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라오스, 베트남

태국 여행 (1) 방콕, 룸피니공원에서 시간 보내기

모산재 2010. 2. 8. 01:47

 

방학 전 라오스 여행을 함께 가자던 오선생님 부부의 권유에 냉담하기만 했던 내가 결국은 여권을 챙겨 들고 배낭을 꾸리고 말았다.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는 별로 맘이 끌리지 않고, 중국 황산이나 일본 시코쿠에 함께 갈 사람이 있으면 좋었지만, 내심은 가끔씩 산이나 다니며 올 겨울을 넘길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말 유례 없는 한파에 폭설까지 겹치며 유폐나 다름없는 한 주간의 '방콕' 생활에 우울증이 깊어지고, 한파가 오래 지속될 것을 알리는 일기예보까지 나오자 마음이 바뀌고 진짜 방콕행을 선택한 것이다. 제주도 여행을 떠난 이 선생님까지 연락하여 네 명의 단촐한 여행팀이 꾸려졌다.

 

 


2010. 01. 11. 월 / 방콕

 

준비 없이 '묻어서' 떠나는 내 오랜 여행 버릇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처음으로 가는 지역인데도 여정조차 모르고 출발... 방콕행 비행기 속에서 벼락치기 공부가 시작되었다. 여행 내내 다음날 일정 확인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공부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수완나품공항이라는 이름도 착륙할 때쯤에야 알았고, 라오스 입국시 바로 위앙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우던타이를 통해서 간다는 것은 우던타이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출발할 때에야 알았을 정도...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처음 본 방콕은 '하늘이 없다'는 느낌일 정도로 그냥 잿빛이다. 그냥 흐려서 그런가 했는데 이후 여행 내내 방콕의 하늘은 잿빛이었으니 세계 최고의 매연 도시라는 걸 나중에야 확인하게 되었다.

 

10 : 05 인천공항 타이항공(TG 659) 편으로 출발

13 : 50 쯤(태국시각) 쑤완나품공항 도착

미터택시를 타고 티볼리 호텔 도착

 

 

티볼리(Tivoli) 호텔에 방을 정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유혹을 참지 못하고 배낭에서 소주를 꺼내 매운쇠고기볶음 통조림으로 안주로 삼고 술잔을 나눈다. 

 


늦은 오후(5시경)에 호텔에서 내준 툭툭이를 타고 룸피니공원으로 향하였다. 자유시간인데 시간이 어중간하여 근처에 있는 공원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건기라고는 하지만 후텁지근한 방콕 시내, 마침 퇴근 시간이 가까운 탓인지 도로는 온갖 차량들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우습게도 '서울이 정말 쾌적한 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룸피니역 네거리, 복잡한 교통신호등에 따라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무섭게 달려드는 바람에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그렇게 들어선 룸피니공원.

다른 세 분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며 풍경을 즐기는 시간, 나는 바쁘고 바쁜 풀꽃나무 산책을 시작한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피해와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공원을 거니는 기분이 좀 괜찮은가.

 

(이 공원에서 만난 풀꽃나무에 대해선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소개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 풍경 위주로 다루기로 한다.)

 

열대의 공원 잔디가 우리와는 다른 특이한 종이라는 걸 확인한다. 아무래도 벼과라기보다는 사초과가 아닐까 싶은 모습이다. 물을 자주 뿌려 주는 듯 잔디밭은 흠뻑 젖어 축축하다.

 

 

 

 

룸피니공원에는 크게 보아 세 개의 호수가 있다. 첫날에 우리가 돌아본 호수는 룸피니역에서 가까운 남동쪽 호수 한 곳이다. 오리배가 떠 있는 호수 풍경이야 우리에게도 낯익은 것.

 

 

 

다른 나무의 옹이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나무. 우리 같으면 '연리지'라 하여 화제가 되겠지만 길거리 야자수들이나 사찰 정원들의 나무들에도 이런 모습들이 종종 보이는 걸 보면 열대지역에서는 흔한 모습인 듯하다.

 

 

 

나무 모양이나 진한 꽃향기가 쥐똥나무를 연상시키는 이 나무들이 태국과 라오스 여행 내내 사찰 경내, 민가의 정원 등등에서 가장 흔하게 만난 꽃이다.

