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오전, 허쭤 밀라레빠불각
고산 속에 자리잡은 동티베트, 샤허의 하룻밤은 길었다.
긴 밤 새벽녘에 눈이 뜨이더니 더는 잠이 오지 않고 많은 상념에 잠기며 아침을 맞이한다.
햇살이 비쳐드는 아침,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마을 곳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어릴 때 보았던 정겨운 풍경, 가슴이 뭉클해진다.
샤허와 라부렁스는 몇 년 전만 해도 찾아가는 길조차 편안하지 않는 외진 시골이었다고 한다. 최근 랑무스와 함께 이름이 알려지며 급속히 관광지로 변모되고 있긴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태고적 고산 초원이 펼쳐지는 티베트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하지만 호텔 바로 앞에는 대형 크레인이 동원되어 신축 건물을 짓는 공사 중이다.
라부렁스는 티베트인들의 것이지만 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상가 건물은 한족의 것! 티베트인들의 정신과 문화는 한족을 먹여 살리는 관광문화상품이 된다. 이런 현상은 티베트 전 지역에 서 급속히 일어나고 있다.
광장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여인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쌀죽에 삶은 달걀, 만두를 야채볶음과 함께 먹는 간편한 식사다.
8시 30분 호텔을 출발한다.
오늘 일정은 라부렁스에서 멀지 않은 간난티베트자치주의 주도인 허쭤(合作)에서 밀라레빠불각(佛閣)과 천장(天葬)터를 둘러본 다음 루취현(碌曲县) 랑무스(郞木寺)까지 가는 것.
어제 왔던 길로 되나가는데 어제 보았던 사원 이름이 더얼롱스((德尔隆寺)라는 것을 누군가가 알려준다. 편리한 세상, 구글 지도 검색으로 알아낸 것이다.
삼거리에서 화장실 다녀 올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
길게 세운 관광 안내판에는 '구색간난샹바라(九色甘南香巴拉)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씌어 있다. 이곳 간난티벳자치주의 풍광을 '샹그릴라'와 동의어로 쓰이는 '샹바라(=삼발라)'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의 아홉 곳 경치는 샹그릴라와 다름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라부렁스, 랑무스를 비롯하여 허쭤의 탕저우초원(當周草原) 등 간난자치주의 아홉 샹바라 절경을 둘러보기만 해도 괜찮은 여행이 되겠다 싶다.
샤허의 아름다움을 홍보하고 있는 간판...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우회전하여 허쭤 가는 길은 한동안 들판이 펼쳐진다. 티베트에도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고개를 넘어서 20km 달려 간난티베트 자치주(甘南藏族自治州)의 주도인 허쭤(合作)에 도착한다. 샤허에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
도착하자마자 밀라레빠 불각(米拉日巴佛阁)으로 향한다.
밀라레빠 불각 담장은 긴 마니차 회랑으로 되어 있다.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축물...
차량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보이는 사원 풍경
밀라레빠 불각의 정문은 이곳을 한 블록 더 지나서 나타난다.
정문 앞에는 불각에 공양으로 태울 생나무 가지를 팔고 있다. 향나무 같기도 하고 측백나무 같기도 한 나무...
정문 현판에는 '안둬허쭤스위안 미라르바푸거(安多合作寺院 米拉日巴佛阁)'이라 적혀 있다. 사원의 이름을 '허쭤스'라고 부르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밀라레빠불각'은 하나의 건물이니 사원 이름으로는 어색하고...
어쨌거나 이곳의 대표적 전각은 밀라레빠 불각인데, 다른 전각들도 많이 있으나 사원으로서의 명칭이 따로 없어서 그냥 '허쭤사원'이라 표현해 놓은 듯하다.
정문 기둥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특이한 양식의 고층 불전, 밀라레빠 불각(米拉日巴佛閣).
여기서 잠시, 티베트 불교의 최고 성자이자 시성(詩聖)으로 찬양받는 밀라레빠에 대해서 잠시 공부하기로 하자.
