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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 일기

지리산의 가을 (1) / 물꽈리아재비 꽃무릇 까치고들빼기의 꽃, 배풍등 비목나무 회잎나무의 열매

by 모산재 2009. 11. 2.

추석 다음날 아침 일찍 고향을 떠난다. 두 밤은 함께 했지만 추석날 하루만 온전히 쇠고 노모를 두고 떠나니 맘이 짠하다. 다리께에 나와 자가용으로 한꺼번에 뿔뿔히 떠나는 아들 손자 며느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서 있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두어번 흔들고는 고개를 돌리고 만다.

 

마침 추석을 끼고 재량 휴일이 있어 지리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은 터라 진주로 향한다. 거기서 지리산 가는 시외버스를 탈 요량으로...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몸이 별로인데, 몇 번이고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밀어부치기로 마음 먹는다. 중산리나 백무동 쪽으로 직행하는 버스가 없어 함양으로 갔다가 백무동에 도착하니 벌써 한 시가 넘어 버렸다. 

 

산을 오르기 전 점심부터 먹자고 주차장 가까운 곳의 식당에 들어가서 된장찌개를 시킨다. 그런데 10여 분이나 지나서야 주인 할머니는 뭘 시켰느냐고 묻는다. 어이없어 등산로 입구 쪽으로 올라와 다른 식당을 찾았더니 문이 닫혀 있다. 다시 되내려가서 다른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시켜 먹고서 다시 산을 오른다.

 

등산로를 들어선 지 5분쯤 지났을까, 핸드폰을 찾는데 주머니가 허전하다. 어디서 두고 온 것인지... 지나가던 등산객의 전화기를 빌려서야 버스에서 두고왔음을 확인하고 헐레벌떡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가 떠나가기 직전 버스 기사를 만나 전화기를 찾는다.

 

심해진 감기에 몸과 한께 정신도 몽롱해지다보니 이렇게 일이 꼬여 버린다. 산을 오르기 전에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며 힘을 소진하다 보니 맥이 쏙 빠진다. 여섯 시면 해가 떨어질 터인데 벌써 두 시가 훌쩍 넘어버려 세석까지 가야 할 길이 빠듯한데, 마음은 바쁘고 몸은 엉망이고...

 

등산로에 들어서기 전 길가 커다란 바위 밑에 꽃을 피우고 있는 물꽈리아재비를 만난다. 어찌된 일인지 이 한 개체밖에 보이지 않는데, 산행 내내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일부러 조성한 것인지 꽃무릇(석산)이 군데군데 붉은 꽃들을 피우고 있어서 뜻밖의 즐거움을 누린다.

 

 

 

 

천남성은 벌써 붉은 열매를 달았는데, 점박이천남성과는 다소 다른 모습 아닌가 싶은데, 어찌 보면 서울 주변에 자생한다는 눌맥이천남성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호골무꽃은 열매를 달고서 이제 마지막 생기를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첫나들이폭포를 지날 무렵부터 계곡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골짜기 입구 낮은지대라 아직은 단풍이 뚜렷하지 않은 모습이다.

 

 

 

갈라진 잎축에 날개가 없고 꽃잎이 다섯 개로 균일한 모습이 까치고들빼기임이 분명한 녀석들이 양지바른 개울 바위틈에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그늘진 등산로에서는 꽃이 거의 져 버린 모습이엇는데...

 

 

 

 

지리산에서 발견된다는 지리고들빼기는 보이지 않고 길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조리 까치고들빼기이다. 어떤 이는 까치고들빼기만 있을 뿐 지리고들빼기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데, 잎축에 날개의 유무라는 것이 그리 유의미한 형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껏 여물고 무거워진 가을골짜기 물의 고요가 아름다워 한 컷 담아 보았다. 

 

 

 

지난 6월에 보았던 좁은잎배풍등은 잔가지를 더 많이 쳐서 아주 덤불 같은 모습이 되어 있다. 꽃이나 열매가 있을 것 같아 살짝 들쳐 보니 보석보다 아름다운 붉은 열매들이 조랑조랑 달려 숨어 있다.

 

 

 

 

다시 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본 계곡물, 지난번에도 담았던 풍경을 또 담지 않을 수 없으니...

 

 

 

 

비목나무도 붉은 열매들을 달았다.

 

 

 

갑자기 개울 쪽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녀석이 있어서 보니 물까마귀지 싶다.

 

물 속에 부리를 박다가 잠시 자맥질도 하고 빠르게 상류를 향해 이동한다. 카메라를 들이대 보지만 멀기도 하고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어두운 바위쪽이기도 해 잘 잡히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잡힌 것이 다행이다. 

 

 

 

 

추석 뒷날인 탓인지 산에서 내려오는 이는 가끔씩 보이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꽃지머리를 한 한국인 사내와 팀을 이룬 몇 명의 외국인(백인)들을 중간에 만난 것을 빼고는...  가내소폭포를 구경하러 오르는 모양인데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한다. 가내소폭포를 일러준 뒤부터 세석까지는 줄곧 혼자만의 외로운 산행이 된다.

 

등산로 아래 숲에 둘러싸여 있는 가내소폭포는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폭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난 까치고들빼기는 암벽의 틈에 뿌리를 내리고 시퍼런 계곡물을 배경으로 샛노란 꽃을 피웠다.

 

 

 

한 시간 이상을 오른 계곡에서부터는 단풍이 제법이다.

 

 

 

계곡 가에는 회잎나무가 낚시에 걸린 금붕어마냥 예쁜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5층폭포는 수량이 줄어 쓸쓸한 가을 분위기가 더욱 어울리는 풍경이 되었다.

 

 

 

콩알보다 작은 이 노란 버섯은 뭘까. 어두운 숲속이어서 촛점이 그만... 

 

 

 

다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멀리 보이는 산목련 열매를 줌인하며 담아보다가 건넌 곳에서 고동색의 버섯무리들을 만난다. 이 메마른 계절에도 자라는 이 녀석은 누구인가. (정답은 꽈리비늘버섯...)

 

 

 

그리고 계곡에서 썩고 말라가는 나무에서 자라는 구름버섯(운지버섯) 닮은 이 녀석은 또 누구...? (아마도 답은 갈색꽃구름버섯...)

 

 

 

텅비어 버린 듯 휑한 가을 골짜기를 한동안 홀로 걷고 있으니 피로가 더 빨리 오는 듯하다. 마침 백무동에서 사과 두 알을 구해오지 않았더라면 많이 힘들 뻔하였다.

 

맑은 물이 내려다 보이는 계곡의 바위에 앉아서 한 알은 내일 먹기로 하고 한 알을 꼭지만 남기고 깨끗이 먹어치우며 잠시 기력을 회복한다.

 

 

 

감기에 사과가 좋지 않다더니 맛만 좋고 힘도 난다. 몇 알만 더 사올 걸... 으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