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가락동과 탄천을 거닐며 잡초들 만나다

모산재 2010. 11. 5. 21:32

 

일요일이고 개천절입니다.

 

늦도록 자고 일어나 상쾌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켜니 개천절 기념식을 합니다. 느낌 안 좋은 얼굴 만나 기분 망칠까 봐 얼른 끄려는데, 엊그제 새로 총리가 된 사람이 기념사를 하고 있네요.

 

물러간 총리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군대 안 간 사람이 총리가 되었으니 권력 핵심부의 자격은 군대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만 확실하게 제한한 듯합니다. 게다가 집권당 대표까지 12년간을  요리 숨고 조리 피하여 군 징집을 멋들어지게 모면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요. 현 집권세력은 군대를 싫어하는 평화 애호 세력인가 싶다가도, 걸핏하면 대결의식 부추기고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을 개탄하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 모두가 더 화합하고 단결한다면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반드시 구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국민의 저력을 모으자고 하는 총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쓴웃음이 나옵니다. 국민을 동원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무엇이 앞이고 뒤인지도 혼동하나 봅니다.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가 되면 우리 모두 더 화합하고 단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해야 말이 되지 않나요. 사람이 수레를 끄는 것이거늘 수레가 사람을 밀고 간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건국 이념을 팔며 "지역과 계층,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상생과 번영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그의 말은 공허하게만 들립니다.

 

 

 

오후 반나절이 지날 무렵, 볕바라기하며 바람도 쐴 겸 오랜만에 동네 주변을 산책하며 탄천까지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합니다. 잡초 위주로 살펴볼 요량입니다. 배낭은 생략이고 그냥 카메라만 메고 나섰습니다.

 

 

 

상가 옆을 지나다 문득 요즘 통 만나보지 못한 가시박이 생각나서 넓은 빈터를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찾아가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늘 보던 그 자리에는 올해도 가시박 덩굴이 무성하게 덮고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박과의 잡초인데 하도 번식력이 강해서 환경부가 생태계교란식물로 지정한 녀석입니다. 황백색 꽃이 나름 매력이 있지만, 가시가 많은 작은 열매는 박과의 식물 중에서 가장 볼품없지요.

 

 

 

 

 

지난 주 좀부처꽃 등을 만난 큰길가의 화단으로 갑니다. 화단 조성에 사용된 화초와 관목을 따라 들어온 흙에서 서울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습지의 여러 잡초들이 자라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졸지에 낯선 도시에 강제이주 당한 잡초들의 삶터이지요.

 

 

 

이곳의 한련초는 줄기가 땅바닥을 기듯이 바짝 붙었습니다. 꽃 피기 전의 꽃봉오리가 이런 귀여운 모습임을 처음으로 확인합니다.

 

 

 

 

 

좀부처꽃은 열매가 제법 영롱한 붉은 빛으로 익었습니다.

 

 

 

 

 

가는마디꽃의 꽃이 혹시 피었을까 하고 살펴보지만 잎겨드랑이에서 꽃이나 열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꽃을 못 피우고 시든다면 내년에는 이 녀석을 볼 수 없게 될 겁니다.

 

 

 

 

 

마디꽃 또한 마찬가지군요. 그런데 줄기의 아래쪽 부분의 잎겨드랑이에 붉은 점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게 열매인지 너무 작아서 확인이 어렵습니다.

 

 

 

 

 

길쭉한 잎에  톱니가 있는 이 외풀은 논뚝외풀로 보면 되겠지요.

 

 

 

 

 

길쭉한 잎에 좁쌀만한 열매가 특이한 이 녀석은 긴두잎갈퀴라고 합니다. 백운풀 중에서 꽃자루가 긴 것을 긴두잎갈퀴라 하는데 흔히 긴잎백운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얀 꽃봉오리도 보이지만 활짝 핀 녀석은 보이지 않네요.

 

 

 

 

 

화단에 심어 놓은 비비추가 늦은 꽃을 피웠습니다. 커다란 포가 건실한 것이 눈길을 끄는데, 주걱비비추로 보면 될까.

