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양재천 산책길에 만난 가을 풀꽃나무들

모산재 2010. 10. 17. 22:20

 

몇 년 만에 양재천을 찾는가 보다. 추석을 지나며 날씨도 선선해지고 볕도 부드러워지면서 갑자기 양재천이 그리워져 카메라만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양재천 풍경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100m렌즈만 끼고선...

 


 

참으로 오랜만에 마을버스 5번을 타고 개포 5단지에 내린다. 그리고 곧장 양재천 산책길로 접어든다.

 

 


늘 보기만 하고 지나치던 왕고들빼기꽃이 만나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본다. 흰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닌 꽃잎이 너무 수수해 사람들의 눈길을 그리 끌지 못하는 꽃이다.

 

 


처음 이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수술은 많은데 암술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수술로 보이는 이 부분은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대롱꽃(통상화)이다. 꽃가루받이가 제대로 되면 저 대롱꽃만큼의 씨앗이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수수한 혀꽃(설상화)은 곤충들을 부르는 항공표지판 역할을 하지만, 화려한 진노랑 대롱꽃은 다가온 곤충들을 유인해 꽃가루받이를 성공시킨다.

 

 


가을 양재천에서 가장 우세한 종, 외래종 미국쑥부쟁가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10여 년 전 이곳 양재천에서 초면 인사를 나눈 이 꽃은 1970년 춘천의 중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중도국화'라 불리다가 미국쑥부쟁이란 이름으로 정착된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꽃을 피우는 번식력으로 이 녀석은 이제 전국적으로 쫘악 퍼져 버렸다. 내 고향 경남 합천 산골에까지 말이다... 

 

꽃 자체는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데, 이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결국 작년(2009년)에 생태계 교란식물로 지정되어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꽃이 필 때 이삭의 모양이 쥐꼬리를 닮은 쥐꼬리망초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 나라 경기 이남에서 아열대인 동남아까지 흔한 잡초 꽃이다. 세 갈래로 갈라진 꽃이 특이한 아름다움을 준다. 곤충을 유인하는 저 하얀 줄무늬의 밑부분, 암술 하나와 수술 두 개를 볼 수 있을까.

 

 

 


양재천으로 내려서자마자 집에서 막연히 나설 때 기대했던 양재천이 아닌 걸 발견하고 실망스럽다.

 

추석날 폭우로 홍수가 양재천을 휩쓸어 버렸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강 언덕 중턱에 있는 산책로까지 물살이 지나간 흔적이 남았다. 가을 양재천의 장관을 이루었던 갈대와 억새밭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렸다.

 

사실 오늘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은 양재천 물 속에 무성하게 자라던 물풀들과 꽃들이었는데...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물은 줄었지만 여전히 물살은 거세게 흐른다. 물이 더 빠지더라도 제대로 남아 있는 수초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오늘 양재천 풀꽃 탐사는 기대할 게 없게 되고 말았다.

 

 

토끼풀 꽃이 둥글게 모여 피는 줄만 알았더니 긴병꽃풀 덤불 속에서 고개를 내민 꽃은 이렇게 층층으로 달린 모습을 보여준다.

 

 

 


새팥이 노랑나비 같은 꽃을 피웠다. 야생팥으로 팥의 변종으로 되어 있다. 물론 종자가 팥에 비해서는 훨씬 작다.

 

 

 


둥근잎유홍초 붉은꽃이 피었다. 열대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둥근잎유홍초는 귀화에 성공하여 민가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잎이 깃꼴로 가늘게 갈라진 유홍초와는 달리 잎이 둥글어 둥근잎유홍초라 한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 아직은 해가  남은 오후이지만 그늘쪽에 있는 나팔꽃은 꽃잎을 다물어 버렸다. 활짝 핀 꽃과는 다른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거울처럼 맑은 물을 담고 있던 작은 연못에도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어지럽게 남았다.