 

 

 

 

중국과 태국의 우의를 기념하는 정자, 중태우의정(中泰友宜亭)

 

 

 

 

중태우의정 뒤쪽으로는 야외극장이 있다.

 

길가의 구석진 곳에는 녹색의 작은 꽃을 피운 풀들이 흔하게 자라고 있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 화려한 날개의 열대 나비 한 마리를 만난다.

 

 

 

다음의 호수와 가르는 공원 한가운뎃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에어로빅이 한창이다. 녹음기 음악소리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는데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핑크빛 스웨터를 입은 백인 청년이 가장 신났다.

 

 

 

 

어둠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하여 공원을 벗어나기로 한다. 호수의 다리를 건널 때에는 악어인가 싶은 파충류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며 유유히 헤엄친다. 다음날 확인해 보니 악어가 아니라 도마뱀인데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리나 비둘기들이 그런 것처럼 빈둥거리며 돌아다닌다. 

 

처음 들어왔던 길로 되짚어가도 좋을 걸, 다른 분이 굳이 북동쪽 샛문으로 나와 도롯길을 선택하는 바람에(공원 담장을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말이다.) 아주 독한 매연을 폐부 깊숙히 느끼며 방콕 거리 적응 훈련을 한다.

 

 

룸피니역 가까운 곳에 쑤안룸 야시장이 있다. 야시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태국왕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는데, 이 나라의 국왕에 대한 존경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몇 십미터에 하나씩... 생전의 김주석은 저리가라인 듯하다.  

 

 

 

그 안에 자리잡은 먹자광장으로 들어선다. 온갖 종류의 먹자 판매대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우리는 먼저 여러 종류의 열대 과일 세이크를 하나씩 시켜서 갈증을 달랜다.

 

어두운 조명 아래 여가수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선지 광장의 넓은 식탁은 빈 자리가 훨씬 많아 다소 썰렁한 느낌이다.

 

 

 

세계의 4대요리로 친다는 방콕의 음식을 제대로 맛보자고 무대와 맞은 편에 자리잡은 시푸드(Sea Food) 식당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주문한 요리는 방콕의 대표적 요리라는 똠얌꿍, 쏨탐, 새우튀김이다. 똠양꿍은 바닷가재에 똠얌이라는 향신채와 느타리버섯 등으로 조리한 음식이고, 솜땀은 게에다 가는콩나물, 깍지 있는 풋콩 등을 넣어 만든 맵고 시큼한 샐러드.

  

 

↓ 차례대로 똠얌꿍, 솜탐, 새우튀김

 

 

 

비싸기만 할 뿐 맛은 입에 맞지 않았다. 새우튀김만 불편없이 먹었을 뿐이다. 특히 똠얌꿍은 바닷가재만 하나씩 건져 먹었을 뿐 거의 건드리지 못했고, 향신채에 적응력이 있는 내가 버섯 건더기는 얼추 챙겨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야시장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야시장으로 들어서는 문은 마치 힌두사원을 들어서는 느낌이다.

 

 

 

길거리 레스토랑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넘실거리는데 백인들이 대부분이다.

 

  

 

 

어두운 거리, 커다란 가로수에 피어 있는 꽃에도 눈길이 간다.

 

 

 

야시장을 돌아본 뒤 길을 건너 다시 호텔로 돌아와 멸치와 고추장을 안주로 소주잔을 나누며 여행의 첫날밤을 보낸다.

 

 

 


2010. 01. 11. 화 / 방콕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맞이한 방콕의 아침은 건물들 위로 펼쳐지는 먹먹하고 흐릿한 잿빛,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방콕에는 하늘이 없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쌀죽과 야채로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한다.

 

13: 10 위앙짠(비엔티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11시 30분쯤에는 호텔을 출발해야 한다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쯤이다. 지도를 보면서 두싯공원이라도 다녀왓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출근 시간 방콕의 도로 사정으로는 절대 불가라 한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하는데, 지도를 펼치고 아무리 살펴봐도 걸어갈 만한 거리에는 갈 데가 없다.

 

결국은 3시간의 금쪽 같은 시간을 어제 갔던 룸피니공원에서 다시 보내기로 한다. 억울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렃지만 나야 취미 살려 풀꽃나무 살펴볼 시간 얻은 셈으로 치면 되니 그리 억울할 것 없지 않느냐.

