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태국 치앙마이 (3) 카렌 고산족 마을 돌아보며 하룻밤 보내기

모산재 2010. 4. 26. 14:51

 

1월 19일 늦은 오후, 그리고 밤

 

마을로 접어드는 능선길에 느닷없이 동네 개 세 마리가 나타나 짖어대며 우리의 길잡이 누렁이에게 달려들어 텃세를 부린다. 누렁이는 움찔 겁을 먹고 방향을 틀어 꼬리내리고 우리 뒤로 줄행랑친다. 그 뒤를 쫓는 동네 개들. 그냥 둘 수 없어 고함 질러 꾸짖으니 이럴 수가... 갑자기 전세 역전이다.

 

나의 고함 소리에 용기 백배한 누렁이가 돌아서더니 크게 짖으며 동네 개들에게 덤빈다. 당황한 동네 개들이 그만 걸음아 나 살리라 하고 내빼는데 누렁이 녀석은 아주 신났는지 추격전까지 벌인다. 그리고는 헥헥대며 돌아와서는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흔들어댄다.

 

 

화이트 카렌 고산족 마을은 하늘과 맞닿은 산의 능선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숙소는 주 능선 바로 곁에 있는 작은 능선에 오뚝하니 서 있는 집으로 정해졌다. 건물은 전통 방식 그대로 모두 나무로 지어졌고 지붕만 마른 참나무 잎으로 얹었다. 외국인팀은 저 아래쪽 집에서 머물기로 하였다고 한다.

 

 

▼ 왼쪽 큰 건물이 우리 숙소이고 오른쪽 건물은 주인 집이다. 가운데 보이는 작은 건물은 야외식탁. 

트레킹족들을 위해 숙소 건물은 새로 지은 듯 집이 크고 튼튼하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에 담은 것)

 

 

 

카렌족(Karen)은 대개 해발 500 이상의 산 능선이나 산비탈에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

 

집은 주로 나무나 대나무를 이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일정한 높이에 한 칸짜리 방을 만들고 대나무로 자리를 깐다. 벽은 대나무나 나무를 이용하여 만들고 지붕은 참나무 넓은  잎을 엮어서 덮는다. 창문이 없어 방안은 많이 컴컴하다. 우리가 묵게 된 숙소는 여행자용으로 지어진 탓인지 창문이 둘 있기는 하지만 어둡기는 매 한가지다. 

 

집 한 채에 한 칸 방이니 부모와 자녀가 한 방에서 생활한다. 부엌이 방 가운데 놓여 있어 잠잘 때는 부엌을 향하여 눕는다고 한다. 식구가 많으면 불편하겠지만 결혼하면 분가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촐한 편이다.

 

 

방 아래쪽 공간은 돼지, 닭, 개 등 짐승들이 차지한다. 건기여서 먹을 것이 별 없어서인지 닭과 개는 많이 말랐다. 가옥 구조가 다른 것을 빼면 집 마당엔 우리의 옛 시골집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주거지가 산비탈을 깎아 만든 좁은 마당에 있어 모든 건물을 같은 마당에 들일 수 없다. 그래서 외양간은 마당 아래쪽 비탈을 깎아서 지어 놓았다. 흰 소가 많다 보니 갈색 털의 소도 머리와 배쪽은 흰 털이 많다.

 

 

 

 

주인장 아저씨는 숙소 옆에 또 하나의 숙소를 더 지을 거라며 괭이로 땅을 파서 비탈면으로 흙을 채워 마당을 넓히고 있다. 나도 주인장과 함께 예전 일 좀 해본 촌놈임을 자랑해 보인다. 주인장의 귀여운 두 남매가 내가 하는 일을 재미있어 하며 지켜 본다. 괭이를 넘겨 주자 남자 아이가 괭이질을 제법 다부지게 한다. 내 어릴 때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숙소를 지을 거라고 베어버린 아름드리 나무 그루터기, 관광객들을 더 많이 맞이해서 이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곳이 개발 바람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 강아지 불알에 커다란 혹이 자라 있어 걸음조차 불편하다. 수술을 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처롭다.

