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8) 행남봉의 선갈퀴, 분꽃나무, 섬댕강나무, 바위수국, 산복사나무

 

거센 비바람으로 울릉도 여행의 가장 중요한 하루가 허무하게 날아갔습니다.

 

자고 일어난 아침은 거짓말처럼 화창한 햇살이 온 섬을 눈부시게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오후에 섬을 나가야 하는 일정이라 성인봉도 나리분지도 포기하고 도동 주변의 산을 올라 풀꽃나무 탐사를 하기로 합니다. 행남해안산책로 중 군청에서 행남봉 방향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듭니다. 

 

 

군청 언덕에서 등대풀을 만납니다. 햇살이 눈부셔 암수술 모습이 잘 잡히지 않아 애를 먹습니다. 

 

 

 

비탈진 밭길로 들어서자 분홍빛 광대나물 꽃이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때 늦은 꽃이 아닌가요.

 

 

 

그리고 광대나물에 큰소리치듯 같은 빛깔의 살갈퀴가 제철에 맞춰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여린 꽃을 피운 점나도나물 꽃도 담아 봅니다. 자줏빛 꽃밥이 눈에 띄고, 긴 꽃자루에 이미 성숙한 열매들이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난 가을에 꽃을 피운 송악은 겨울을 지나고 이제 까만 열매로 익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골짜기로 접어드는 곳에서 괴불주머니를 만납니다.

 

꽃입술이 짧은 것으로 봐서는 산괴불주머니가 아님은 분명한데... 열매꼬투리가 잘록한 염주괴불주머니일까, 아니면 씨가 2열로 배열되어 있어 평평한 꼬투리가 달리는 갯괴불주머니일까. 아직 열매가 달리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길가 모과나무에 붉은 꽃망울이 부풀고 있습니다. 꽃봉오리의 저 붉은 색감만으로도 내 침샘은 조건반사를 일으키며 순간 새콤한 사춘기의 감동에 빠집니다그려.  

 

 

 

말오줌나무는 아주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 커다란 꽃차례를 곳곳에서 드리우고 있습니다. 확실히 딱총나무에 비해서 꽃차례가 많이 커 보입니다.

 

 

 

 

돌외가 덩굴을 이루어 무더기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울릉도 곳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데, 가을에 콩알만한 까만 열매가 달리는 박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숲그늘에서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전호는 하얀 꽃색이 참으로 맑습니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에  꽃차례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도 아름답고~.

 

 

 

새덕이인지 참식나무인지 헷갈리는, 녹나무과로 보이는 어린 나무 하나를 만납니다.

 

같은 녹나무과 참식나무속으로 잎모양이 워낙 닮은 두 나무(학명은 참식나무는 Neolitsea sericea, 새덕이나무는 Neolitsea aciculata), 새덕이가 잎이 좀더 길쭉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새덕이라면 제주도 완도 등 남해안에서 자라는 녹나무과의 나무인데, 울릉도에도 자생하는 건지... 3~4월에 붉은 꽃을 피운다는데 꽃 피운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곰딸기로 보이는 딸기나무도 자주 보이는군요.

 

 

 

이곳에도 동백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늘진 절벽 습한 땅에서 키 작은 선갈퀴들이 모여 자라서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나리분지 그늘진 숲은 아마도 선갈퀴 하얀 꽃사태를 이루고 있지 싶습니다. 

 

 

 

 

섬기린초는 꽃을 피우려면 아직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쥐똥나무 한 그루를 만나 울릉도 특산 섬쥐똥나무를 떠올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Korean Privet라는 열명을 얻은 섬쥐똥나무의 특징이 무엇인지 이 잎모습만으로 발견할 수 있을까요. 꽃차례에 잎 같은 포가 달린다고 하는데, 확인불가능이지요.

 

 

 

태하 해변에서는 피지 않았던 분꽃나무가 이곳에서는 활짝 피었습니다.

