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바이칼 여행

복드 칸 궁전의 국보급 문화재들, 자나바자르 녹색타라 불상 등

모산재 2014. 6. 8. 11:30

 

다음은 몽골의 마지막 칸 복드 칸 8세의 겨울궁전 박물관에 수장된 몽골의 국보급 보물들이다.

 

 

 

 

 

● 녹색 타라(Green Tara)  /  자나바자르, 17세기

 

 

 

 

 

 

자나바자르(1635~ 723)는 몽골 라마교의 초대 법왕(젭춘담바)으로 17~18세기에 살았다. 몽골의 소용보 문자를 창제하고 조각 그림 시 의료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몽골의 미켈란젤로로 불린다. 특히 조각에 빼어나 '백색 타라' '녹색 타라' 등 불교철학과 고대 신화를 바탕으로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영혼의 거룩함을 표현한 걸작을 남겼다. 

 

녹색타라는 몽골에서 숭배 받는 21타라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타라는 관세음보살의 여성 배우자를 일컫는데, 백색타라는 아름다운 처녀의 성숙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고, 녹색타라는 생동감 넘치는 둥근 얼굴에다 연꽃을 부드럽게 쥐고 있는 우아한 모습을 형상화하여 서정시의 소재가 되었다. 백색타라는 현재 울란바트르 '자나바자르 파인 아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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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라 여신 이야기

 

수억 겁 전 아다 부처님〔鼓音如來〕 시절에 이셰다와〔慧月〕라는 공주는 수없는 생을 통해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한량없는 공양을 올렸다.

공주는 10세부터 고행과 명상을 끊이지 않고 계속하여 79세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다. 혜월 공주가 깨달음을 얻자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이 찾아와 예를 올리고 “공주시여, 깨끗한 복을 짓고 한량없는 공덕을 쌓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으니 속히 남자의 몸을 받아 부디 중생을 위해 법을 베푸소서.”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이를 거절하며 “남자 모습의 부처와 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여자 모습의 불보살은 거의 볼 수 없으니 나는 이 삼사라가 텅비도록 여자의 모습으로 모든 중생을 도우리.”하고 서원하였다. 다시 여러 번을 더 안거에 들고 삼매를 이루어 공주는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어머니라는 ‘타라’로 불리게 되었다.

타라는 실제로 어머니가 되기로 하고 부처님이 주신 환약을 먹고 축복을 받아 99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유라고 하는 훌륭한 용모의 보살을 아들로 낳았다. 타라는 아들을 몹시 사랑하여 늘 가슴에 안아 젖을 먹이고 연꽃 위에 눕혀서 열매의 즙을 먹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직도 젖을 먹는 어린 아들이 그만 사라져 버렸다.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감추어 버린 것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타라는 수행으로 쌓은 모든 마음의 힘이 사라지며 가슴이 미어져서 젖이 마르고 달빛 같던 얼굴이 시커멓게 어두워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으며 하늘과 땅이 흔들리도록 통곡하니 눈물로 호수가 생기고 마른 나무에서 새잎이 나왔다.

부처님이 친히 내려오셔서 타라의 두 손을 잡아 일으키며 법을 설하시기를, “육도의 어머니 타라시여,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지기 마련인데 어찌 이리도 고통스러워하시는가?” 그러나 부처님의 설법조차도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달랠 수 없었다. 아들을 찾아서 천상에서 지옥까지 육도를 샅샅이 뒤지고 헤매이면서 타라는 육도 중생들의 고통을 낱낱이 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황금탑 안에 감추어 놓은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상봉한 모자가 끌어안고 서럽게 울며 함께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 그 눈물은 약이 되어 그 눈물을 마신 모든 중생들이 장애와 병을 벗어났다.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타라는 “내가 이 아들을 찾아 육도를 헤매이면서 고통스러운 중생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아들을 찾던 그 애절한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중생들을 건지리이다.”하고 서원하니 부처와 보살들이 몹시 기뻐하며 타라 모자를 좌대 위에 앉히고 세 바퀴를 돌고 절을 한 다음 “타라 어머니시여, 우리가 아들을 숨긴 것은 중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어머니가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였다. 수없이 많은 중생들을 구원한 타라는 부처님이 바뀐 지금도 포탈라라는 궁전에 거하며 외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중생들을 돕고 있다. 티벳 라사의 달라이라마가 거하는 궁전의 이름을 포탈라라고 한 것은 어머니 타라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달라이라마들의 의지인 것이다.

 

 

 

 

 

● 자나바자르 금동 불상(Portrait of Zanabazar)  /  자나바자르, 18세기

 

 

자나바자르가 자신의 모습을 새긴 불상이다.

 

 

 

 

 

 

 

 

● Jamsran  /  발간(Balgan), 20세기 초

 

 

 

 

 

레이아웃이나 색깔 구성, 정교한 솜씨 등 예술성이 뛰어난 조작이다. 종교적인 기준에 따라 널리 알려진 조각가인 발간에 의해 창조되었다.

 

 

 

 

 

● 복드 칸의 왕관  /  이흐 후레(Ikh khuree) 장인, 1911

 

 

1911년 12월 28일, 몽골의 독립 선언 때 복드 칸이 쓴 모자이다.

 

 

 

 

 

 

 

 

● 복드 칸의 왕비 돈독두람(Dondogdulam)의 머리장식  /  복드 칸 궁중 예술가, 20세기 초

 

 

2011년 몽골의 독립 선언 의식을 거행할 때 돈독두람 왕비가 착용한 머리장식이다.

 

 

 

 

 

 

 

 

● 돈독두람 왕비의 모자(skull-cap with pearl)  /  1912. 이흐 후레의 장인

 

 

돈독두람 왕비가 의식을 치를 때 쓴 것이다.

 

 

 

 

 

브로케이드(색실이나 금실, 은실 등을 이용하여 다채로운 무늬를 놓은 견직물), 황갈색 실크를 재료로 만들었다.

 

 

 

 

 

● 복드 칸의 롱자켓  /  복드 칸 궁중 예술가, 20세기 초

 

 

 

 

 

 

 

자켓 안쪽에는 푸른 비단이 있다. 앞과 뒤의 원형에는 둥근 금실로 수를 놓았다. 앞에는 원형이 있고 뒤에는 소욤보 기호가 있다. 두 어깨에는 산스크리트어로 '해'와 '달' 이란 말이 적혀 있다. 복드 칸은 이 자켓을 신정 몽골의 공식 의식 때 몽골 전통 의상인 델 (Deel) 위에 입었다.

 

 

 

 

 

● 돈독두람 왕비의 옷 Dondogdulam’s del   /  복드 칸 궁중 예술가, 20세기 초

 

 

 

 

 

 

 

실크로 된 이 도복은 돈독두람 왕비의 예복으로 특별 주문에 의해 만든 것이다.

 

 

 

 

 

● 니쓰렐 후레(Niislel Khuree  /  Jugde, 1912

 

 

몽골 수도인 니쓰렐 후레를 하늘에서 본 것을 그린 것이다.

 

 

 

 

 

↑ 위 사진 출처 : Virtual Collection of Masterpieces http://masterpieces.asemus.museum/index.nhn)

 

 

 

 

 

※ 복드 칸의 겨울 궁전 => http://blog.daum.net/kheenn/15856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