹는다. 그저께 이곳에서 밀라레빠 불각을 돌아본 다음에 점심을 먹었던 곳.
그 땐 가지 요리와 김치콩나물국처럼 시원하던 탕이 인상 깊었는데, 오늘은 이 얇게 저민 돼지고기 요리가 입맛을 개운하게 만든다.
식사 후 그저께 멀리서 바라보았던 허쭤의 천장터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있는 랑무스의 천장터와는 달리, 이곳의 천장터는 높지 않은 구릉에 자리잡고 9만 인구가 살고 있는 간난티베트자치주 정부 소재지 허쭤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양들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
돌아보니 허쭤 시내가 그림처럼 앉아 있다.
오토바이가 달리고 자동차도 달리는 이 아름다운 초원의 언덕이 정말 천장터란 말인가...
천장터를 향해 오르는데, 천장터 안 사원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나와 소리를 질러댄다.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다.
오른쪽 소각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어 오늘 천장이 있었던가 싶기도 한데, 이미 끝난 천장이라면 왜 접근을 못하게 하는 것일까... 경모 씨도 이런 적이 없다고 하는데, 저렇게 완강히 거부하는데도 접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하다.
결국 천장터를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천장터 주변 언덕에는 붉고 흰 피뿌리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망자의 영혼들이 꽃으로 피어난 것일까? 랑무스 천장터 주변 초원에도 온통 피뿌리풀과 금로매 꽃으로 덮였었는데....
이승의 뭇생명들로부터 받은 육신을 독수리와 까마귀에게 되돌려주고 육신으로부터 벗어난 망자들의 영혼은 마지막으로 저 아래 이승을 돌아보며 하늘을 훨훨 날아올랐을까...
훨훨 날아오르는 하늘도
살아왔던 땅도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어디가 이승이고 어디가 저승일까...
윤회를 벗어나고 싶을 만큼 이 초원 위에서의 삶은 고해(苦海)였을까...
천장터 뒤 정상 언덕 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보다가 뜬금없이 천상병의 '귀천'이란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영혼 불멸보다도 이승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더 소중한 나...
하늘에 장례 지낸다 해서 천장이지만 육신을 독수리나 까마귀 같은 날짐승에게 보시하는 장례라 조장(鳥葬)이라 부르기도 하는 티베트의 장례 풍습.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흰 천으로 싸서 집 안에 뉘어 놓고 겨울에는 3~5일을, 여름에는 1~3일을 라마승이 염불을 하며 문상을 한다. 이 기간 가족들은 머리도 빗지 않고 얼굴도 씻지 않으며 웃거나 크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천장 의식은 라마승이 주관한다. 죽은 육신을 해부해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천장사(돔덴)는 라마승으로 활불이 임명한다고 한다. 천장터에 육신을 놓고 향불을 피우고 참파(볶은 보리가루)를 모닥불에 뿌린 다음 사람 넓적다리 뼈로 만든 퉁소를 불어 독수리 떼를 불러 모은다. 천장사는 망자의 머리를 묶어 고정시키고 등과 복부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칼로 시신의 가죽과 살을 발라 낸 다음 토막쳐 놓고, 머리와 뼈는 잘 빻아서 참파 가루와 섞어 작게 주먹밥을 만들어 독수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한다.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는 티베트불교를 연 파드마삼바바가 쓴 티베트 산중에서 쓴 108개의 경전 중 하나로 후세 제자들이 찾아내어 남겼다는 전설의 경전이다. 원래 제목은 티베트어로 '바르도 퇴돌'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어서 다시 환생할 때까지의 기간에 사후의 영혼이 겪게 되는 여러 현상을 설명하고 해탈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죽음과 다음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자를 위한 안내서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영혼이 끝없는 여행을 하며 몸을 받아 세상에 나고, 죽음이란 몸을 받지 않은 때를 말하니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라 가르친다. 금생은 한 번뿐이고 미래의 삶은 수없이 많으니 선행을 쌓으면 무수한 다른 생을 밝힐 수 있으니 죽음은 그리 슬프거나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티베트인은 원래 시체를 자연(동물)에 맡기는 자연 천장(=풍장)을 하였는데, 야생동물에 의해 육신이 훼손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생명의 순환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았다. 바위투성이의 척박한 고원지대에다 겨울이 길어 꽁꽁 언 땅은 매장이 불가능한 때가 많다. 유목민들이 많아 무덤을 만들어도 정착민처럼 돌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무가 귀하니 화장을 하기도 어렵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유목민들은 자연스럽게 풍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 자연 천장의 풍습은 토착 종교 본교의 장례제도와 윤회전생이라는 불교 사상이 결합하면서 망자의 육신을 하늘의 사자인 독수리들에게 보시함으로써 덕을 쌓고 영혼을 해탈시키는 천장이라는 장례법으로 발전되어온 것이다.
천장터 뒤 정상의 능선에 올랐지만 독수리도 까마귀도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이곳이 과연 천장터일까...
그저 아름다운 자연 풍광만 시원스레 펼쳐질 뿐이다.
전망 좋은 도시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천장터 너머, 4차선 고속도로가 완공을 앞두고 있는 모습...
저 도로를 통해 밀려올 중국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티베트의 정신문화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중국 자본주의의 속도 문화가 이 언덕을 언제까지나 넘어서지 말기를... 밀라레빠불각과 천장터로 대변되는 간난 티베트의 정신문화를 이 언덕이 언제까지나 지켜주기를...
천장터 동쪽 완만한 언덕에는 후이족(回族)의 돌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장족의 조장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야크로 보기에도 그냥 소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모습. 아마도 야크와 황소의 잡종인 '티벳 편우(犏牛)', 장티베트말로 '조(Dzo)'가 아닐까 싶다.
동쪽으로 보이는 밀라레빠 불각 등 허쭤사원...
천장터가 바라보이는 능선의 풀밭 위에서 소풍을 즐기는 여인들과 아이들...
장족도 후이족도 아닌 듯한데... 한족인지, 아니면 다른 소수 민족인지 알 수가 없다.
밀라레빠 불각이 보이는 언덕에 앉아 있는 후이족 꼬마들. 그 뒷모습이 정답고 귀엽다.
말을 걸었더니 뒤를 흘낏 한번 쳐다보고서는 딴전을 부린다.
천장터 옆 능선을 걷고 있는 동료들
갑자기 공중을 선회하는 새 한 마리.
매로 보이는 이 한 마리 새가 천장터임을 알리지는 않을 텐데도 긴장해서 하늘을 한 동안 쳐다보았다.
어느 새 이 꼬마들이 뒤를 따라 내려왔다.
사진을 찍어 주려 했더니 한사코 피한다. 티 없이 명랑한 점은 위구르 아이들과 닮았는데, 사진은 응해주지 않는 점은 위구르 아이들과 다르다.
경모 씨가 억지로 붙들어서 이렇게 사진 한 장 남겼다. 개구장이 모습이 표정에 역력하다.
천장 터 입구 절개지에 털복숭이 새끼 돼지들이 방목되고 있다. 허쭤를 소개하는 글에는 '허쭤 돼지'라는 이름이 언급되는데, 머리의 긴 흰털도 그렇고 별스런 특징이 있는 품종인 모양이다.
아쉽다고 해야할지, 다행스럽다고 해야할지...
랑무스의 천장터에서도 이곳 허쭤의 천장터에서도 천장하는 현장을 만나지 못하였다. 머리로는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끔찍함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티베트 천장 문화. 내가 어떤 입장에 있건 티베트인들에겐 엄숙한 고유문화요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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