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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라오스, 베트남

라오스 여행 (4) 왕위앙(방비엥) 푸캄 동굴 가는 길, 아이들 뛰노는 정겨운 시골

by 모산재 2010. 2. 24.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오늘은 왕위앙(방비엥)을 향해 위앙짠을 떠나는 날이다. 일어나자마자 어제처럼 게스트하우스에서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하고 선들선들한 아침 공기 속에 산책을 나선다. 김선생님도 함께 한다. 큰길을 건너 걷다가 시골길 같은 뒷골목을 발견하고 들어서 본다. 강아지가 촐랑대며 지나가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민가의 여인들도 만나고, 어제 보지 못했던 색다른 꽃들도 여럿 보이고... 슬슬 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괘 괜찮다.

 

생각해보면 유명한 유적지도 좋지만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더 재미있고 즐겁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보다는 원래 그곳에 있었던 자연의 모습이 좋다. 그냥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집들, 산과 들과 물, 풀꽃과 나무들... 이런 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냥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숙소로 픽업하러 온다고 해서 배낭을 꾸려 놓고 기다리다가 무료하여 다시 골목 이곳 저곳을 바쟁이며 풀꽃나무도 살펴보고 사원 안을 기웃거려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한다. 

 

 

 

숙소 가까운 왓 옹뜨, 승려들이 뜰에 늘어서 있다.아침 탁발을 다녀온 걸음일까...

 

 

 

9시 30분에 썽테우가 왔다. 군용트럭처럼 양쪽 길다란 나무의자에는 우리와 함께 왕위앙으로 갈 사람들이 이미 가득 자리하고 있다가 우리를 위해 자리를 좁혀 앉는다. 경기장 앞 국립박물관 부근에 'VIP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 전세버스가 이곳에서 최고의 대중교통 차량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내 곳곳에서 여행객을 픽업해 오느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출발한 버스는 다시 한적한 외곽의 한 터미널(탈랏 사오 터미널인지 북부터미널인지...)로 이동한다. 자갈이 깔린 주차장은 우리의 60~70년대 시골 터미널 분위기, 한가롭다. 

 

버스 안은 모기 사육장일까 싶게 모기들이 윙윙대며 날아다닌다. 긴바지 긴팔옷을 입은 나야 별 상관 없지만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임자 만났다. 버스 출발 한 시간 동안은 날아드는 모기 소탕하느라 여기 저기 손바닥 부딪치는 소리가 어지럽다.  

 

 

왕위앙까지는 서너 시간 걸리는 길, 도중 작은 휴게소에서 한번 쉬었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줄 서서 볼 일 보는 시간, 나는휴게소 뒷편 조그만 연못 주변에서 풀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신경초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미모사가 마른 언덕에 지천으로 예쁜 분홍색 꽃들을 한창 피우고 있다.

 

 

 

연못 속에는 메꽃과로 보이는 덩굴풀이 수면을 따라 기며 꽃을 피웠다.

 

 

 

그리고 물가 언덕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 꽃, 무궁화를 축소한 듯한 모양이다. 지름 1cm 이내의 크기인 아주 작은 노란 꽃이 앙증스럽다. 라오스에서 여행 내내 자주 만난 꽃이다.

 

  

 

다시 차는 출발한다. 창밖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들판은 건기여서 그런지 아주 메말라 보인다. 보이는 개울이나 하천은 들판보다 한참 낮게 흐르고 있으니 들판은 아마도 천수답이 아닐가 싶다. 우기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를 가두어 농사를 지을 뿐, 비가 내리지 않은 이 계절에 들판은 우리의 겨울 들판보다도 훨씬 메말라 보인다. 따가운 볕살이니 물만 있다면 농사를 지어도 될 것이다.

 

 

산기슭을 넘고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멀리 그림 같은 검은 봉우리들이 나타난다. 갑자기 시멘트 공장이 나타나 푸른 하늘의 먹구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곳이 석회암 지대였지...

 

 

오후 2시 무렵에 왕위앙의 외곽 터미널에 도착한다. 예약된 숙소(그랜드뷰 GH)까지는 1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세 사람이 앞장 서 갈 때 나는 뒤쳐져 한눈 팔기에 여념이 없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무 줄기에 기생하고 있는 커다란 마른 잎에 시선을 빼앗긴다. 신기하다, 뭔지... 이것을 나중 푸캄 동굴 입구에서도 보았다.