 

 


 

양재천변에서 가장 많은 나무는 단연 참느릅나무이다. 느릅나무는 봄에 꽃이 피지만 참느릅나무는 가을에 꽃이 핀다. 다소 늦은 감이 들었지만 꽃이 피었을까 살펴보니, 대부분은 꽃이 지고 둥근 열매를 달았지만, 그늘 쪽에 꽃이 있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두 갈래로 벌어진 암술머리,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술이 보인다. 느릅나무 종류에는 꽃잎은 없다.

 

대부분의 느릅나무는 아래와 같은 원반형의 열매를 주렁주렁 단 모습이다. 

 

 

 


구룡초교 뒷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에서 시끄럽게 우는 새 소리.  '삐~요, 삐~요, 삐~ 삐~ 삐~익' 울어대는 요놈은 직박구리로 보인다. 서울에서 흔히 만나는 텃새이다.

 

 

 


산꼬리풀인지, 긴산꼬리풀인지가 하늘색 꽃을 피웠다.

 

 

 


참 예쁜 꽃임에도 잡초로만 남아 있는 이질풀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같은 식구인 원예종, 제라늄에 비해 이 꽃이 덜 예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줄기를 벋으며 꽃이 풍성하게 피어 화단에 심으면 참 잘 어울릴 꽃이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네발나비 한 마리가 앉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남방부전나비로 보이는 녀석들이 지천으로 날아다닌다. 

 

햇살이 짧아지면서 짝짓기를 하는 녀석들이 흔히 눈에 띈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관계치 않고 진한 사랑을 나눈다.

 

 


날개의 아랫면은 흰바탕에 점박이 무늬를 가졌지만 윗면은 이렇게 검은빛을 띤 붉은색이다.


 

 

 

익모초도 꽃이 예쁜 풀이다.

 

 

 


참 만나기 쉽지 않은 목화바둑 명나방을 만난다.

 

검은 흰 바탕에 검정 테두리를 한 단아한 모습이 아름다운 나방인데, 곤봉 같은 노란 털뭉치 꼬리를 뱅글뱅글 돌이는 모습이 몹시 귀여운 녀석이다. 하도 촐랑거리는 녀석이라 몇 초 정도 앉았다가 금방금방 날아가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가 몹시 어렵다. 게다가 잎새 아래쪽으로 숨는 버릇이 있어 더욱 어렵다.

 

 

 


양재천 하류.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추석날 폭우가 없었다면 이곳은 햇살에 반짝이는 갈대와 억새꽃으로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털이 보송보송한 박주가리꽃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준다.

 

 

 

홍수가 쓸고 가지 않았다면 꽤 많은 가을 꽃들을 볼 수 있었으련만... 그렇게 흔하던 박하꽃조차도 보지 못하고 양재천 산책을 끝내고 돌아선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로 돌아온다.

 


가락동 큰길 가, 새로 화단을 조성한 곳에 잡초들이 많아 살펴보다가 좀부처꽃을 만난다. 아마도 화단 식물들과 함께 딸려온 모양인데, 꽤 많은 개체들이 자라고 있다. 

 

 


꽃은 이렇게 희미하다.

 

 

 


그리고 한 무더기의 가는마디풀이 자라고 있다.잎의 크기가 그야말로 깨알 정도로 작은 풀인데, 이 녀석도 좀부처꽃과 같은 부처꽃과의 잡초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만나는 하나의 풀, 돌나물도 아니고 비름도 아닌 이 풀은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녀석도 같은 부처꽃과 잡초인 마디꽃이다. 줄기가 서지 않고 땅바닥으로 기는 모습이어서 낯설었던 것.

  

 


전혀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좀부처꽃, 마디꽃, 가는마디꽃이라는 부처꽃과의 세 가지 잡초를 한꺼번에 만난 것은 행운이다.

 

 

평범한 풀꽃나무들만 만난 양재천 산책, 그러나 환한 날씨만큼 마음 화창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