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청계산 봄꽃 산행 / 큰개별꽃, 현호색, 꿩의바람꽃, 남산제비꽃, 고깔제비꽃, 털제비꽃

모산재 2012. 4. 22. 23:34

 

4.19를 하루 앞둔 날,

서울대공원에서 건강달리기대회를 마친 뒤 여섯 동료분들과 함께 미술관 뒤 야영장을 지나 청계산을 넘다.

 

시계가 환하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맑은 날씨, 봄기운이 가득한 날이다.

 

 

 

산 입구에는 진달래꽃이 한창이다.

 

 

 

4.19를 떠올리게 하는 진달래. 이영도의 시조에 곡을 붙인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아직 새잎 나지 않은 숲에는 큰개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큰개별꽃과 어울려 현호색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골짜기를 오르니 드문드문 꿩의바람꽃도 모습을 드러낸다.

 

 

 

 

실처럼 가느다란 잎을 보이는 달래도 흔하게 보였지만

좁살보다 작은 꽃망울을 겨우 달았을 뿐이라 렌즈를 대지 않는다.

 

 

남산제비꽃 

 

 

 

나무 그루터기와 바위에 기대고 핀 현호색을 담아 보기도 한다.

 

둥근털제비꽃과 어울린 현호색

 

 

 

바위에 의지한 현호색. 이 녀석은 꽃이 붉다. 

 

 

 

능선을 향해 오르는 지점에서 고깔제비꽃도 모습을 보인다.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정상을 향해 몹시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산을 오르는 일행들의 모습

 

 

 

능선의 허리께를 지나면서부터는 진달래는 꽃망울만 보이다가

정상 가까운 곳에서는 아예 붉은 꽃봉오리조차도 내놓지 않은 모습이다.

 

 

 

산등성이에서는 아직도 둥근털제비꽃이 꽃을 보인다.

 

 

 

철조망을 통과하고 능선에 올라서니 과천과 성남의 곙계, 매봉과 이수봉의 갈림길이다.

 

 

 

이 고개를 혈읍재라 하는데,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던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일두 선생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는데,

청계산 석기봉 아래 하늘샘(금정수)에 초막을 짓고 은거하여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다고 전한다.

이상이 좌절된 일두 선생이 피눈물 흘리며 넘었다고 하여 혈읍(血泣)재라 하였고

두 번 목숨을 건졌다 해서 이수봉(貳壽峰·545m)이라 하였는데 후학 정구(鄭逑)가 명명한 이름이다.

 

 

※ 4대 사화의 처음인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 4년에 훈구파 유자광이 성종실록에 김종직이 쓴 사초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라는 글을 트집 잡아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것이라는 것이다. 선왕 성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사림파를 좋지 않게 보던 연산군은 격분하여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그의 문하 정여창, 김굉필(金宏弼)을 유배 후 사사하였다. 

 

 

우리는 매봉 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능선 부근에 털대사초로 보이는 풀이 꽃을 피우고 있다.

 

 

 

매봉으로 가는 길, 등산로 주변에는 고깔제비꽃이 흔하다.

 

 

 

매봉 부근, 원예종 꽃을 심어 놓은 곳에서 애호랑나비를 만난다.

 

 

 

돌문바위를 돌아 매봉을 지나 원터골로 내려선다.

 

큰개별꽃

 

 

 

봄볕을 듬뿍 받은 곤충들도 많이 만난다.

 

말벌

 

 

 

뿔나비

 

 

 

털제비꽃도 피었다.

 

 

 

남산제비꽃

 

 

 

산괴불주머니

 

 

 

나비나물도 나비처럼 날렵한 싱그러운 잎을 달았다.

 

 

 

가파른 산을 넘었으니 원터골에서 막걸리 한 잔 아니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