 

 

 

이런저런 풀꽃들도 살펴보며 걷다가 초등학교를 만난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면서 저마다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정말이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지켜보는 내가 더 신나서 한참을 구경하다 앞에 가는 일행을 놓칠 뻔한다.

 

 

 

 

우리 숙소 그랜드뷰는 지금가지 만난 숙소 중에서 단연 최고지 싶게 전망이 좋다. 바로 솜강(남 솜)가에 자리잡았는데 왕위앙의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바라봐도 되고 문밖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봐도 된다.

 

 

↓ 숙소에서 바라본 왕위앙의 그림 같은 풍경

 

 

 

 

 

금강산도 식후경이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여기저기 살피다 라오식 식당이라는 '노케오'를 선택한다. 길모퉁이에 자리잡은 식당은 실내가 다소 음침하지만 국수맛이 입맛에 그런대로 잘 맞다. 조그만 대바구니에 담아내온 찹쌀밥은 아주 쫄깃하고 맛있다.

 

거기에 매콤한 파파야 샐러드를 곁들인다. 이 파파야 샐러드를 땀막훙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이 김치를 먹듯이 이곳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라고 한다. 파파야 채를 쳐서 젓갈, 땅콩, 고추 등을 넣어 절구에 찧어 만드는데 매운 맛이 포인트인 듯하다.

 

 

↓ 먼저 시킨 파파야 샐러드를 거의 다 먹고 찍어서 좀 이상하다.

 

 

 

폰트래블에 들러 내일 투어를 확인한 다음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 푸캄 동굴 트레킹에 나선다. 오후 3시가 넘었다. 트레킹의 시작은 메콩강의 지류, 솜강을 가로지는  대나무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다. 자전거 포함 6,000낍의 통행세를 내고 강을 건넌다. 똑 같은 통행세를 돌아올 때에도 물어야 한단다.

 

↓ 대나무 다리 위에서 본 솜강. 맞은편 까만 창이 보이는 건물이 우리 숙소 그랜드뷰 GH이다.

 

 

 

강 건너편에도 마을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소 네 마리가 저들끼리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오토바이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여행객들이 줄을 잇지만 별무관심 제 갈길을 갈 뿐이다.

 

 

 

 

푸캄 동굴 가는 길은 내가 중학교 다니던 길을 연상시킨다.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라서 길은 고르지 않고 먼지가 풀썩이고 신작로 주변에 논이 넓게 펼쳐진다. 동굴까지 6km라는데 내가다닌 중학교도 6km 왕복 12km였지.

 

어느 순간 갑자기 어린 시절의 내 고향으로 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시간이 사라져 버린 들판을 즐기기로 한다. 오후 반나절 중학교 통학하는 기분으로 즐기면 된다.

 

 

 

 

도로와 경작지 사이에는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 사이로 난 작은 틈으로 들어서 논바닥을 살펴본다. 마디꽃 같은 풀들이 마른 채 빼곡히 들어서 있고 풍선덩굴로 보이는 풀들은 파랗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가막사리를 연상시키는 노란 풀꽃도 습한 곳에 더러 피었다.

 

 

 

 

 

모녀가 집앞 축담에 앉아 있길래 뭐하나 싶었는데 머릿니 잡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곁에서 강아지가 우두커니 지켜보고 앉았다. 모른 체하고 지나려다가 대나무 울타리 사이로 장면을 잡아 보았다. 40~50년 전 우리 나라에서 흔하던 풍경 아닌가. 아직 이곳에선 강력 세제를 쓰지 않는 모양이다.

 

 

 

아,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하나 건너서자마자 멀리 넓은 들판이 열리면서 추억 속 내 고향마을이 불쑥 나타난다. 건너편 산그늘이 아직 다가서지 않은 논바닥은 자연 운동장이요 놀이터다. 동네 아이들은 개울가 울타리 곁에서 뛰어놀고 소떼들은 어슬렁거린다. 발가벗은 꼬맹이들도 보인다.

 

 

 

 

 

울타리를 넘어서 저 아이들 노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먼저 간 일행과 너무 멀어졌다. 돌아올 때 보자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정신없이 밟는다.

 

 

 

다시 맑은 개울 하나를 건넌다.

