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라오스 여행 (3) 위앙짠(비엔티안) 탓 루앙 돌아보고 열대 과일 맛보기

모산재 2010. 2. 21. 18:44

 

2010. 01. 13. 오후

 

방콕과는 달리 아침에는 선들선들 서늘하게조차 느껴지던  날씨가 한낮이 되면서 뜨거운 열대를 회복한다. 

 

내일 왕위앙(방비앙)으로 떠나는 차편과 시간을 확인한 다음 우리는 멀리 있는 유적지 탓 루앙을 가기 위해 미리 불러 놓은 툭툭이에 오른다. 탓 루앙 관람 시간 1시간 기다려 주고 숙소까지 왕복하는 데 6만 낍, 우리 돈으로 7,000 원 정도이다.

 

 

오전 내내 걸어 다니다 차량을 타고 달리니 상쾌하고 신난다. 개선문을 지나 동북쪽으로 2km  채 못 달려서 넓게 펼쳐진 광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황금색 탑, 탓 루앙(That Luang)이 나타난다.

 

'황금 사원'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광장을 건너 들어서는 문도 황금빛이요, 솟아 있는 탑도 황금색, 푸른 하늘 아래 사원은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탑 앞쪽에는 탓 루앙을 세운 세타티랏왕의 동상을 만난다. 첫인상은 위엄으로 가득찬 왕이라기보다는 카우보이 같기도 하고 목동 같기도 하고 그도 아니라면 코끼리 머리에 앉은 조련사일까 싶게 낭만적인 포즈... 국가의 권능과 신성을 상징하는 저 뒷편의 황금탑과는 안 어울린다 싶으면서도 라오스 불교의 정신에 어쩌면 더 잘 맞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위앙짠과 루앙프라방의 주요 불교 유적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세타티랏왕은 라오스 역사에서 위대한 군주인 듯하다. 16세기 중엽 치앙마이의 란나왕조의 왕으로 추대되어 갔다가 다시 루앙프라방으로 돌아와 라오스의 왕이 되었고 이 때 가져온 에메랄드 불상(프라께우, 파께우)을 안치하기 위해 호 파께우 사원을 지었던 이가 바로 세타티랏왕이다. 

 

'위대한 불탑(Great Stupa)'이란 뜻을 가진 탓 루앙은 라오스 최고의 불교 사원이자 라오스의 상징이라 일컬어진다. 45m 높이의 라오스 양식의 웅장한 이 탑은 16세기 중엽 세타티랏 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나, 1828년에 시암(태국)군에 의하여 소실되었다가 1935년에 복원된 것이다. 

 

 

 

 

웅장하지만 단순하고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라오스 양식의 이 탑은 태국이나 캄보디아의 사원에서 보는 탑의 형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탓 루앙의 중앙 사리탑은 연꽃 봉오리를, 이를 둘러싼 30개의 작은 탑(스투파)은 부처의 완성된 모습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탑은 석가모니의 갈비뼈와 머리카락 사리를 가져온 세 스님이 조성한 작은 사리탑으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화려한 사원의 금빛 탑이 정말로 황금으로 입혀진 것이 아닐까 싶지만 기단부와 가운데 회랑까지는 페인트로 도색되었다. 연꽃 벽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 칠이 벗겨져 콘크리트 시멘트가 드러난 모습을 보면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중앙 사리탑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탑은 황금을 입힌 것일까...?

 

 

  

탑의 맨 아래 기단 동서남북 각 면에는 공양을 할 수 있는 작은 전각, '호 와이(Ho Vay)'를 만들어 놓았다. ('호(Ho)'는 '사당'을 의미한다고 한다.) 특히 정면의 호 와이에는 향을 피우고 공양하며 배례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탑 정면의 호와이 

 

  

 

탑 뒷쪽의 호와이 

 

 

 

탑 뒷쪽에 세워진 그을음 묻은 이 기둥의 용도는 무엇일까.

 

 

 

탑의 서쪽 회랑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승려의 모습

 

 

 

매년 11월 이곳에서는 성대한 탓 루앙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일주일 간의 준비 끝에 축제 행렬이 왓 시무앙(Wat Si Muang)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공연을 펼치며 탓 루앙에 도착하면서 절정을 이루는데,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탑돌이를 하며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라오스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꼭 참가해야 한다는 탓 루앙 축제, 이제는 축제 기간이면 위앙짠 거리는 외국인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담장 너머, 정교한 금빛 장식으로 꾸며진 저 건물이 무엇일까. 탓 루앙 뜰마당을 한 바퀴 돌며 몇몇 풀꽃들을 살펴보다가 담장 너머 북쪽의 금빛 사원으로 향한다. 혹시 왓 루앙느아일까. 

 

 

 

 

 

 

처음 탓 루앙을 지었을 때는 동서남북에 별도의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으로 동서의 사원 둘은 불타서 사라지고 현재는 남북의 두 사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북쪽의 사원을 '왓 루앙느아(Wat Luang Nua)' 남쪽의 사원을 '왓 루앙따이(Wat Luang Tai)'라 부른다고 한다.

