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안동 하회마을 (1) 산태극 수태극으로 부용대 돌아드는 화천 풍경

모산재 2012. 2. 6. 18:21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을 다시 찾는다.

 

하회장터에서 내리자 마을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을 제대로 즐기자면 산태극 수태극으로 흘러내리는 낙동강 상류 화천(花川)의 물굽이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걷는 산책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두번씩이나 물굽이를 이루는 S자 지형은 한쪽은 넓은 백사장, 건너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품게 마련이다. 그래서 강은 더할 수 없는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안동댐에서 흘러내린 물이 병산서원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다

하회마을에서 굽이 돌며 잠시 동쪽으로 흐르다 다시 방향을 틀어 서쪽으로 돌아흐른다.


 


산책길


 


동쪽으로 물굽이가 꺾이는 곳에 하회장터의 건물들이 아스라히 보인다.


 

 

 

서쪽, 강 건너편으로 바위벼랑 부용대가 보인다.

 

 

 

 


하회마을은 한자 이름 '하회(河回)'란 말 뜻 그대로 낙동강 강물이 돌아흐르는 동네라는 뜻의 '물돌이동'으로 불려 왔다.

 

태백산 지맥이 마을 주산인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며 그 사이로 강물이 S자형으로 굽이지며 흐르니 이를'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형세라 부르고, 마을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한다.

 

연꽃 형세의 풍수지리에 따라 마을 주산은 화산(花山)이라 불리게 되었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 상류는 화천(花川)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모래톱이 훤히 비치는 강물엔 청둥오리떼들이 모여 먹이를 찾고 있다.

 

 

 

 

  

 


마을 가까운 강가에 이르렀다.

 

절벽을 만난 강물은 깊어지고, 그 반대편에는 넓은 모래밭을 펼쳐 놓는다. 모래밭이 언덕으로 오르면 갈대밭과 억새밭이 된다.

 

마을 앞 깎아지른 부용대(芙蓉臺)의 절벽 발치에는 선비들이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닦던 집들, 옥연정사화천서당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의 건물들이 옥연정사,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건물이 화천서원의 일부. 

 

 

 


옥연정사는 서애 유성룡 선생이 임진왜란 회고록이라 할 수 있는 <징비록>을 저술한 곳이다.

 

 

 


화천서원겸암 류운룡 선생을 배향한 서원인데, 강당만 남아 있던 것을 근래에 복원하였다.

 

 

 


부용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지만 시루떡처럼 지층을 이룬 바위들이 결을 이루고 있다. 절벽의 1/3쯤 되는 아래쪽 초목이 자라고 있는 결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은 동쪽의 옥연정사와 서쪽의 겸암정사를 이어준다.

 

 

 


부용대의 서쪽 끝에 겸암정사가 보인다. 서애 류성룡의 맡형 겸암 류운룡 선생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던 곳이다.

 

나룻배를 타고 옥연정사 서쪽 언덕에 오르면, 부용대 벼랑의 지층의 결을 타고 난 좁은 오솔길이 겸암정사까지 이어진다. 서애와 겸암 형제를 이어주던 이 운치있는 길을 걸어보아야 비로소 하회마을을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강폭은 대략 300m이며 최대수심은 5m에 이른다. 옛날 백중날(음력 7월 보름)에는 이곳 부용대 밑에서 시회가 열리고 시회와 아울러 줄불놀이벌어졌다고 한다.

 

줄불놀이는 부용대 꼭대기에서 줄을 매어 불을 붙인 참나무 숯을 매달아 건너편 만송정 솔숲으로 내려보내는데 강물에 비치는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없어졌다 최근 부활되었다고 한다.

 

 

하회마을의 참맛을 느끼고자 한다면 하회마을을 지나 병산서원까지 화산 산허릿길을 따라 강물을 내려다보며 걸어야 할 것이다. 십리쯤 되는 그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 많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