 

 

 

그리고 멀리 바위산 중턱에 까만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동굴 입구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은 동굴에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잔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기울고 있어 돌아갈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냥 돌아서기는 억울하다.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인데... 결국 나 혼자만 보고 가겠다 하여 다리 통행료와 함게 2만낍을 받아 1만 낍짜리 입장권을 끊는다. 근데 얼레, 안 쪽에서 플래시 대여료 1만 낍을 또 달란다. 현지 돈은 총무가 다 가지고 가 버렸는데... 결국 플래시는 포기하고 동굴을 오르기로 한다. 

 

 

 

동굴 앞 개울은 물놀이 장소이다. 물빛이 짙은 옥빛이어서 퍽 낭만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아름드리 나무에는 여러 개의 그네가 매어져 있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물 속으로 뛰어들며 논다. 물가 벤치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든 여인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동굴 오르는 길에는 화관이 길다란 붉은색 꽃이 피어 있어 눈길을 끈다.

 

찾아보니 인도 동남아 등지에 자생하는 허브식물이다. 영명으로 Limestone Ruellia라는 꽃. 학명은 Ruellia strepens.

 



동굴 안은 컴컴하여 플래시 없이는 이동하기 어려웠다. 동굴 초입의 부처 열반상을 구경한 다음 들어가는 길을 찾아보다 실패하고 그냥 발길을 돌린다.

 

 

 

↓ 열반상,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은 것과 사용한 것

 

 

 

 

동굴 밖으로 나오니 해는 이미 넘어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오토바이들이 먼지를 풀썩이며 바쁘게 지나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자니 힘이 든다. 오토바이를 빌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 늦은 시간 더러는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여행자도 보인다.

 

 

↓ 돌아본 풍경

 

 

그리고 아까 보았던, 아이들이 뛰노는 풍경을 다시 만난다. 해가 진 논에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뛰놀고 있다. 마을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푸른 내가 산발치를 휘감아 더욱 정겨운 풍경이 되었다.

 

 

 

논언덕으로 뛰어오르며 내달리고, 굴렁쇠를 굴리고, 도망가고 붙들고... 상대를 이겨야 하는 축구도 농구도 배드민턴도, '문명사회'에서 말하는 스포츠라는 게 없는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잃어 버리고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절실히도 느낀다.

 

 

  

 

 

이를 지켜 보고 있노라니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래도 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보고 싶어 산 밑 강가로 향하는 샛길로 들어섰는데, 보기와는 달리 너무 멀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내려 가다가 어둠은 짙어오고 다시 돌아올 오르막길이 막막하기만 하여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만다.  

 

 

돌아올 때에는 강변을 따라 이동하여 상류의 대나무 다리를 건넌다. 어둬워져서인지 통행료를 받는 사람이 없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숙소가 자리잡고 있건만, 지리가 익숙치 못한데다 도로에 콜타르를 까는 공사중이어서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하다 숙소로 찾아들었다.

 

 

 

다시 일행을 만나 저녁 식사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워낙 작은 동네라 돌아다닐 곳은 많지 않지만 추천 식당도 없는 처지여서 식당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대로로 나서자 악을 쓰는 함성들이 간헐적으로 울려 퍼진다. 썽테우를 타고 돌아와 수영복 차림으로 내리는 남녀 백인들이 내지르는 소리다. 처음에는 쟤들이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나중에야 알고 보니 솜강에서 점핑과 튜브타기를 끝내고 수영복 차림으로 썽테우를 타고 서늘해진 저녁 공기 속에 달려오니 추위를 이기지 못해 저런 것이었다.

 

 

 

거리의 레스토랑은 거의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담배를 피워 문 백인 남녀들이 앉은의자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는 풍경, 낮이건 밤이건 이런 모습은 백인들의 유원지 왕위앙의 한 전형이 된 듯하다. 레스또랑 곳곳에는 'happy menu라고 게 적혀 있는데 그게 아마도 마약인 듯하다. 정말 이곳의 백인들은 흐느적거린다.

 

 

 

우리가 선택한 식당은 사나사이(Sanasay), 각자 취향대로 음식을 시켜 먹는다. 나는 'Seafood fried spicy'를 고른다. 새우를 넣어서 볶은 밥으로 3,500낍이니 우리 돈으로는 500원짜리 쯤인데 꽤 먹을 만하다.

 

 

 

 

그리고 숙소 앞 가게에서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들어선다. 숙소 앞마당에서 "사바이디!" 낭랑한 목소리의 라오스말이 들린다. 누굴까? 예쁜 여인이 아니라 잘 생긴 구관조이다. 그 얼굴은 나중 사진 찍은 날 일기에 보여 주기로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