 

 

흐리던 날씨가 어느새 쨍쨍 내리죄는 햇빛으로 환해졌다.

 

큰길에서 한참을 들어간 호텔로부터 좁은 길 따라 걸어나오니 출근차량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사람만 다녔으면 좋을 주택가 골목길은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인도가 거의 없는 1km쯤 되는 길을 걸어나오자니 아슬아슬하기만하다. 실제로 호텔로 들어올 때는 차와 부딪치기도 했다.

 

 

 

대로로 이어지는 길목 입구에 이르니 오토바이부대들이 진을 치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온갖 종류의 차량들이 매연을 맘껏 뿜으면서 달리는 방콕의 도로...

 

 

 


다시 룸피니역 네거리를 건너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룸피니 공원으로 들어선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동선을 선택하여 서북쪽 끝에 있는 두 호수까지 돌아보는 것으로 '보상' 받으면 된다.  

 


나는 해자처럼 길게 이어진 물가를 따라 풀꽃 관찰에 나서며 일행과 자꾸 멀어진다. 우리 땅에 없는 풀꽃들을 찾는 기쁨이 쏠쏠하다.



습한 그늘에서 가끔씩 보이는 아래의 예쁜 꽃 하나만 소개한다. 제주도에 자생하는 방울꽃 비슷하다. 나머지 풀꽃나무는 다음 글에서 선보일 것이다. 

 

 

 

아침 햇살을 쬐고 있는 새끼고양이 한 마리

 

 

 

엊저녁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볼 수 없었던 물왕도마뱀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벤치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녀석은 아주 가까이 다가서야만 슬슬 꼬리를 뺀다.

 

 

 

요 녀석은 무슨 새인지 꽤 자주 보이는 놈이다.

 

 

 

공원 곳곳에서 느린 동작으로 기를 가다듬으며 태극권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검무를 추는 두 여인의 모습도 보이고, 아래 사진에서처럼 민망한 자세로 요가를 즐기는 여인도 눈길을 끈다.

 

 

 

까마귀는 입에 뭔가를 물고서 열심히 작업 중이다.

 

 

 

호텔로 다시 돌아오는 시간, 네거리에서 신호동을 기다리다 팔랑나비 한 마리를 만나 반가워한다. 요놈 담으려고 정신 팔다가 길 건너는 데 애를 먹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쥐똥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나무. 공원이나 도롯가에 울타리용으로 많이 가꾸어져 있는데, 콩알만한 작은 흰 꽃이 피었다.

 

 

 

↓ 룸피니공원 안내도

 

  

 



11시 45분경 택시를 타고 위앙짠(비엔티엔)으로 가기 위해 돈무앙공항으로 달렸다. 그런데 공항 청사로 들어서자마자 뭔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다. 입구에 서 있던 날씬한 한 남자 직원이 무슨 비행기를 타느냐고 해서 TG 010이라고 하니 돈무앙에는 TG(타이항공)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여행사가 준 일정표를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고, 우리 일정을 챙겨 주는 김 선생님이 여행사가 무성의하게 최초에 고치지 않고 보내준 몇 년 전의 묵은 정보 자료에 기대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게으른 나는 일정표를 보지도 않았고 나중에 다시 보내준 자료를 꼼꼼히 공부했던 다른 두 분도 우리가 가야하는 공항이 쑤안나품 신공항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돈무앙공항과 쑤안나품공항은 동서로 정반대편에 있으니 아주 난감하게 되었다. 공항 직원으로 알았던 이 남자는 알고보니 택시서비스센터 직원이었는데, 끝까지 우리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바쁘게 오가며 챙겨주는 친절함을 보여줘 우리를 감동시켰다. 결국은 서울의 여행사로 전화를 하여(전화기들이 모두 작동하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18:10 비행기표로 바꾸는 데 성공하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직원의 고마운 마음에 우리는 900바트(약 3만 3천원) 짜리 택시를 타고 1시간 가까이 걸려 쑤안나품공항으로 행하였다. 그 시간 우리가 탔어야 할 비행기는 이륙하여 우던타이로 날아가고 있었으리라. 공항 청사 내의 식당 코너에서 점심으로 베트남식 야채 롤과 치킨, 소시지 등 여러 음식을 맛보며 소주잔을 돌리면서 4시간의 무료한 시간을 메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