 

 

 

▼  가이드 판다, 오 선생님과 김 선생님 부부, 주인장 부부, 이 선생님. 찍사인 나는 없다.(사진은 다음날 이별하며 찍은 기념 사진)

 

 

 

이제 프로그램이 따로 없다. 지금부터 하룻밤 주어진 자유시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고 일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게도 없는 마을이니 어두워지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그래서 어둡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주변을 바쁘게 돌아보기로 한다. 오, 이 선생님은 숙소에 남아 쉬겠다고 하여 김선생님과 함께 동네로 나선다.

 

 

마침 숙소 건너편 안쪽 골짜기로 길이 나 있고 언덕 너머로 민가의 지붕이 보인다. 궁금하기도 하여 돌처럼 단단한 좁은 흙길을 따라  산책삼아 가 보기로 한다. 풀꽃이라도 있었으면 좋을텐데 건기라 언덕의 풀들은 저렇게 시들어 버렸다. 

 

 

 

언덕을 넘어서자 반갑게도 그림처럼 앉은 네 채의 민가가 나타난다. 방 안 부엌에는 요리를 하고 있는지 한 지붕 밑으로 파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우리의 옛 농가처럼 평화로운 정경이다.

 

 

 

 

목조 건물임에도 방 안에 부엌을 들이고 있는 게 신기한 일이다. 카렌족은 방바닥 한가운데 긴사각형 목재로 짜서 흙을 채우고 세 개의 돌을 얹어 냄비를 놓고 불을 피워서 음식을 만든다. 부엌 위에는 시렁을 매달아 곡식 등을 말린다. 수저나 국자, 컵 등 부엌 용품은 대나무로 만들고, '카우람'이라는 대나무통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위쪽의 집채 옆 풀밭에는 전통 복장인 사롱(sarong)을 두른 여인이 앉아서 피륙을 짜고 있다.

  

  

 

 

돼지 우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돼지가 먹는 죽통에 닭이 와서 머리를 맞대고 '빈대 붙기'도 한다.

 

 

 

 

다시 돌아서 능선으로 난 마을 길을 따라 걷는다. 마을 뒤 등성이에 있다는 초등학교부터 찾아보기로 하고 무작정 걷는데, 마을 지형도 모르면서 큰길만 믿고 따라가다보니 길은 숲속으로 접어든다.

 

 

▼ 마을 뒤 산길로 들어서며 내려다본 마을 집 풍경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벋은 아름드리 나무가 들어선 정글은 무섭다기보다는 아름답다. 숙소에 도착한 뒤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사이 누렁이가 우리를 따르고 있다. 길을 잃을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 부지런히 맴돌며 앞서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들이 열린다. 저녁햇살 눈부시게 비치는 훤한 들판을 만나 신이 났는지, 누렁이가 쏜살같이 저편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오기를 두어차례나 되풀이 한다. 기분이 몹시 좋은 듯하다.

 

벌판 들머리는 습지와 뻘밭이 펼쳐져 있고 에키노도루스 비슷한 택사과의 풀들이 하얀 꽃들을 피웠다.  

 

 

 

기분을 한껏 푼 누렁이는 논둑길 따라 조용히 앞장섰다. 집을 지나 들어선 들판 오른쪽으로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그 개울을 따라 계단식 논이 펼쳐지고 있다. 

 

원래 카렌족은 산에 불을 놓아 농사를 지었지만 태국 정부가 화전 금지령으로 이처럼 높은 산 골짜기에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 결과 화전을 따라 이동생활을 하던 삶이 정착 생활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흔히 보이는 작은 꽃, 꽃 모양으로 보아 현삼과의 풀로 보인다.

 

 

 

산 너머쪽으로도 민가가 드문드문 보인다. 원래 화전을 일구고 살아온 카렌족이라 하더니, 과연 비탈진 산언덕은 불태워진 흔적이 보인다. 불에 그슬린 나무들이 서 있고 불탄 나무들은 등걸이 되어 누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심어 자라고 있는 것은 콩인지 팥인지는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콩과 식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고보니 이 들판은 카렌족의 삶의 터전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전통적인 화전과  새롭게 시작된 벼농사(wet-rice)기 공존하는 현장이니까.

