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시대 백자, 국보와 보물 9점

모산재 2012. 3. 11. 10:10

 

● 백자 상감 연당초문 대접 / 국보 175호, 15~16세기

 

고려 백자의 전통을 이은 조선 전기의 백자 대접으로, 이러한 백자상감류는 조선시대 15세기 중반경에 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체로 경상도와 일부 지방 가마에서 고려의 수법을 계승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높이 7.6㎝, 입지름 17.5㎝, 밑지름 6.2㎝이다.

아가리 부분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고 안쪽 윗부분에는 단순화된 덩굴무늬가 둘러져 있다. 바깥면에는 그릇의 위와 아랫부분에 두 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연꽃 덩굴 무늬를 상감기법으로 표현하였다.

 

 

 

 

● 백자 병 / 보물 제 1054호, 15~16세기

 

격식 있는 병의 형태와 부드러운 색이 어울리는, 풍만하고 단정한 조선 전기의 백자 병이다.

 

 

 

 

높이 36.2㎝, 아가리 지름 7.4㎝, 밑지름 13.5㎝이다.

벌어진 아가리에서 긴 목을 지나 몸통까지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벌어져 풍만한 몸체를 이루었으며, 넓고 높은 굽다리를 갖춘 안정감을 주는 병이다. 묵직한 기벽에 푸른빛이 도는 백색 유약을 고르게 발랐으며, 광택이 은은하다. 이러한 백자는 경기도 광주에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백자 청화 매조문 항아리 / 국보 제170호, 15~16세기

 

뚜껑있는 백자 항아리이다. 조선 초기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무렵 백자 항아리의 형태와 문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그림 속에 농담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 전문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높이 16.8㎝, 입지름 6.1㎝, 밑지름 8.8㎝

 

뚜껑의 꼭지는 연꽃 봉오리 모양이며, 어깨는 벌어졌고 잘록한 허리의 선은 바닥에서 약간 도드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굽의 접지면 바깥둘레는 약간 경사지게 깎아내렸다. 뚜껑의 꼭지에 꽃잎 4장을 그리고 그 주위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린것이, 조선 전기 회화에서 보이는 수지법(樹枝法)과 비슷하다. 아가리 가장자리에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덩굴무늬를 그리고, 몸체의 한 면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있는 매화와 들국화를, 다른 한 면에는 V자형으로 뻗어나간 대나무를 그렸다.

 

 

 

● 백자 철화 매죽문 항아리 / 국보 제 166호, 16~17세기

 

철화백자 항아리로서는 초기의 것으로 당당하고 풍만하다. 중국 명대의 항아리와 비슷하고 16세기 분청사기에서 보이는 양식의 백자 항아리다. 특히 어깨 부분과 아랫부분에 표현된 무늬는 17세기 전반기의 무늬로 계속 이어진다. 궁중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빼어난 매화와 대나무 그림, 밝은 유약색으로 보아 16세기 후반경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관음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높이 41.3㎝, 입지름 19㎝, 밑지름 21.5㎝의 크기이다.

 

아가리 가장자리가 밖으로 말렸고, 목 부위의 경사면부터 풍만하게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둥근 몸체의 항아리이다.

농담(濃淡)이 들어간 검은 안료로 목과 어깨 부분에 구름무늬와 꽃잎무늬를 돌렸고 아랫부분에는 연속된 파도무늬를 장식했다. 몸체의 한 면에는 대나무를, 다른 한 면에는 매화등걸을 각각 그려 넣었다. 유약은 푸르름이 감도는 유백색으로,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은은한 광택이 난다. 

 

 

 

 

● 백자 철화 끈무늬 병/ 보물 1060호, 15~16세기

 

유홍준 교수가 '백자 넥타이 술병'이라 불렀던 백자 병이다. 술병을 사용할 때 병목에 끈을 동여매 걸어놓곤 했던 것을 무늬로 표현한 것이다.철화백자는 15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졌으나, 이 병은 16세기 후반경의 것으로 귀할 뿐 아니라, 끈을 목에 매고 밑으로 늘어뜨린 특이한 문양으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 작품이다.

 

 

 

 

높이 31.4㎝, 아가리 지름 7㎝, 밑지름 10.6㎝인 술병이다.

