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봄 제주도의 오름에 올라 햇볕 잘 드는 풀밭을 두리번거리다보면 반드시 까치무릇을 만나게 된다. 그만큼 제주도 오름에는 까치무릇이 흔하다.
가느다란 줄기에 버거워 보이는 큰 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 위태하면서도 아름답다. 햇볕이 잘 드는 풀밭에서 자라는 까치무릇은 짧은 꽃대에 올린 꽃이 안정감을 주는데, 산언덕 숲속에서 피는 꽃들은 햇볕을 받아들이느라 꽃대가 길어 꽃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누워버린다. 꽃자루 위에 여섯 장의 길쭉한 꽃잎이 가지런히 배열되고, 꽃잎에는 가느다란 보라색 줄이 나있고, 그 속의 샛노란 수술이 두드러지게 보여 참 곱다.
까치무릇은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꽃잎을 연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그리고 흐린 날에는 활짝 핀 까치무릇을 만나기 어렵다. 그늘에서 자란 무릇은 잎새만 무성한 채 꽃을 잘 피우지 않는다. 까치무릇은 햇볕을 좋아한다. 숲 가장자리 들판이 이어지는 따사로운 햇살이 담뿍 내리는 곳이 까치무릇이 살고 싶어 하는 땅이다. 그래서 '봄처녀'라는 꽃말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두산봉(말미오름)의 까치무릇
어째서 까치무릇일까.
줄 모양의 두 잎이나 땅속 비늘줄기가 무릇과 닮았으니 '무릇'이 붙었을 터인데, 가느다란 꽃 줄기 끝에 큼지막한 한 송이 꽃이 달린 모양은 긴 이삭꽃차례를 보이는 무릇과는 아주 딴판이다.
이름에 '까치'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자주색 줄무늬가 있는 흰 꽃잎의 모양이 까치를 연상시킨 탓이 아닐까 싶다.
도두봉(도들오름)의 까치무릇
까치무릇은 현재 산자고(山慈姑, 또는 山茨菰)와 동의어로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하지만 산림청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는 산자고가 표준명이고 까치무릇은 이명으로 처리되고 있다. 예로부터 까치무릇이라 이름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슬그머니 산자고란 한자어가 차지하게 되었다.
정감 있는 우리말을 버리고 어째서 어려운 한자어를 쓰게 된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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