※ 밀라레빠(1040~1123)
티베트 불교의 종파인 카규파(喝擧派)의 승려이며, 카규파 시조인 마르빠(Marpa:1011∼109)의 제자이다. 네팔 국경 근처인 궁탕(Gunthan)에서 태어났다.
그가 승려가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장사로 큰 돈을 벌었으나 그가 일곱 살 때 죽었다. 아버지가 죽자 백부가 재산을 빼앗고, 그의 어머니에게 결혼을 강요하였다. 어머니는 이를 거부하고 밀라레빠에게 흑주술(黑呪術)을 배우게 하였다. 흑주술을 배운 밀라레빠의 주문으로 백부의 집이 무너지고 가족이 몰살당하였다. 그러나 원수를 갚은 밀라레빠는 자신의 죄업을 뉘우치고 불문에 들어섰다.
이후 닝마파(Ninmapa)로부터 구승(九乘)의 가르침을 받고 무상유가밀(無相瑜伽密)인 대원만법(大圓滿法)을 전수받았다. 38세에는 마르빠를 만나 6년간 고행한 끝에 그의 제자가 되어 차크라(Cakra)라는 기공(氣功)과 운행에 중심을 둔 수신법을 전수받았다. 그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동굴에서 풀로 연명하며 9년간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특히 교의보다 실천을 중시하였으며 신통력을 겸비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던 중 83세 때 그를 질투하던 승려가 사주한 독이 든 우유를 마시고 열반하였다. 밀라레빠의 입적일인 티베트 불력 1월 14일은 성자 추앙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종교적인 체험을 노래한 밀라레빠의 아름다운 시는 <십만송>이란 이름으로 전하며, 이는 그의 전기를 담은 <밀라레빠전>과 더불어 티베트 고전문학의 백미로 꼽히며 티베트 대장경에도 실려 있다.
※ 카규파
11세기에 만들어 졌으며, 인도의 밀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11세기에 재가생활을 하면서 불경의 번역가로 이름을 떨친 위대한 스승 마르파(Mar-pa)를 추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사찰을 흰색으로 칠하고 흰색 옷을 입기 때문에 ‘백교’라고도 불린다.
카규는 ‘구전(口傳)’을 의미하며, 말 그대로 사자상승의 엄격한 믿음과 헌신이 카규파의 특징이다. 실제 카규파의 전통을 세우는데 기여한 마르빠는 인도와 네팔을 오가며 수많은 탄트라의 비의를 수학하였고, 나란다사 대학의 위대한 학장인 나로빠와 마이뜨리빠(Maitripa)에 의해 성취를 얻었다. 이 종파에서는 힘을 중시하는 요가인 하타 요가(Haṭha Yoga)를 철저히 수련할 것을 강조한다.
마르빠는 까담빠의 전통과 신(新)탄트라를 요약하여 가장 효과적이며 간결한 수행체계를 확립하였는데, 크게 마이뜨리빠로부터 전해진 마하무드라(Mahamudra)와 나로빠로부터 전해진 나로최둑(Naro chos drug, 나로6법)이 유명하다.
사실 이 여행을 생각하기 전에는 밀라레빠란 이름조차 알지 못하였는데, 알고보니 우리 나라에도 이미 밀라레빠의 전기가 책으로 소개되었고 그의 <십만송>도 출판되어 그의 삶과 시는 국내에 조용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추상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브랑쿠시는 밀라레빠의 영향을 받아 조각하였고, 미국의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스의 래퍼 애덤 요크는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1994년 밀라레빠 재단(Milarepa Fund)을 설립했으며, 프랑스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는 <밀라레빠>라는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밀라레빠는 서구의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는 티베트의 명상 철학자이자 예술가로 이미 주목받아 온 인물이다.
40여 m 높이로 우뚝 솟은 9층 불각은 장전불교 각파 종사를 모시고 있는 티베트 유일의 고층 전각으로, 티베트 고유의 보루식과 불각식이 융화된 독특한 양식으로도 충분히 눈길을 끌 만한 건축물이다.
