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늦여름 악견산의 대팻집나무, 사람주나무, 흰가시광대버섯, 병아리난초, 가는명아주, 진홍색간버섯

모산재 2009. 9. 17. 21:45

아버지 기일이라 고향을 찾는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저녁에 대처에 흩어져 사는 삼촌들과 사촌 형제들 모두 와서 함께 제사에 참례한다.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족제도의 전통, 그 따스함과 무거움을 다시 느끼게 된다.

 

 

자고 일어난 아침 아버지 산소를 둘러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집 앞 무궁화나무를 타고서 까치콩(제비콩, 편두)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까치콩의 잎이 붉은 빛이 강하게 돈 것만 보았는데 이것은 그냥 콩잎 마냥 파랗다.

 

 

 

 

길가 습한 곳에는 참새피가 노란 꽃밥을 한참 빼물고 귀여움울 뽐내고 있어, 꽤 여러 번 증명 사진을 찍어 주었다. 큰참새피, 물참새피, 털물참새피라는 게 따로 있다고 알고 있지만 아직 이들을 접하지 못해 구별할 줄 모른다. 

 

 

 

볏집을 썩힌 두엄 자리에서 이런 버섯이 돋아 나고 있다. 먹물버섯 종류인 듯하다고 하는 분이 있는데, 정확한 이름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나중에 소녀먹물버섯이라는 의견을 주신 분이 있다.)

 

 

 

동산에 얼굴을 내민 햇살을 받아 며느리밑씻개풀이 꽃잎을 열었다. 고마리가 그러하듯, 마디풀과의 꽃은 작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여쁘다.

 

 

 

여름 더위가 계속되고 비도 자주 온 탓에 어머니가 종종 풀을 매는 산소임에도 잡초로 온통 뒤덮혀 있다. 아침 햇살인데도 뜨겁기만 하여 군데군데 기어오르는 한삼 덩굴을 걷어내고 강아지풀이나 미국개기장 등 웃자란 풀들을 낫으로 대강 쳐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침 주말로 이어지는 시간이라 사촌들과 먼 산에 있는 할머니 산소 벌초를 가기로 약속되어 있다. 할머니 산소가 멀리 악견산 정상 가까운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아 날짜를 정해 놓은 것인데, 아버지 산소 벌초를 위해 동생들이 함께 가 주었으면 했지만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조카를 데리고 사촌 둘과 함께 악견산으로 가기로 한다. 나로서는 산행을 즐기는 것이니 그리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동생들이 아버지 산소 벌초를 해 줄 것인지가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는 예전에 오르던 대밭골로 오르지 않고 그 너머 용문쪽에서 오르는데, 새로운 등산로를 선택하는 것이 즐겁다.

 

멀리서 볼 때 검은 점이 있어 애기땅빈대인가 했는데 혹시나 하고 다가서보니 그냥 땅빈대이다. 요즘 들어서 지천인 귀화종 애기땅빈대와 달리 만나기 쉽지 않은 풀이다.

 

 

 

대밭골쪽에서 오를 때에는 본 기억이 없는 구실사리가 초입부터 지천으로 보인다. 그리 습한 기운이 없는 산인데, 참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바로 앞을 흐르는 강에 합천댐이 생기고 나서 번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수까치깨가 군데군데 꽃을 피우고 있다.

 

 

 

양지바른 무덤가 풀밭에 잔대꽃이 층층으로 피었다. 층층잔대인지 그냥 잔대인지 길쭉한 꽃모양이 애매한데, 층층잔대는 꽃부리의 끝이 약간 오므라든다. 그냥 잔대로 봐야 하나...

 

 

 

 

가끔씩 보이는 이끼가 눈길을 끌어 담아 보았다. 이름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붉은 열매가 떨어져 있어 눈을 들어 살펴봤더니 대팻집나무 아니냐.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나무가 해마다 한번씩 찾던 산에서 처음 발견하다니... 오르는 내내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단 풍경을 즐겼으니, 이 산이야말로 대팻집나무 자생군락지라고 해도 되겠다. 

 

  

 

 

7부 능선쯤 올랐을까, 싶은 곳에서 바라본 합천호, 얼마되지 않은 민가와 논밭을 거느리고 흐르던 황강이 산머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근년에는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을 드러낸다 싶었는데, 올해 들어서 잦은 비로 다시 물이 가득찼다.

 

 

 

숲그늘은 구실사리로 엮은 방석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악견산은 구실사리가 덮고 있는 땅에 붉은 열매를 단 대팻집나무로 울창한 풍경을 이룬 산이지 싶다.

 

 

 

햇살 쏟아지는 바위 능선에서 주렁주렁 새빨간 열매를 단 대팻집나무를 한번 더 담아 본다.

 

 

   

 

 

악견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열매를 주렁주렁 단 쇠물푸레나무가 자라는 암릉에서 잠시 쉬며 다시 합천호를 굽어 본다. 햇살은 따갑고 땀은 비오듯해도 시원스런 조망에 가슴속도 한결 후련하고 상쾌해진다.

 

 

 

 

마른 길가에 자라는 이 풀은 사초과인지 골풀과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10cm쯤 될까말까 한 작은 키에 종자가 두 개씩 달린 듯한 모습인데, 무엇인지... (알고 보니 사초과인 모기골인 듯하다. 이삭이 두 개씩 달린 듯하여 혼동하였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바위지대 땅바닥에서 떨어진 때죽나무 열매와 함께 낯익은 열매가 보여서 살펴보니 사람주나무 열매이다. 이곳이 사람주나무 자생지라는 것도 오늘 처음으로 확인한다.

 

  

 

 

 

정상 가까운  메마른 지대에 있는 할머니 산소는 잡초들의 침범이 별로 없어 벌초거리는 별로 없다. 꽃이 별로 없는 등산로라 벌초를 하고 내려오는 길은 잠시 버섯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건조한 날씨가 시작된 탓인지 버섯들은 대부분 마른 상태이지만 띄엉띄엄 고개를 내밀고 자라는 버섯이 보인다.

 

 

소나무 뿌리들이 엉겨 있는 솔숲에서 자라는 버섯.

 

 

 

등산로 곁, 베어 놓은 마른 소나무 둥치에서 자라는 이 버섯은 또 무얼까. 간버섯 같기도 하고...

 

 

 

그리고 가시 같은 돌기 가득한 갓과 우람한 몸매를 자랑하는 흰가시광대버섯도 만난다. 그런데 흰 가시광대버섯을 담다가 뜻밖에 바로 곁에 선 작은 난초과의 식물을 만난다. 

 

 

 

꽃이 지고 난 뒤의 모습이라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은데, 나중에야 병아리난초가 생각났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가는명아주(버들명아주)를 만난다. 내륙지방인 이곳에서 자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등산로 입구에 있는 관음전, 예전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절집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조계종 사찰로 새단장한 모습이다.

 

 

 

벽에 그려진 팔상도 그림 솜씨가 괜찮은데,육감적으로 그려진 여인의 모습들을 몇 장면 담아 보았다.

 

 

 

 

 

길가엔 매듭풀 꽃이 피고 있었지만 햇살이 강렬해 꽃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베어 놓은 마른 나무에 아마도 진홍색간버섯이 아닐까 싶은 버섯이 가득 자라고 있다.

 

 

 

600m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산이지만 산을 타는 것이 부담스러운 따가운 날씨였다. 꽃이랄 게 별로 없는 메마른 이 산에 구실사리와 대팻집나무, 사람주나무가 가득 자생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것으로도 산행의 보람은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