 

 

 

 

능선길로 접어들면서 도동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산 등성이로 올라서자 유난히 느티나무들이 많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새로 자라난 가지에는 좁쌀만한 작은 꽃망울들이 깨알처럼 다닥다닥 달렸습니다. 느릎나무과에서도 가장 꽃이 작은 나무가 느티나무입니다.

 

 

 

 

우산고로쇠들도 연황색의 꽃들을 활짝 피웠습니다.

 

 

 

 

 

바위수국도 숲그늘 바위를 타고서 봉긋한 꽃차례를 밀어올렸습니다.

 

 

 

섬매발톱나무도 부지런히 꽃차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섬단풍도 붉은 꽃싸개 속에서 노란 꽃술을 내보낼 준비태세에 들어갔습니다.

 

 

 

 

도동 동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 너머로 아름다운 저동항과 죽도, 그리고 독도를 향해 넘실거리는 망망대해 푸른 동해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섬댕강나무를 만납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둔한 톱니가 몇 개가 늘어선 잎, 짧은 잎자루... 그런데 꽃차례의 흔적만 만들었을 뿐 꽃이 피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섬괴불나무도 흔하게 보이지만 태하 해안에서 보았던 것처럼 꽃봉오리만 쌍쌍이 달렸을 뿐 아직 꽃은 볼 수 없습니다.

 

 

보리밥나무는 곳곳에서 붉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따서 먹어보니 단맛이 살짝 느겨지는 정도. 아무래도 보리수 열매만큼 맛들지는 않을 듯합니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에는 유난히 산복사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유난히 환한 날씨와 환경 탓일까요. 산복사 꽃이 이곳에서처럼 아름답게 핀 것을 본 적은 없지 싶습니다.

 

 

 

 

정상 부근까지 올라 도동과 저동 방향의 전망을 즐기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섭니다.

 

 

들일을 마치고 들어가시는 어느 할아버지의 집 정원에 화단에 꽃들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꽃 구경을 허락합니다.

 

네 갈래의 자줏빛 작은 꽃을 피운 나무가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이 모양의 굵은 톱니가 있고 윤이 나는 잎사귀를 가진 나무... 본 듯하면서도 내내 기억이 안 나다 이 글을 쓰면서 겨우 식나무를 떠올리고 찾아보니 과연 식나무 꽃이 맞습니다.

 

  

남부지방의 해안지역에 자생하는 암수딴그루인 상록수, 연둣빛 새순에 담겨 있는 자줏빛 작은 꽃이 풀꽃처럼 귀엽습니다. 수술 네 개가 보이는 걸 보니 이 녀석은 수나무입니다. 암꽃은 한개의 암술만 있겠지요. 암나무라면 가을에 대추 모양의 빨간 열매를 볼 수 있을 텐데...

 

 

  

그리고 향기가 좋은 백서향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거제도나 제주도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멸종위기식물입니다. 비슷한 서향은 중국 원산으로 꽃 안쪽은 희고 바깥쪽은 자주색인 점으로 구별되지요.

 

 

 

 

할아버지 말씀으로 울릉도에만 산다는 섬정향나무도 꽃을 피웠습니다. 

 

표준명은 섬개회나무(var. venosa)인데, 이 종은 털개회나무( Syringa patula)가 기본종으로 여러 변종과 품종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흔히 정향나무(var. kamibayshii)로 불리지만 변종들은 정향나무라는 이름 외에도 개회나무라는 이름을 많이 달고 있습니다.  

 

섬개회나무는 지난해의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리고 꽃줄기가 없으며 꽃대에 털이 없다고 하는데, 털개회나무와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네요.

 

 

 

도동의 어느 기관의 구내에 있는 고로쇠나무를 마지막으로 울릉도 풀꽃나무 탐사는 끝이 납니다.

 

 

 

성인봉과 나리분지의 풀꽃나무를 탐사하려던 애초의 뜻이 악천후로 좌절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환한 날씨에 행남봉에 올라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울릉도의 절경을 마음껏 전망하고 주변의 풀꽃나무들이라도 살필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해 봅니다.

 

언젠가 또 시간이 주어진다면 꽃 피는 오월에 다시성인봉과 나리분지를 찾을 날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