 

 

해는 서산 너머로 숨어들기 시작하고 특별히 더 봐야 할 것도 없어  발길을 돌린다.

 

다시 마을이 있던 능선길로 걷다가 집을 짓고 있는 마을 청년들을 만나 학교의 위치를 묻는다. 영어가 통할까 싶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서투르지만 통한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쿠얼리'라고 답한다. 동남아에서는 코리아보다는 쿠얼리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는다.

 

영어를 돼지 바바큐를 먹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또 직물 뜨게질하는 여인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여러 가지 직물들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자란 이곳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을까, 바비큐 파티에 살짝 마음이 동하지만  총무가 돈을 다 가지고 있으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만 안고 자리를 뜨고 만다.

 

 

학교는 능선 위쪽이 아니라  바로 너머에 있다. 숲속엔 넓은 동네 운동장이 있고 동네 청년들이 축구를 하고 논다. 누군가가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데 보이 우리 가이드 판다, 동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판다. 

 

 

 

초등학교 앞마당에선 또다른 청년들이 스펙타크로를 하고 있다.

 

 

 

어둠에 잠긴 학교, 아이들이 없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볼거리가 별로 없어 내일 아침 다시 찾기로 한다.

 

 

학교 옆 실습원인 듯 싶은 곳, 톰얌 냄새를 맡던 누렁이는 우리가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어두워지는 시간에 홀로 머나먼 산 아래 마을로 내려 간 것일까. 아니면 이 동네 어디에서 밤을 새고 있는 것일까. 텃세 부리는 이 동네 개들의 등쌀에 견딜 수 있을까 싶은데, 산길을 함께 하면서 정이 든 탓에 자꾸만 궁금해진다.

 

 

 

숙소에 돌아오니 어둠이 깃든다. 캄캄한 어둠이 온 골짜기를 다 덮을 때에야 판다가 밥과 함께 야채 수프와 카레를 각각 한 냄비씩 준비해 왔다.

 

판다, 아까 올 때 저녁식사 스파이더 수프로 해 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어? 스파이더 수프 아님 안 먹어! 판다는 웃고 만다. 야외식탁에 촛불을 켜 놓고 보니 어둠이 더욱 실감된다. 카레는 맛이 낯설어 좀 거북했지만 야채 수프는 꽤 맛있다. 이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이 선생님은 라면을 끓인다.

 

 

어둠과 함께 공기가 서늘해지며 으스스해진다. 판다는 언제 사라졌는지... 아마도 아랫마을로 사라진 듯하다.

 

촛불을 챙겨 들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니 오 선생님이 오늘밤을 위해 그 동안 아껴 두었던 소주를 꺼낸다. 수만 리 타향 닟선 정글 고산 어둠 속에서 라면 국물에 마시는 소주 맛을 상상해 보라. 네 홉짜리 소주는 금방 비어 버린다. 술이 턱 없이 모자라 이 집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었다던 맥주를 가지러 간다. 그런데 웬걸, 박스 위에 달아 놓은 판때기에 '판다 - 맥주 2'이라고 적어 놓았다. 세 캔 남아 있던 맥주를 판다가 둘 마셔 버리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두 개의 촛불도 다 타 가고 술도 떨어지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네 사람이 할 게 있어야지. 결국 침구를 깔고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나무 마루 위에 가려 있는 침구는 꼭 야전 막사 같다. 담요 한 장에 얇은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한밤중을 지나면서 기온이 더욱 떨어져 서늘한 기운이 파고들어 잠이 깬다. 갑자기 요의가 느껴진다. 화장실에 가고픈데 칠흑같은 방안에서 나무로 만든 출입문의 위치를 알 수 없다. 플래시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지만 깨우기가 뭣하여 무조건 한쪽 으로 조심조심 걸으니 벽과 부딪치고 벽의 한쪽을 더듬어서 겨우 문을 찾는다. 계단에 웅크리고 자는 검둥이는 인기척에도 꼼짝 않고 잔다.

 

깜깜한 하늘엔 별이 총총. 낯선 남국의 별자리들을 경이롭게 한동안 쳐다본다.

 

밤새 닭은 왜 그리 울어대는지... 잠은 자꾸만 깨고 아득한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