 

 

 

 

 

알방동사니도 피었군요. 흑갈색의 둥근 이삭이 달린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 보랏빛 구기자 꽃을 만납니다. 작년엔 꽃이 흐드러지게 많이 피었는데, 올해는 비가 많았던 탓인지 꽃이 드문드문합니다.

 

 

 

 

 

어린이 놀이터 앞 공터엔 꼬마 소녀가 추억이 비석치기 놀이를 혼자서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런 전통 놀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놀랍고 반갑습니다.

 

 

 

 

 

 

비짜루와 닮은 아스파라거스가 늦은 꽃을 드문드문 달고 있습니다. 암꽃은 보이지 않고 수꽃만 피었습니다.

 

 

 

 

 

이삭이 파꽃을 닮아서 파대가리라 불리는 사초과 풀을 만납니다.

 

 

 

 

 

범 무늬 같은 꽃을 피우는 범부채는 까만 열매를 달았습니다. 서양에서도 leopard flower(표범꽃)라고 부르는데, 꽃도 꽃이지만 꽃이 지고 난 저 까만 열매가 달려 있는 모습에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열매 껍질이 세 조각으로 말라서 비틀려 있는 모습도 재밌지요.

 

 

 

 

 

한국의 야생 제라늄, 이질풀만큼 예쁜 꽃도 많지 않겠지요. 이 땅에 피는 잡초류의 풀꽃들이 대개 소박한 색깔인데 비해, 이질풀은 아마도 가장 튀는 화려한 빛깔을 가진 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름대로 이질을 다스리는 풀입니다.

 

 

 

 

 

아메리카에서 들어와 이제는 우리 나라 여름철 공원과 꽃밭의 주연배우 노릇하는 풀협죽도입니다. 영명 그대로 플록스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제 꽃이 거의 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꽃의 모양이 협죽도를 연상시켜 풀협죽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협죽도와는 무관한 꽃고비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바람 타는 나비 같은 하늘하늘한 붉은 꽃을 피우는 풍접초도 담아 봅니다. 열대아메리카 원산입니다.

 

 

 

 

 

흔하고 흔한 천일홍이지만 오랜만에 꽃을 봅니다. 백일홍보다 더 오래 피어서 천일홍이 아니라 붉은 꽃색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아서 천일홍입니다. 보다 풍접초처럼 열대아메리카 원산입니다. 작은 꽃들이 촘촘히 뭉쳐 피는데, 흰꽃이 사이사이 핀 모습이 특이합니다.

 

 

 

 

 

 

탄천은 지난 추석 때 폭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갈대밭과 억새밭은 거의 전멸입니다.

 

 

 

 

 

붉은 빛이 도는 줄기에 황색으로 익는 열매는 미국실새삼입니다. 콩과식물에 기생하는 실새삼과는 달리 거의 모든 잡초에 기생합니다. 열매 모양이 나팔꽃의 모양을 닮았는데, 이 녀석이 메꽃과라는 걸 알 수 있게 합니다.

 

 

 

 

 

뽕모시풀은 뽕나무의 어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뽕나무를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뽕잎풀이라고도 불리는데, 뽕나무과의 한해살이풀입니다. 꽃이 핀 모습은 뽕나무보다는 에기닥나무 수꽃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암수딴그루가 아니라 암꽃 수꽃이 섞여 핍니다.

 

 

 

 

 

 

여름을 지난 지 오래지만 부처꽃이 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잡초 산책의 마지막에 만난 것은 출발 때처럼 가시박입니다. 이름처럼 줄기, 꽃자루, 열메는 털 같은 가시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둑 쏟아집니다. 햇볕 쨍쨍했는데 날씨가 변덕이 심하네요. 캄캄해지는 서쪽 하늘을 보며 집을 향해 뜀박질합니다. 다리 위로 밀려가는 차량들 앞등 불빛을 향해 어둠이 몰려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