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동티베트(2) 라부렁스 가는 길, 화얼(花儿)의 고향 린샤

모산재 2014. 9. 18. 13:00

 

●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오전, 라부렁스 가는 길

 

 

 

 

6시에 일어나 7시에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 채소볶음 요리 몇 가지에 쌀죽과 달걀프라이를 곁들인 간소한 식단.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서 창밖을 보니 금륜광장은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엊저녁처럼 여러 그룹들이 저마다의 단체 운동을 하는 모습이 참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8시반, 오늘의 목적지인 샤허(夏河)의 라부렁스(拉卜楞寺) 티베트 사원을 향해 출발한다.

 

오늘 우리가 탐방할 라부렁스(拉卜楞寺)는 '여름강'이라는 뜻을 가진 샤허(夏河)에 있는 티베트 사원이다.

 

8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해발 3천m의 고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주민의 80%가 티베탄인데, 한족이 더 많이 살고 있는 티베크자치구보다도 더 티베트다워서 리틀 티베트로 불린다고 한다. 

 

1722년에 창건된 라브렁스는 '황모파(黃帽派)'라고도 하는 겔룩파(格魯派)의 6대 사원의 하나라고 한다. 

 

 

 

란저우 시내를 지나는데, 차창 밖으로 태청궁(太淸宮)이라는 도교사원이 스쳐 지나간다.

 

 

 

 

 

태청궁이라니 도교의 발상지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규모도 큰 산동성 노산의 태청궁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그 이름에서 따온 듯하다.

 

기단부 역할을 하는 1층은 현대적 양식인데, 그 위에 3층 전각을 세우고 또 그 위에 크고 작은 전각들을 올려 놓은 독특한 양식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정원조차 없이 살풍경한 현대식 고층빌딩에 포위되어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고속도로(G75 蘭海高速: 란저우~하이난 섬 하이커우)로 들어서자 경모씨가 라브렁스 사원과 티베트 불교에 대해 안내한다.

 

 

 

 

 

들은 이야길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티베트 불교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적어 본다.

 

 

대승불교로 출발한 티베트 불교는 중생을 위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보리심과 과 공성(空性)을 이해하는 지혜를 중시한다. 티베트 불교는 라마교라고 하는데, 이는 불(佛) · 법(法) · 승(僧)의 3보(三寶)에 스승(師)을 뜻하는 라마(Lama)를 더하여 4보(四寶)라 하고 이에 귀의한다.

 

티베트에는 토속종교인 본교(Bön)가 있어 항마, 예언, 점복 등의 주술신앙이 성행하였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인 손첸 캄포왕(569~650)이 인도 불교를 수입하였다.그 후 치스롱 데트산왕(755~781)이 불교를 국교로 하고 인도에서 많은 승려들을 초빙했는데, 파드마삼바바(蓮華坐)와 샨티락시타(寂護)의 영향으로 성력숭배(性力崇拜) 경향이 강한 탄트라 불교=밀교가 고유 신앙인 본교의 지반 위에서 형성되었다. 밀교는 두르가 여신을 숭배하며 여성적 창조력으로서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의미하는 샤크티를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만(Brahman)과 동일시하여 숭배하는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이다.(가장 소중한 스승’이라는 뜻의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파드마삼바바는 8세기경 부탄과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인물로 ‘두 번째 부처’로 숭배되는 고승이다.)

 

하지만 초기 티베트 불교는 랑다르마 왕(836∼842)의 억불정책으로 탄압을 받게 되면서 토속종교인 본(Bon)교가 판을 친다. 11세기에 들어 인도에서 초빙된 아티샤가 티베트 밀교를 크게 개혁하면서 밀교의 성적 요소를 배제한 카담파가 성립되었고, 이들로부터 분리된 사카파의 파스파(1239~1280)가 티베트 불교의 종교적 수장과 정치 권력을 장악하여 법왕국가를 건설하고 세력을 신장하였다. 이 때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전파된다.

