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국보 제92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기타 물가풍경무늬 정병

모산재 2012. 3. 7. 19:34

 

정병(淨甁)은 원래 인도에서 승려들이 마실 물을 담던 휴대용 수행 도구였다. 그런데 5세기 초 관음보살이 중생에게서 받은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로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청관세음경(請觀世音經)>의 내용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부처나 보살에게 깨끗한 물을 담아 바치는 불교 의식구가 되었다. 맑은 물과 버들가지로 중생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관음보살의 자비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이후 정병과 버드나무가지를 든 '양류관음보살상'이라는 불교조각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정병이 전해진 것은 7세기 말 경이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정병들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존하는 인도의 정병은 첨대가 짧은 꼭지처럼 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정병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북송의 서긍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정병은 "물을 담는 주구(注口)와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의 물병"이었다고 한다. 

 

수행 생활을 하는 승려들은 병과 발, 석장, 향로, 녹수낭 등 18가지의 물품을 항상 지녀야 했는데, 녹수낭은 물을 거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 명주나 무명 천으로 이 천을 정병의 주구에 씌워 깨끗한 물을 얻었다고 한다.

 

정병은 고려시대에 주로 금속기와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대개 금속제 정병에는 문양이 없지만,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라는 독특한 문양을 새긴 작품들이 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창포와 버들이 있는 물가에 물새들이 노니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은 문양이다.

 

고려에서는 귀족과 관리들뿐 아니라 사찰과 도관, 민가에서도 물을 담을 때 정병을 사용했다고 한다.

 

 

 

 

 

■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 국보 제92호, 고려시대

 

 

고려시대 대표적인 금속 공예품의 하나로 높이 37.5㎝의 물가풍경무늬 정병(淨甁)이다. 안정감 있는 모양과 유려한 곡선미, 은을 방아 장식한 입사기법(入絲技法) 등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정병으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었다.

 

 

 

 

 

 

아담한 계란형의 몸체와 길게 솟은 목 부분, 그리고 비녀의 머리 부분처럼 굴곡진 귀때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모습의 정병이다. 정병의 전면에는 푸른 녹이 곱게 덮여 있으며 몸체에 홈을 낸 다음 0.5밀리미터 굵기로 입사된 은실은 오랜 세월 부식되어 검은 색조를 띠는데, 단정하면서도 깔끔한 이 정병의 정제미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에는 뚜껑이 덮혀 있는데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기법으로 덩굴 무늬를 새기고, 그 옆면에는 연꽃 무늬를 배치하였다. 목 부분에도 뚜껑이 있는데 은판(銀板)을 뚫을새김으로 장식하였다.

 

 

 

 

 

 

몸체 전면에는 둔덕 진 섬 위에 굴곡을 이루며 서 있는 버드나무를 좌, 우면 대칭되게 한 그루씩 배치하였다. 그 주위에는 무성한 갈대와 수초 등이 솟은 언덕이 있고, 여러 마리의 오리가 날아오르고 있다. 물 위에도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와 고기잡이 배, 낚시꾼의 모습이 보인다. 몸체 상부에는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과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모습까지 아기자기하게 묘사하였다.

 

'포류수금문'이라고 불리는 문양은 고려 시대의 도자기, 향로 등에 널리 쓰인 문양으로서, 포(창포나 부들), 버드나무, 갈대 등의 수생초(水生草)와 물오리, 기러기, 해오라기가 어우러진 강이나 호수의 흔한 물가 풍경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포류수금문은 중국 요(遼)대의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어 이 문양의 원류라고 보기도 하지만, 중국에서 문양으로 사용된 예는 거의 볼 수가 없고 오히려 고려에서 크게 유행을 이룬 점이 주목된다.

 

 

 

 

 

 

고려에서 포류수금문이 성행했던 시기는 11~12세기경으로 고려인들이 선종(禪宗)에 심취하였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선종의 영향으로 고요함과 정적인 세계를 추구하던 고려인들이 현세를 벗어나 내세에 그러한 곳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러한 문양을 새겼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또, 포류수금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이자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버드나무라는 점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관음신앙과의 관련성을 말하기도 한다. 버드나무가 늘어지고 연꽃과 갈대가 피며 물새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물가를 관음보살이 기거하는 곳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관음의 지물인 정병에는 반드시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 있고, 이러한 버드나무가 병을 치유하거나 악귀를 물리치는 효험이 있다고 생각하여 고려 불화의 관음보살에도 자주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출처 : VCM

 

 

출처 : 문화재청

 

 

 

 

 

■ 물가풍경무늬 정병 / 미지정문화재, 고려시대

 

 

 

 

 

 

 

이 정병은 버들이 아닌 꽃나무를 새긴 모습이다.

 

 

 

 

 

 

 

 

■ 물가풍경무늬 정병 / 미지정문화재, 고려시대

 

 

 

 

 

 

 

 

 

■ 청자 양각 갈대기러기문 정병(靑磁陽刻葦蘆水禽文淨甁) / 보물 제344호, 고려시대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국보 제92호) 양식을 청자 양각으로 재료를 바꾸어 시도한 작품이다. 따라서 청동 정병과 형태와 곡선에서 흡사하며, 장식무늬도 비슷하다.

 

 

 

 

 

 

 

 

※ 또 하나의 청자 정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