 

사원의 앞뜰 동쪽의 시원한 보리수 나무 그늘에는 황금색 부처상들이 고요히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나란히 앉아 있고, 정면 양쪽에는 입불상이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린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수인을 하고 섰다. 중생들이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베풀어 주겠다는 뜻을 가진 수인이다.  

 

 

  

 

 

사원 건물의 옆과 뒤의 뜰에는 우리의 부도탑과 비슷한 모양을 한 크고 작은 묘탑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묘탑에는 죽은 이의 유골을 담은 항아리도 보이고 사진도 붙여 놓았다. 불교의 나라답게 사원은 죽은이들의 안식처, 묘지로서의 구실도 한다. 죽음 이후 아미타불이 기다리는 서방정토, 극락을 믿는 이곳 사람들은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맞이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사원 앞뜰에 긴 머리채를 늘어뜨리고 있는 이 콘크리트 여인상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나중에야 어느 분의 귀뜸으로 석가모니의 전생인 선혜행자의 구도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거불인 연등불이 마을로 오셨을 때 지나실 길이 진창길이어서 입었던 사슴가죽 옷을 벗어 깔고 그도 부족하여 엎드려 머리를 풀어 진흙을 덮었다는... 선혜의 갸륵한 보리심과 지극한 공덕에 연등불은 석가모니 부처로 수기를 내렸다고 한다.

  

사원 한쪽 너른 뜰에서 여학생 몇몇이 배드민턴을 치고 노는 풍경도 보인다. 죽은자들의 세상인 사원, 그 뜰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소녀들... 라오스 사람들에게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원 주변에서 만난 여학생들 표정  

 

 

 

탓루앙 사원 관람을 끝내고 나온 우리는 광장 앞 도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툭툭이를 타고 숙소로 향하려다 맞은편 도로에서 열대과일을 팔고 있는 장사꾼을 발견하고 모두 내린다.

 

예전에는 지나치기만 하고 맛보지 못했던 과일들을 산다. 앞줄의 왼쪽에 길쭉한 콩모양의 과일이 막 카암, 그 뒤쪽 포도송이처럼 달린 것이 막 렁꾸엉, 앞줄 오른쪽 감자 모양으로 생긴 것이 라뭇, 그리고 뒷편 붉은색의 용과와 그 앞쪽의 가지색 과일 망고스틴... 

 

 

 

다시 툭툭이를 타고 달리면서 우리는 열대과일이 주는 미각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1. 막 카암은 열대지역에 흔한 콩과식물인 교목인 타마린드(Tamarind)를 가리킨다. 길다란 땅콩 모양의 갈색 열매 속에는 둥글고 까만 씨앗이 들어 있고 씨앗을 싸고 있는 좀 끈적한 고동색 과육은 곶감과 비슷한 맛이다.

 

2. 감자 모양을 한 둥근 과일, 라뭇 과육은 삭힌 감맛으로 떫은 맛이 느껴진다. 속엔 까만 씨앗이 들어 있다. 끈끈한 타닌 성분이 과실표면으로 배어나와서 마치 감자처럼 흙먼지가 들러붙어 있다.

 

3. 막렁꾸엉은 포도송이처럼 달주렁주렁 달린 회갈색 열매인데 껍질을 벗기면 5쪽 마늘처럼 생긴 하양 과육이 나타난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하나씩 보면 용안과 비슷한 모양이다. 맛은 시큼하면서도 즙이 많아 시원하다.(영명은 Langsat 또는 Longkong, 학명은 Lansium domesticum이다.)

 

4. 가장 맛있는 것은 가지 모양의 과일인 망고스틴이다. 두껍고 단단한 진홍색 껍질을 벗기면 하얀 다육질의 과육이 나타나는데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약간 떫은 맛이 있으면서도 즙이 많고 달다. 껍질이 두꺼워 열매 크기에 비해 먹을 게 적어 아쉽다. (학명은 Garcinia mangostana)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다 저녁을 먹으러 쌀국수집을 찾아 나섰다. 폰트래블에서 추천한 곳에는 쌀국수집이 둘 있었는데, 우리는 왼쪽 집으로 들어섰다. 탁한 국물에 소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쌀국수는 우리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고 맛도 실망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옆집 문밖 식탁에서 양인 처녀들이 먹고 있는 쌀국수는 뽀얀 것이 제대로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안 쪽에서 식사를 하다 지나가는 우리를 발견한 한국인 사내들이 "이 집 도가니 맛 죽여주니 들어오라."고 소리친다. 바로 오른쪽 이 집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식사 후 산보를 겸해서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혁명박물관과 문화회관이 마주보고 있는 거리를 지난다.

   

 

1925년 프랑스 총독 관저로 지어진 혁명박물관은 1985년 혁명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의 유물과 그림 및 사진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라오스 관광을 안내한 모 책에는 문화회관(Culture Hall)인 이 건물이 혁명박물관으로 잘못 소개되고 있다.

 

 

 

먹자골목의 풍경. 쌀국수 저녁 식사가 부실하여 이곳에서 도시락밥을 산다.

 

 

 

숙소로 돌아와 삐야 라오와 엊저녁 독참파에서 가져온 라오라오를 마시며 여행의 셋쨋날 밤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