 

15세기에 총카파(宗喀巴: 1357~1419)와 두 제자인 겔짭(1364∼1432)과 케드룹(1385∼1483)에 의해서 티베트 불교가 개혁되는데, 현세의 이익을 비는 주술이 배척되고 아티샤의 카담파의 가르침에 따라 계율의 준수가 강조되었다. 반야중관(般若中觀)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보리심(發菩提心)과 지관(止觀)이 강조되었고 밀교의 가르침은 평정심의 회복을 위한 특별한 테크닉으로 간주되었다. 종래 티베트 불교의 닝마파(紅帽派)와 구별하여 겔룩파(黃帽派)라고 한다.계율을 중시한 겔룩파는 대처(帶妻)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윤회(輪廻)에 의한 전생설(轉生說)로 후계자를 얻으려 하였다.

 

뒤에 겔룩파는 라사의 포탈라사와 시가세의 타시룬포사로 분열하여 총카파의 두 명의 제자가 각각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라는 칭호를 가지고 법맥을 유지하였다. 총카파의 제자 중 겐둔드룹(1391∼1475)이 초대 달라이라마, 즉 법왕이 되어 현재 14대에 이르고 있다. 이 칭호는 3세인 드레풍사원 주지 소남 갸초(1543∼1588)가 몽골 알탄 칸의 초청을 받고 1578년 칭하이(靑海) 지방에 갔을 때 받은 것이다. 달라이는 '바다'를 뜻하는 이름 '갸초'에 해당하는 몽골어이고, '라마'는 '스승'을 뜻한다. 티베트인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관음의 정토(淨土)로 여기며 통치자인 달라이라마를 관음의 화신으로 생각한다.

 

티베트 불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그가 환생한 것으로 생각되는 소년을 찾아 후임자로 정한다. 이 역할은 판첸 라마가 맡지만 달라이 라마가 인정한 11대 판첸 라마는 행방불명 상태다. 중국 정부는 다른 판첸 라마(기알첸 노르부)를 정했고, 달라이 라마 14세가 숨지면 그를 통해 후계자를 정하려고 하고 있다.

 

 

 

10시 무렵 타이스 휴게소에 도착.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휴게소 뒤편은 강을 끼고 아름다운 오아시스 호수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타오허(洮河)라는 이 작은 강은 황하의 지류로, 북향하여 병령사 석굴이 있는 유가협 바로 하류에서 만나 란저우로 흐르게 된다. 

 

 

 

 

 

 

하미과와 복숭아를 나눠 먹고 다시 샤허를 향해 출발한다.

 

 

 

아까 타이스 휴게소(太石服务区)에 가까워질 무렵, 국평 씨가 중국의미인 초선(貂蟬)의 고향을 지나고 있다고 했는데, 나중 지도로 확인해 보니 초선의 고향이라는 감숙성 린타오현과 캉러현은 타이스 휴게소를 훌쩍 지나 남쪽으로 30km 지점에 있다.

 

 

 

초선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 그녀 앞에선 달도 부끄러워하며 구름 속으로 숨었다고 해서 폐월(閉月)이라고 불렸던 미인이다. 본명은 임홍창(任虹昌)이라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결국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한다. 여포가 동탁을 죽인 뒤 초선을 첩으로 삼았지만 조조가 여포를 사로잡아 죽이고 초선을 허도(許都)로 보냈다고 한다. 조조가 관우에게 주었다는 설도 있다.

 

정사 <후한서> '여포전'에 의하면 초선은 동탁의 시녀로 당상관의 관모인 초선관(貂蟬冠)을 관리하는 초선이라는 직책을 맡았고 이름이 알려진 바 없으며 왕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때 동탁의 시녀 대신 왕윤의 가기(歌妓)이자 양녀로 설정하고 초선이라는 관직 이름을 이 양녀의 이름으로 바꾸어 쓴 것이다.

 

 

초선(貂蟬)의 고향에 대해서는 대개 산서성 신저우(忻州) 남동쪽 3km에 자리 잡은 목지촌(木芝村)이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으며, 하지만 이 외에도 신저우에서 비교적 가까운 협서성 미즈현(米脂县)과 이곳 감숙성 딩시시(定西市) 린타오현(临洮县)과 캉뤄현(康乐县)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초선의 고향에 대한 논란은 혼란스럽다.

