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신라의 무덤이라는데 이름은 '백제 고분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

모산재 2011. 11. 1. 13:36

 

집 가까이에 있는데도 올가을에야 처음으로 방이동 백제고분을 찾았다. 그것도 아이들 봉사활동을 위해 인솔하게 되어 방문한 것이니 내 뜻만으로 찾은 것은 아니다.

 

사방이 주택지로 잘려나가고 남은 좁은 땅에 숲이 들어서 있어 역사유적지라기보다는 쌈지공원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은 30여 년 전 고분공원으로 조성되어 주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휴식공간이 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도 벤치에 앉아서 담소를 나눈다. 입시 압박감에 시달려서인지 아이들은 어딜 가나 앉을 자리부터 찾는다. 그러니 이 녀석들이 할머니처럼 여겨질 때가 다 있다. 쯧...

 

 

 

여덟 개의 무덤이 있지만 무덤이 차지하는 면적이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좁은 공원도 아니다. 무덤은 공원의 양쪽 귀퉁이에 3기씩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 무덤

 

 

 

 

 

'방이동백제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이 무덤들이 당연히 백제의 무덤이라 알고 있었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안내판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라 단정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주변 지역이 백제의 초기 수도 위례성이 있었던 곳이고, 가까이에 있는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 그리고 석촌동 고분(적석총)과 가락동 고분군 등이 모두 백제 유적이라 이 무덤들 역시 백제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런데 일부 무덤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杯)가 전형적인 신라 양식이고, 무덤 널길의 위치와 관대()의 방향 등이 경주의 무덤들과 비슷하다는 점 등으로 이 무덤의 주인공들이 신라시대의 사람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모양이다. 

 

 

 

 

신라의 무덤이 사실이라면 위의 표지판에 새겨놓은 '백제고분군'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이 바뀌는 것이 마땅할 텐데... 문화재청에서는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이 무덤에 대한 기재문을 찾아 보니 더욱 혼란스럽다. 

 

"서울 방이동 일대에 있는 백제전기(4C초∼475)의 무덤들이다."라고 시작한 기재문은 중간에서는 출토된 굽다리접시를 근거로 "6세기 이후 한강유역이 신라영토로 되었을 때 만들어진 신라 무덤일 가능성도 있다."고 방향을 튼다. 그런데 마무리 부분에서 또 다시 방향을 틀어 "방이동 유적은 백제의 수도가 한성에 있을 때 만들어진 전기 무덤으로 가락동·석촌동무덤과 함께 한성백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라고 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해설을 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신라의 무덤이라면 신라가 북진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역사 유적이 되는 셈이다.  

 

 

북서쪽 무덤

 

 

 

 

낮은 구릉에 위치한 이 고분들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사방의 벽을 돌로 쌓아 올리고 한쪽에 연도(道=널길)를 내고 바깥을 흙으로 덮은 양식이다. 

 

유감스럽게도 무덤은 대부분 도굴되어 확인된 유물이 별로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