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여행

울릉도 (6) 비바람 몰아치는 나리분지에서 막걸리 마시다

모산재 2011. 5. 13. 13:30

 

자고 일어나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날씨는 잔뜩 찌푸린 채 심상치 않아 성인봉 종주는 애초에 틀렸다 싶다. 성인봉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나리분지로 이동하자고 마음 먹는다. 나리분지 주변 산기슭에 올라 풀꽃나무 탐사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겠는데 어쩐지 날씨가 도와줄 것 같지 않다.  

 

군청 입구로 들어서는 길가 식당에서 엉겅퀴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해장국이래서 뚝배기에 국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더니 조그만 국그릇에 담은 국을 내놓는데, 그냥 백반에 딸린 국이다. 울릉도 섬엉겅퀴를 재료로 된장국물 맛을 낸 것...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올려다보는 까마득한 절벽 위 바위능선에 향나무 한 그루가 위태롭게 서 있다. 도동항을 굽어보고 있는 저 향나무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무이다. 

 

산림청 추정 2천 5백여 년쯤 된 향나무라고 하는데, 1985년 10월 8일 태풍 브랜다가 울릉도를 강타했을 때 오른쪽 가지가 부러져 나가고 난 뒤 한 줄기만 남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당시 태풍 브랜다로 저동항에 피항한 선박 285척이 대파되는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줄기를 철사줄로 고정해 놓은 모습이 멀리에서도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울릉도 상징 마크. 울릉도 오징어와 호박을 기본 도안으로 하였다.

 

'울릉도 호박엿'이 '호박엿'이 아니라 울릉도 군목이기도 한 후박나무 껍질로 엿을 만들어 먹었던 후박엿이었다고 전하는데, 세월 속에서 후박엿이 호박엿으로 바뀌고 호박이 울릉도를 상징하는 농산물로 자리잡았다.

 

울릉도의 산간 밭에서 더덕이나 삼나물(눈개승마), 물엉겅퀴, 부지깽이나물(섬쑥부쟁이), 취나물(울릉미역취) 등이 흔하고 명이(산마늘)이 넓게 자생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흔하지 않은 호박이 대표 농산물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은 뜻밖이다.

 

 

 

공영버스를 타고 다시 어제 지나갔던 길을 따라 달린다.

 

태하를 지나 현포리 고개를 넘어서니 바람과 함께 자욱이 밀려드는 안개, 그리고 후두둑 차창으로 빗겨 듣는 빗방울...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를 기대했건만 결국 오늘 일정은 틀어지게 되었다.

 

 

구불구불 급경사를 따라 현포리로 내려가는 길, 날씨가 좋고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도 고개를 넘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걸어갔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00mm렌즈를 장착하고 있던 터라 흔들리는 차창으로 멀리 보이는 공암(코끼리바위)를 담아본다.

 

 

 

 

천부리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제법 듣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나리분지에 도착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대기하고 있는 나리행 미니합승버스를 탄다.

 

4년 전에는 걸어서 올라갔던 길. 나물을 뜯으러 가는 할머니들이 함께 타고 가다 중간에서 내리고... 

 

 

나리에 도착하니 옷이 젖을 만큼 비가 내린다.

 

막막한 마음에 우선 비는 피하고 보자. 버스가 내려준 곳이 바로 산장식당(4년 전에 성인봉을 넘어 왔을 때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앞이라 그곳을 들어서니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자리란 자리는 삼나물이나 더덕전 등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 안개에 덮인 성인봉 자락과 나리 산장식당 풍경

 

 

처마 밑에 한참 비를 피하다 자리가 나서 더덕전에 막걸리 반 되를 시켜 마신다. 비싼 돈 들여 이곳을 찾은 목적을 잠시 잊어버리면 이렇게 촐촐히 비가 내리는 날씨에 이 호젓한 곳에서 막걸리 한잔 제끼는 기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에라 모르겠다. 야생화 탐사를 목적으로 장착해 놓은 100mm렌즈로 야생화 대신 안주 인증샷 한 방.

 

 

 

막걸리 맛도 최고다. 약초향이 아름답고 목을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럽다. 육지에선 볼 수 없는 더덕이 듬뿍 들어간 안주는 또한 얼마나 푸짐한가. 알맞게 맛이 든 깍두기 김치도 있어 곁들여 먹으면 뒷맛도 개운하다.

 

 

이렇게 막걸리로 얼근히 취하고 안주로 배부르며 두어 시간 지나니 비바람은 더욱 거세어진다. 나리분지 탐사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인다.

 

결국 비 내리는 나리분지 풍경을 몇 컷 찍고는 다시 천부리로 나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 남쪽으로 무덤 같은 둥근 봉우리가 있는 알봉 방향. 오늘은 저 방향으로 풀꽃나무 탐사를 가려고 했는데... 

 

 

▼ 나리분지 서쪽 마을

 

  

 

▼ 나리분지 북쪽 방향

  

  

천부리로 다시 나오니 도동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인데...

 

바람만 불지 않아도 천부리에서 관음도가 보이는 섬목까지 걸으며 해안 풍경도 즐기고 풀꽃나무들 탐사도 하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처지도 아니다. 

 

 

 

 

내일 날씨가 좋아지기라도 한다면 이곳에 머물다(숙박시설과 식당 사정도 좋지 않은 곳이지만...) 내일 오전 내수전까지 해안길을 따라 트레킹을 했으면 좋으련만, 내일 배가 제대로 뜨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여행사에서는 내일 오전 배로 울릉도를 떠나는 게 좋겠다는 권유 전화까지 오지 않느냐...

 

결국 도동으로 돌아와 숙소를 잡는다. 날씨는 더욱 사나와져 폭풍우에 우산이 뒤집어질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