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국보 제81호>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입상, <국보 제82호>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모산재 2012. 3. 5. 23:00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있었던 감산사(甘山寺)는 719년(성덕왕 18) 2월 중아찬(重阿飡) 김지성(金志誠)이 감산에 있는 장전(莊田)을 희사하여 아버지 인장(仁章) 일길간(一吉干)과 어머니 관초리(觀肖里) 부인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그 일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후 어머니를 위해서 미륵보살상 1구를, 아버지를 위해서 아미타불상 1구를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1915년 2구의 불상이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제81호로,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은 국보 제8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절터는 전답으로 변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인 감산사지삼층석탑과 석등 대석 및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건물 기단지가 남아 있다.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 국보 제81호

 

 

 

▲ 출처 : 문화재

불신·광배·좌대를 한 돌로 만들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머리에 화려하게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볼이 통통하여 원만한 인상이다. 목에는 2줄의 화려한 목걸이가 새겨져 있고, 목에서 시작된 구슬 장식 하나가 다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풍만한 지체(肢體)는 사실적으로 능숙하게 표현되어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다.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오른쪽 겨드랑이를 지나 오른팔에 감긴 채 아래로 늘어져 있다. 허리 부근에서 굵은 띠장식으로 매어 있는 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발목까지 내려오고 있다. 광배(光背)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배(舟) 모양이며, 3줄의 도드라진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였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와 활짝 핀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기고 있다.

광배 뒷면에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불상을 조각하였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이 글을 통해서 만들어진 시기와 유래를 알 수 있다. 돌로 만들었음에도 풍만한 신체를 사실적으로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어 통일신라시대부터 새로이 유행하는 국제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 국보 제82호

 

 

▲ 출처 : 문화재청

 

석조아미타불입상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의 세부표현도 세련되어 신라적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른손은 올리고 왼손은 내려 설법인(說法印)을 결(結)하고 있다. 

 

신체는 비교적 두꺼운 옷 속에 싸여 있으며 당당하고 위엄이 넘친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온 몸에 걸쳐서 U자형의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목에는 한번 뒤집힌 옷깃을 표현했는데 이는 신라 불상의 특징으로, 불상의 전체적인 형태와 함께 불상을 박진감있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된다. 

 

광배(光背)는 배(舟) 모양이며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새겼는데, 몸광배 안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위의 석조미륵보살상과 양식이 비슷하다.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뿐 아니라, 광배 뒤의 기록에 의해 만든 시기와 만든 사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