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하늘공원의 가을, 억새밭 거닐며 만난 풀꽃들

모산재 2010. 11. 7. 22:41

 

쓰레기 매립장이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더니,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 공원에 야고가 지천으로 꽃을 피우며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는 소식에 설레면서도 몇 번의 가을을 그냥 보내왔습니다.  

 

난지도에 들어선 하늘공원~. 한번 가 봐야지 하면서도 종내 걸음을 하지 못하였는데 이 늦은 가을에야 찾게 되었습니다.  

 

애초에는 한강 가운데 있는 선유도를 먼저 둘러보고 찾을 셈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지하철 9호선을 타고 당산역을 지나 선유도역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선유도역을 지나쳐 버리는 게 아닌가. 급행이 운행되는 사실도 모르고 되돌아 오려고 탄 지하철은 또다시 급행, 당산으로 되와서는 슬슬 '열받는' 마음에다 시간도 많이 지났다 싶어 그냥 하늘공원으로 직행하기로 합니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과 평화의공원을 지나 나타나는 하늘공원은 정말 하늘만 바라보는 공원이다 싶게 높이 솟았습니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덮여 있는 매립지, 하늘을 향해 높은 언덕을 오르는 나무계단은 퍽이나 인상적입니다.

  

 

 

하긴 이곳을 아주 처음 온 것은 아닙니다.

 

십 몇 년 전 환경교육을 한답시고 구청의 지원을 받아 아이들을 버스에 싣고 난지도와 일산호수공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이어서 풀 하나 없는 매립지 언덕 곳곳엔 가스를 뽑아올리는 관들이 세워져 있고 몇 몇 관에서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지요. 또 곳곳에서 더러운 침출수가 흘러내리며 악취를 풍기기도 했습니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반이 비교적 안정화되었고, 이제 이렇게 멋진 생태공원이 된 것입니다.

 

 

매립지를 오르기 전 난지천공원 쪽으로 먼저 발길을 옮겨보기로 합니다.

 

 

 

매립지 둘레로 물길이 나 있는데, 가을을 맞이하여 주변 언덕의 풀들이 깨끗이 베어져 나가고 별스럽게 볼 만한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군요. 다만 보행로 주변에 울타리처럼 심어진 개쉬땅나무가 철을 잊은 듯 군데군데 하얀 꽃을 피우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결국 발길을 돌려 하늘공원으로 오르기로 합니다.

 

이곳은 가히 멀티 파크라고 명명해도 좋을 만큼 많은 공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평화의공원과 하늘공원, 난지천공원 외에도 강변 쪽의 난지한강공원이 있고 또 하늘공원 건너편에 비슷한 지형을 가진 노을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노을공원 공사가 완료되면 하늘공원과 쌍둥이 공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암동 하늘공원(월드컵공원) 지도 : 다음 지도에 표기함

 

 

 

안내도를 보면 하늘공원은 거의 전부 억새와 띠 등 풀숲으로 덮여 있는 초지 생태공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풀들이 자라는 공원이지요.

 

하늘공원을 중국어로 '람천공원(籃天公園)'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바구니 람', '하늘 천'으로 된 '람천'이 하늘을 뜻하나 봅니다.

  

 

 

나무 계단 위에서 돌아보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산대교와 분수가 솟아 오르는 풍경이 보입니다.

 

 

 

동쪽으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월드컵 경기장 한쪽으로는 휘어진 듯한 형태로 지은 마포구청 청사가 보입니다.

 

 

 

하늘공원과 그 주변에 서식하는 식물만 모두 450종 정도가 관찰되고 있다고 하니 생태계공원이라고 하여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키 큰나무로는 아까시가 흔하게 보이고, 오르는 계단 옆에는 흰말채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언덕에는 덩굴을 멍석처럼 사방으로 벋은 가시박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이 녀석들이 휩쓸고 있지요. 른 식물들을 거의 초토화시키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낯선 식물들에 관심을 표합니다.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낭아초 꽃을 오랜만에 만납니다. 키가 크고 높게 서는 것으로 보아 토종 낭아초가 아닌 듯합니다. 동해 바닷가 솔숲에서 만난 토종 낭아초는 거의 땅 위에 엎드린 모습을 보입니다. 두 개의 꽃차례가 나란히 달리는 모양이 이리의 이빨을 닮아서 낭아초(狼牙草)라 부른다고 합니다.

 

 

 

동쪽 언덕으로 난 길을 둘러서 한참 걸어서야 비로소 고원 평지를 이룬 하늘공원으로 들어서섭니다. 거대한 하늘공원 표석과 함께 하얀 꽃을 피운 억새밭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억새밭입니다. 가끔 띠풀들도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기도 하지만...

 

억새밭 사이로 미로처럼 난 길을 거닐며 그 정취에 흠뻑 젖는 것, 그것이 하늘공원을 찾는 이유입니다.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혹은 가족과 함께 찾아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혼자서 말없이 거니는 이도 있고, 사진 촬영에만 골몰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 엄청난 억새밭에서 보고 싶었던 야고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뜻밖에 쉽게 만납니다. 그런데 대부분 꽃이 시들어 버린 상태라 실망스러운데, 이곳 저곳 살피다 꽃을 대면합니다. 첫 만남은 언제난 설레기 마련입니다.

