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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6)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 또는 입암고택

모산재 2012. 2. 7. 23:45

 

양진당은 하회마을의 서쪽,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을 따라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넓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남향이라 하회마을에서는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문득 담장 곁에 서 있는 저 아담한 가로등을 보고서야, 하회마을에서는 어지러운 전신주와 전선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옥마을의 품격이 바로 이러한 섬세한 배려 속에 자연스레 갖추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양진당(養眞堂), 또는 입암고택(立巖古宅) 보물 제 306호

 

양진당은 풍산에 살던 류종혜가 13세기 하회마을에 들어오면서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지어진 건물로 전해지며, 겸암 유운룡(1539∼1601)의 집으로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하였다.

 

풍산류씨의 오랜 종택으로 고려 말 건축 양식과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이 섞여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 집이며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

 

조선 중기에 지어진 집으로 하회마을에서 보기 드문 남향집이다. 보물 제306호로 지정되었다.

 

 

 

우뚝 솟은 솟을 대문과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로 고려 건축양식인 사랑채와 조선 건축양식인 안채가 공존하는 독특한 고택이다.

 

 

 

대문을 통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란 현판이 걸린 사랑채가 정면으로 보인다.

 

 

 

 

사랑채에는 류운영의 아버지 입암 유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내부에는 한석봉이 쓴 '양진당(養眞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양진당은 유운룡의 6대손 유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으로,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양진당은 고려양식과 이조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으로서 특별한 건축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쪽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안채의 바깥 모습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고, 口자 형의 안채와 그 북쪽의 사랑채를 一자 형으로 배치하였다.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이 있는데, 정면의 큰 사당은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 공신이나 대학자 등의 탁월한 자에게만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하며, 불천위로 인정되면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의 관행을 깨고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린다.) 사당이며, 작은 사당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다.

 

 

양진당은 口자 형식의 건물이 나란히 횡으로 두 개 붙어 있는 형상을 갖추고 있다. 바깥채와 안채가 횡으로 붙어 있는 것이다. 그 각각의 건물은 따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지고 있고, 또 서로 통하는 측문도 열려 있다.

안채의 한가운데에는 거의 정사각형 모양의 안마당이 있다. 안마당의 가운데는 네모꼴의 시멘트 장독대가 자리잡고 있다. 

 

▲ 출처 : 문화재청

 



위에서 바라본 양진당 전경


▲ 출처 : http://www.hahoe.or.kr/adboard/index.php?doc=pop_html/p_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