아쉽게도 1744년에 지은 원래의 건물은 문화혁명기에 훼손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어째서 티베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고층 불각을 짓게 된 것일까...?
어느 스님의 글에 보니 라다크 사원의 크고 작은 무수한 탑들은 왕이 죄인들로 하여금 죄업을 참회하도록 탑 쌓기라는 벌을 내려서 그 결과 생긴 것이라 한다.
문득 밀라레빠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가 큰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 스승 마르빠를 찾아갔을 대 탑을 쌓게 만들고 공들여 쌓은 돌탑을 틀렸다며 수없이 다시 쌓게 하는 호된 벌을 내렸던 장면이 떠오른다. 혹시나 이 불각에는 탑쌓기를 반복하면서 죄업을 깨닫고 씻었던 그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밀라레빠 불각으로 들어서는 내문은 장엄하고도 화려하다.
보다 섬세한 건축 조각들 때문에 훨씬 화려한 모습이 다를 뿐 우리 나라 사찰의 단청과 비슷한 무늬가 입혀져 있다.
불각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서니 매캐한 연기가 가득하다.
마당 서쪽 공양대에는 순례자들이 바치는 생나무들이 활활 타오르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불각 안에는 밀라레빠와 그 제자들이 이룬 각파(닝마파, 샤카파, 카규파, 갈단파, 겔룩파 등)의 개종조사(开宗祖师)를 모시고 있고 또 희금강 등 불상 1272여 존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제1층은 장전불교의 주불인 미륵불, 석가모니, 문수, 관음, 대금강수(大金刚手), 약사, 타라(度母), 백산개(白傘蓋) 등...
제2층은 황모파를 창시한 총카파와 그 제자...
제3층은 닝마파의 사군(师君)인 파드마 삼바바(莲花生), 5대 티베트찬보(왕) 티쏭데우첸(赤松德赞) 등...
제5층 카규파 불전으로 밀라레빠와 스승 마르빠, 8대심전(心傳)제자상
각 층마다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시대와 파를 나타내는 불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미륵불? 달라이라마 사진을 함께 모셨다.
송첸캄포와 브리크티, 문성공주
송첸캄포는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제왕으로 네팔의 왕녀 브리크티와 당태종의 양녀 문성공주를 맞아들여 티베트불교를 일으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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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카파상
주머니에 담아 보관하고 있는 불교 경전
금강저를 들고 있는 불상? 왼쪽 위 남녀교합상은 승락금강(勝樂金剛)인 듯하다.
죄업을 씻고 스승 마르빠로부터 교리와 관정을 받고 참다운 명상에 든 밀라레빠
암굴에서 고행 정진하며 식량이 떨어져 쐐기풀 죽을 쑤어 먹으며 온 몸이 녹색으로 변한 밀라레빠
밀라레빠 불상
승락금강(勝樂金剛)?
희금강과 승락금강은 5대 금강(대위덕금강, 승락금강, 일집금강, 희금강, 시륜금강)에 속하는 것으로 티베트불교 밀종 무상유가부의 모부(母部) 본존이다. 남색 불신에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관조하는 3개의 눈을 가진 4면의 얼굴, 5인의 두골관을 쓰고 있고 12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남녀교합의 성력은 지혜와 자비의 합일을 상징한다고 한다.
고행을 통해 해탈을 성취한 밀라레빠
수없이 많은 불상들을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몇 날 며칠이 걸려야 할 듯한데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게다가 밀교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보고 있는 불상의 정체도 모르겠고 의미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남녀교합을 표현한 불상이 다 희금강인 줄 알았는데, 티베트불교의 이미지들을 찾아보니 5금강이 다 남녀교합상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할 지경이다.