 


처음으로 인사한 야고는 이런 모습입니다. 

 

 

 

천천히 거닐다 보면 또 만날 수 있겠지, 기쁨을 맛보는 감격을 아껴두기로 하고 다른 곳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멀리 북쪽으로 노을공원과의 사이에 솟아 있는 높다란 굴뚝이 보입니다. 지역난방공사의 소각장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매립된 땅속에서 포집되는 가스와 마포지역의 쓰레기들을 태워 지역난방에 쓰고 있는 시설이라고 합니다.

 

 

 

억새 숲길은 그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몸짓들을 절로 훔쳐 보게 만듭니다.

 

남녀 연인인 줄 알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두 분 다 여성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의 포즈도 재미있지 않은가요.

 

 

 

바람에 물결치며 희번득거리는 억새꽃의 몸짓을 역광으로 찍고 있는 아가씨. 열중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입니다.

 

 

 

하얗게 핀 억새꽃이 햇살에 눈부십니다. 

 

 

 

억새에 묻혀서 걷는 여인들, 자연의 넉넉한 품 속을 걸으며 그녀들의 가슴 속에도 풍성한 가을이 익어갈까요. 

 

 

 

 

끝없이 이어지는 억새밭 풍경

 

 

 

붉은토끼풀

 

 

 

서쪽 끝으로 향하다 보니 노을공원이 가까워집니다.

 

 

 

높이 솟은 노을공원을 건너다보며 렌즈를 대봅니다. 하지만  최대한으로 잡은 풍경이 공원이 아니라 숲밖에 잡히지 않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범용렌즈를 가져올 것을...

 

 

 

하늘공원 중앙으로는 난 길 양쪽에는 좁은 물길아 나 닜는데, 그곳에는 몇몇 수생식물들이 자랍니다. 연꽃 마른 줄기가 고개를 꺾고 물 속에 잠겼을 만큼 을씨년스런 풍경입니다. 그런데도 뜻밖의 꽃들을 만나 놀라게 됩니다.

 

 

물토란인지, 줄기가 자라나지 않은 에키노도루스인지... 

 

 

 

언제나 꽃을 보고 싶었던 마름, 이번에도 너무 늦게 만납니다. 내년 6월에 다시 찾아야 할까 봅니다.

 

 

 

무심히 지나치려다 들여다본 좀어리연꽃, 하얀 꽃이 두 송이 피어 있음을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수련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늦은 봄에나 만나는 붉은인동 꽃을 만난 것도 또 하나의 기쁨입니다.

 

 

 

이건 쇠귀나물로 보이겠지요~.

 

 

 

봄에 피어야 하는 동의나물이 이 깊은 가을에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하늘공원의 상징물인 '하늘을 담는 그릇'이라는 전망대. 늦은 오후의 햇살에 출렁이는 억새밭을 전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억새밭 풍경입니다.

 

 

 

 

 

중앙으로 난 길

 

 

 

 

이곳을 찾을 때에는 사실 활나물을 만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활나물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미 꽃 필 시기가 지났는데 가능할까. 게다가 이 압도적인 억새밭 속에서 활나물이 지천으로 피어 있지 않고서야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어려울 것 아닐까.

 

 

그런데 ㅎㅎ. 어느 모퉁이를 가다가 누군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는데 글쎄, 억새 우거진 숲속에  보랏빛 꽃 한 송이가 웃고 있지 않겠습니까요. 

 


활나물입니다.

 

 


그 주변 사방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이 한  송이 꽃뿐입니다. 꽃이 지고 열매를 단 개체 하나가 더 있긴 했지만...

 

 

활나물 발견을 축하하듯이 사방이 환해집니다. 억새밭 너머로 황혼이 번집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야고를 발견했던 곳 주변으로 거닐다보니 아직도 피어 있는 야고 꽃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 보름만 빨리 왔더라면 참 좋을 뻔했는데... 무더기로 자란 꽃들은 거의 시들어버렸고 한두 개체만이 억새 뿌리에 기생하여 뒤늦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벌써 햇살이 사라져 버린 데다 억새그늘이 너무 짙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 아쉽습니다.

 

  

 

 

하늘공원의 억새밭은 제주도에서 가져다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야고 균주가 따라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몇 안 되었던 개체수가 해가 거듭되면서 늘어나 지금처럼 대규모 군락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고가 명물이 되면서 하늘공원은 이제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명소가 자리잡은 듯합니다.   

 

이렇게 야고를 찾아다니다 보니 해는 사라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합니다.새밭을 거닐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야고도 만나고, 활나물꽃도 보았으니 오늘 하루 하늘공원 방문은 보람이 있습니다.

 

되돌아나오는 길에도 공원을 찾아드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