아가리가 나팔처럼 밖으로 벌어지고 말려 있으며, 목은 잘록하고 가늘다. 몸통은 서서히 넓어져 아랫부분이 볼록한 형태를 하고 있다. 문양은 푸른색으로 먼저 목에 끈을 감고, 그 가닥이 밑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둥글게 말린 모습을 그렸다. 그 위에 검은색 안료을 유연한 필치로 농담을 섞어가면서 운치있게 표현하였다. 굽은 높고 넓으며 굽의 안쪽 바닥에는 한글이 새겨 있다.
경기도 광주 도마리의 15세기 백자 가마터에서는 술잔 받침에 이태백의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네'(待酒不至)라는 오언시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분위기오 잘 어울리는 술병이다.

 

玉壺繫靑絲     술병에 푸른 끈 동여매고

沽酒來何遲 술사러 가서 왜이리 늦는가.

山花向我笑 산꽃이 나를 향해 웃으니

正好銜盃時 바로 술 마시기 좋은 때라오.

晩酌東山下 동산 아래에서 늦도록 잔 기울이니

流鶯復在玆 나는 꾀꼬리 다시 여기에 있구려.

春風與醉客 부는 봄바람과 취한 손님

今日乃相宜 오늘 참으로 서로 어울리네.

 

 

 

 

● 백자 투각 모란당초문 항아리/ 보물 제240호, 18~19세기

 

몸체를 뚫음새김한 백자항아리다. 유약은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로,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되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가마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필통들에 다양하게 뚫을새김한 모란무늬나 물결무늬들로 미루어 1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높이 26.7㎝, 아가리 지름 14.25㎝

반듯한 아가리에 어깨에서부터 급히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모습으로 내·외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안쪽 항아리는 문양이 없으며, 바깥 항아리는 표면을 뚫어서 조각하는 기법으로, 몸체 전면에 활짝 핀 모란과 줄기와 잎을 표현하였다.

어깨부분에는 청화로 덩굴무늬를, 허리 밑부분에는 꽃무늬 띠를 도들새김하였다. 원래 꽃병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바깥 항아리는 일반적인 조선 항아리가 지니는 전형적인 곡선이 있다. 항아리 전체에 새긴 모란꽃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전체 형태는 대범하면서도 은근한 세련미를 풍긴다.

 

 

 

 

● 백자 달 항아리 / 보물 1437호, 18세기

 

1945년 접수품으로 200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달 항아리의 넉넉하면서 부드러운 곡선과 당당한 양감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달 항아리는 17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으며 18세기가 되면 입 부분이 각이 둥글게 벌어지고 몸체가 다소 길어지는 변화를 보인다.

 

 

 

 

높이에 비해 몸통이 약간 벌어져 보이는 둥근 구형이지만, 입지름에 비해 굽 지름이 80% 정도 작지만 전체적인 비례는 단정하고 안정적이다. 입과 굽의 높이도 서로 적당하여 잘 어울리며, 몸통의 접합부가 비교적 완전하여 부분적인 쳐짐이나 비틀림도 거의 없다.

유태(釉胎)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유약의 두께는 얇지만 태토에 완전하게 융착(融着)되어 있고 맑은 황갈색을 아주 엷게 띠는 투명유(透明釉)이다. 입술부분(口緣部) 일부를 수리하였지만,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 백자 철화 포도 원숭이 무늬 항아리 / 국보 93호, 조선 18~19세기

 

1916년 입수품. 국립박물관 전시대에서는 국보 98호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높이 30.8㎝, 입지름 15㎝, 밑지름 16.4㎝이다.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로 적당한 높이의 아가리에 어깨부분이 불룩하고 아래로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이다. 직각으로 올라 선 아가리 둘레에도 무늬를 두르고 몸통에는 능숙한 솜씨로 포도 덩굴을 그려 넣었다.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포도 덩굴의 잎과 줄기의 생생한 표현으로 보아 도공(陶工)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전문 화가들이 그린 회화성이 짙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 국보 제107호로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라는 이름을 가진 백자가 이화여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18세기 작품으로 분위기는 많이 달라 청초한 맛이 있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