9층을 다 돌아보고 다시 내려와 사원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밀라레빠 불각 앞에 서 있는 여행 동료들
밀라레빠불각 옆마당에서 서쪽 뒤편으로 보이는 사원 전각들
황금색 지붕의 전각이 장경각, 그 안쪽으로 보이는 지붕이 대경당,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총카파불각이 있다. 언덕 위에 보이는 전각은 마두명왕전(馬頭明王殿)이다.
그리고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구릉의 왼쪽, 작은 사원 건물이 잇는 곳이 바로 천장(天葬)터
천장터는 허쭤 시내를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후이족(회족)의 무덤이다.
육신을 독수리에게 보시하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티베트인의 천장지와 초원의 구릉에 상처처럼 흔적을 남기는 후이족의 무덤의 대조가 참으로 많은 상념에 젖어들게 만든다.
밀라레빠 전각 주변은 승려들의 숙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장경각(藏經閣)
호법전과 대경당. 언덕 위의 전각은 마두명왕전(馬頭明王殿)으로 마두명왕(또는 마두관음)을 모신 전각이다.
호법전과 대경당(大經堂), 마두명왕전
마두명왕은 범어로 하야그리바(Hayagriva)라 하는데, 6관음의 하나로 '마두관음'이라고도 한다. 힌두교의 비슈누의 화신이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아미타불(無量壽佛)의 분노신(忿怒身)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우리 불교와는 달리 티베트불교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스님들의 숙소. 안쪽으로 대경당과 총카파불각이 보인다.
맨 뒤편에 자리잡은 스님들의 숙소. 아마도 이것이 숙소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언덕을 오르는 길
우리의 등대풀과 아주 유사한 풀
언덕에서 내려다본 밀라레빠불각. 건너편에 보이는 탱화를 거는 쇄불대
호법전과 대경당, 그리고 허쭤 시가 풍경
언덕 위의 또 하나의 호법전
구름송이풀과 닮은 송이풀 종류
허쭤 시내 전경
총카파불각과 허쭤 북서부 변두리 풍경
대경당
건너편에는 티베트 불교의 최대 기념일인 쇄불절(晒佛節)에 탱화인 괘불을 걸어 볕을 쬐는 쇄불대가 보인다. 티베트사원에는 이런 쇄불대가 꼭 보인다.
언덕에는 동티베트 고유의 아름다운 풀꽃들이 피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꽃들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흐드러지게 핀 송이풀 종류의 풀꽃
총카파불각
승려들 숙소가 있는 골목을 지나 서쪽 마을길로 접어든다.
허쭤 돼지.
위키 백과에서는 허쭤시에 대해 '허쭤 돼지'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걸로 보아 허쭤는 돼지로 유명한 모양이다.
코라를 도는 티베트 여인들
이방인에게 사납게 덤비며 유난을 떠는, 불심 부족한 허쭤의 개. 우리 나라 사찰 주변의 개는 부처님처럼 자비로운데...
천장터 앞으로 내려와 멀리서 천장터를 구경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한다.
천장터는 랑무스에 갔다가 모레 돌아올 때 돌아보기로 한다.
'國色天品'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매콤한 맛이 강한 사천요리라 대체로 무난하게 입에 맞는 편인데, 가지 요리는 정말 맛있다. 다시 이곳을 찾을 일이 있다면 꼭 먹고 싶은 메뉴!
그리고 식사가 끝났다 생각하고 대부분 자리를 뜬 뒤에야 나온 탕 하나.
그냥 출발하려다 한 숟갈만 맛을 본다는 것이 거의 반 이상을 다 먹어치울 정도로 시원하고 얼큰한 게 해장국으로는 최고지 싶다. 꼭 김치콩나물국처럼 개운한 맛! 입맛 가리는 두 여대생도 일어선 상태에서 엉겹결에 맛을 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그릇에 덜어서 먹을 정도...
이렇게 밀라레빠불각을 둘러본 것으로서 허쭤에서의 오늘 일정은 모두 끝나고 랑무스를 향해 출발한다.
햇살이 무척 뜨거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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