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날, 토요일이다.
납매가 꽃을 피웠다는 것을 이미 보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오늘 찾기로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날씨가 흐릿한 것이 개운치 못한 느낌인데, 일과를 마치고 수목원에 도착하고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하늘은 컴컴하고 바람조차 어지러이 부는데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우수수 나뭇잎들을 흩뿌리기 시작한다.
바쁜 마음에 다른 곳을 돌아볼 생각을 못하고 바로 납매가 있는 곳을 향한다. 어허라, 뺨이 선뜻 차가운 기운이 스친다 싶더니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고개를 향해 바쁘게 걷는데 숲그늘 쪽에 스치는 꽃 한 송이, 생각하지도 못한 차나무 꽃을 만난다. 갈래진 암술 하나가 노란 꽃밥을 단 수많은 수술에 둘러싸인 하얀 차나무 꽃. 빗방울 떨어지는 캄캄한 숲그늘에서 이 녀석을 담느라고 시간을 꽤 흘려 보낸다.
그리고 곧장 납매가 있는 곳으로 도착하니 아뿔사, 꽃이 다 시들어 버린 모습 아닌가. 실망스런 마음으로 뒤쪽에 있는 나무로 가 보았더니 몇 송이가 그런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비는 제법 젖을 만큼 내리기 시작하여 힘들게 사진을 담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서 꽃이 있음을 알고서 탄성을 지른다.
그런데 뒤쪽에 아직도 싱싱한 꽃이 만발한 납매 어린 나무를 한참 뒤에야 발견하고 실소한다. 그렇지만 빗방울이 더욱 굵어져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틀려 버렸다.
허겁지겁 납매 꽃 사진 몇 장을 더 담은 다음에 결국은 돌아서기로 한다.
지나오는 길에 흰작살나무에 흔적처럼 남은 흰 열매를 담아 보았다. 참~.
아쉬운 마음에 옆에 있는 구슬댕댕이로 보이는 말라빠진 열매에도 열없이 셔터를 눌렀다.
컴컴한 그늘만 아니었더라면 꽤 아름다웠을 까마귀밥여름나무 붉은 열매도 아쉬운 마음으로 담는다.
연구동 뜰에 심어 놓은 백리향이 몇 송이 꽃들을 피우고 있는 것을 우산을 쓴 채 쭈그리고 앉아서 담아 보았다.
털머위꽃이 때맞춰 활짝 피었지만 후두둑 떨어지는 비 때문에 몹시 원망스럽기만 하다.
잔디밭 꽃돌 바위에 기대어 꽃을 피운 사데풀을 담는다. 이 녀석 찍는다고 잔디밭을 좀 밟았더니 아르바이트 하는 아가씨가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지켜야 할 곳도 아니건마는...
땅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이것은 무슨 열매인가. 송진 냄새가 진하게 나고 끈적끈적한 진이 묻어나며 쪼개지는 둥근 열매. 낙우송 열매가 아닐까 싶은데, 확인을 하지 못하고 비에 쫓겨 바쁘게 수목원을 벗어난다.
수목원의 길이란 길은 갑자기 몰아치는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울긋불긋 단풍든 잎들로 뒤덮여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낭만 넘치는 풍경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허탈하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역 가까운 어느 순대국집에서 젖은 배낭을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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