 

 

※ 란저우-린샤-샤허 여정, 초선의 고향

 

 

: 초선의 고향이라고 주장되는 곳   ●1 : 타이스휴게소   ●2 : 린샤   ● : 샤허(라부렁스) 

 

 

 

 

린샤를 향하여 달리는 길은 푸른 숲이 끝없이 펼쳐지는 오아시스 골짜기. 숲에 잠긴 마을도 이어지고 그 속에 높이 솟아 빛나는  청진사 사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어 이곳의 주인이 후이족(回族)임을 증거하는 듯하다.

 

 

란저우와는 달리 골짜기 주변의 산들도 제법 푸른 풀들이 많이 자라는 편이다. 마을 주변을 따라 경작지도 제법 넓게 형성되어 있어 경제는 농업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정오 무렵, 린샤(臨夏) 부근의 초대형 식당 '허저우화얼문화예술원(河州花儿文化艺术苑)'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무슨 식당이길래 '화얼문화예술원'이란 거창한 이름을 내걸었을까. '꽃문화예술원'인가? 중국인들의 뻥이란...

 

 

 

 

작년 연말에 개업을 했다는 식당, 앞마당에는 모란 등 몇 가지 꽃나무들을 심어 놓았고 내부는 삼면으로 식당 룸이 차지하고 중앙에는 넓은 정원을 두었다.

 

 

 

 

 

점심 식사가 오길 기다리다 다시 입구쪽을 둘러보는데 남녀 모델이 있는 사진이 있다.

 

누군가가 이 사진 속 남자 모델이 사장이란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야 번뜻 예사롭지 않은 식당 이름에서 '화얼(花儿)'이란 말이 '꽃'이 아니라 '청해성 지역의 민가(民歌)'라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맞아... 투루판 달판성의 왕뤄빈기념관의 주인공인 중국의 인민음악가 왕뤄빈이 바로 이곳 청해성과 감숙성 일대에서 깊이 빠져들며 수집하고 연구했다는 민가가 바로 '화얼(花儿)' 아니었던가!

 

※ 왕뤄빈에 대한 글 => http://blog.daum.net/kheenn/15856517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장이라는 이 모델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하청상(何清祥)! 아무래도 화얼 가수가 아닐까 싶어 검색을 해보니, 과연!  린샤의 저명한 둥샹족 화얼 가수(著名的民族花儿歌唱家东乡族何清祥) 아닌가? 그리고 여성은 '화얼공주'로 유명한 바오안족 화얼가수 마홍련('花兒公主'的著名花儿演唱家保安族馬紅蓮)!

 

그러니까 간판 이름은 이 건물이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화얼 전수관이자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화얼(花儿)'은 감숙성과 청해성 그리고 닝샤후이족 자치구 등에서 후이족, 둥샹족 등 서로 다른 9개 소수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음악 전통으로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젊은이들의 사랑이나 농촌 생활의 고달픔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즉흥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대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대의 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내는 머리를 염색하고, 딸은 단발머리를 원하고, 엄마는 파마를 했네. 모두가 유행을 쫒으려 하고 그 돈은 내가 내겠지."와 같은 가사는 농촌의 급격한 변화를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

 

화얼은 사회 속에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고 민족 간의 문화적 교류를 도모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농촌 지역의 대중적인 오락거리이다. 화얼 가수는 학력이 낮은 농민이나 목동이지만 널리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하며 자신들의 기예를 견습생들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의 전수관을 설립하기도 한다.

 

 

린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린샤는 곧 화얼의 고향(临夏是花儿的故乡)"이라고 기록한 글도 보인다. 그러니 이 건물은 화얼 전수나 공연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경모 씨나 국평씨도 아무 말이 없었던 걸 보니 이런 내용은 모르는 모양이다.

 

ㅎㅎ~, 어쨌거나 점심을 먹으면서도 이런 내용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먹는 것에만 열중했을 뿐...

 

 

 

 

 

 

린샤 후이족(回族) 자치주의 주정부 소재지이자 둥샹족(东乡族)의 거주 중심지로만 알려져 있는 린샤(临夏)가 '화얼'의 고향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린샤는 황하의 지류 다샤허(大夏河) 골짜기에 위치한다. 그 상류에 오늘 우리가 찾아갈 샤허 라부렁스 사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하류 30km 지점에는 병령사석굴사원이 있는유가협(劉家峽)이 자리잡고 있다.

 

린샤시 인구 전체 45%를 차지하는 후이족과 둥샹족 등 무슬림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중국의 메카"로도 불린다. 둥샹족은 몽고족의 후예로 13세기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14세기 후반 둥샹(东乡) 지구에 정착하여 융합된 소수 민족으로 전체 인구가 50만을 조금 넘을 뿐이다.

 

양털·모피 등을 집산하고, 특히 부근에 거주하는 티베트족을 상대로 하는 상업이 오랜 전통을 지니고 이어지고 있다.

 

 

 

린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일까...

 

 

 

 

 

보다 넓어진 평원의 오아시스. 강 언덕은 우거진 숲을 이루고 마을 속에는 둥근 돔과 높이 솟은 미나레트의 청진사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집집마다 출입문(대문) 위에 저마다 아름다운 산수화가 그려져 있는 마을을 지난다. 담장에는 물결무늬의 독특한 장식이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차가 워낙 빨리 달리고 길가에 있는 집이라 아쉽게도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못했다.)

 

 

 

 

 

 

주변에 보이는 주택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은 새 집이다. 아마도 중국 정부가 주택 개량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중국의 저력이 느껴진다.

 

 

 

 

 

 

터널을 지나면서 주변 산들이 험준해지고 골짜기는 점차로 좁아진다.

 

 

이슬람 사원인 청진사도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초르텐과 원색의 다르촉과 룽다들이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후이족의 땅에서 장족(테베탄)들의 땅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금껏 보이지 않던 유목민들의 여름천막들이 시야에 들어선다. 농경민들의 땅에서  유목민들의 땅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해발 2920m의 샤허를 향해 점차로 고도를 높이며 완만한 고갯길을 구불구불 오른다.

 

길고 긴 계곡 주변의 관목 덤불에는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일행들이 모두 나에게 무슨 꽃이야고 묻는다. 멀리서 보기에는 장미과의 쉬땅나무 꽃이 아닐까 싶었는데,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흰물싸리((银露梅) 종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창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길가와 산언덕에는 붉은 풀꽃들이 무더기로 핀 것이 보이기도 하고 노란 덩굴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것이 보이는데, 무슨 꽃인지 궁금하기만 할 뿐 차를 세워달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나중에야 그게 구름송이풀 유사종, 그리고 종덩굴 유사종이라는 걸 확인한다.

 

 

 

 

 

 

고개를 넘자 곧장 남쪽으로 달리면 내일 우리가 찾아가게 될 랑무스와의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삼거리에 서 있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生態夏河 - 天藍 草綠 水淸

생태 마을 샤허 - 하늘은 쪽빛, 풀은 푸르고, 물은 맑다

 

 

 

 

 

삼거리에서 서쪽 길인 312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5분쯤 지나자 강 건너 편으로 커다란 티베트 사원 하나가 나타난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더얼롱스(德尔隆寺)라는 사원이다.

 

 

사구사(沙沟寺)라고도 하는데 산골짜기에 있어서 ‘보물을 간직한 골짜기(宝藏谷)‘라는 뜻의 절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골짜기와 들판을 지나 금방 샤허로 들어섰다.

 

 

 

 

 

 

 

 

3시 45분, 샤허에 도착하였다.

 

 

숙소는 라부렁민항대주점(拉卜楞民航大酒店).

 

 

 

 

 

숙소에 짐을 내려 놓고 잠시 쉰 다음 4시경 라부렁스 사원 순례에 나서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