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벼과의 꽃들(쥐꼬리새풀,새,억새,쇠치기풀,바랭이,수크령), 물질경이, 벗풀, 며느리밑씻개

모산재 2009. 9. 17. 23:05

 

8월 23일 일요일 오전

  

아직 햇살이 따가운 고향의 들녁엔 벼과의 풀들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화려한 꽃잎이 없어 사람들로부터도 곤충들로부터도 눈길 받는 법이 없이 볼품없는 꽃, 그래서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꽃잎이 없어도 암술과 꽃밥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된다.

 

  

개울가를 따라 난 길에서 메마른 땅에 잘 자라는 쥐꼬리새풀은 이삭이 쥐꼬리처럼 기다란데, 붉은 빛이 도는 꽃밥을 잔뜩 달고 있다.

 

  

 

  

집 앞 습한 길가엔 뻣뻣한 쇠치기풀도 듬성하게 하얀 암술과 갈색 꽃밥을 달았다.

 

   

  

  

지난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던 녀석이 노박덩굴인지 아니면 푼지나무인지 확인차 찾은 덩굴줄기를 확인하본다. 줄기에는 돌기가 나 있는데, 푼지나무의 가시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새도 붉은 갈색의 암술과 꽃밥을 달고 있다.

 

  

  

 

  

개울 언덕 길가를 따라서 총채처럼 꽃이삭을 밀어 올린 억새도 검붉은 암술과 붉은갈색의 꽃밥을 달았다.

 

 

  

 

  

바랭이의 꽃밥을 보기는 처음이다.

    

 

 

  

이 녀석도 바랭이인데, 아직 이삭을 다 밀어올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느다란 수술대 끝에 희미한 꽃밥을 달았다.

 

 

  

곰밭골로 접어드는 논가의 작은 웅덩이에는 개구리밥이 가득하다. 생이가래과의 물개구리밥과는 다른 종이다. 꽃이 어떻게 필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7-8월에  하얀 꽃이 잎 뒷면에 간혹 핀다고 한다. 2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포 안에서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꽃을 본 이는 아마도 없는 것인지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꽃가루받이는 이미 끝났을 성 싶은 가래의 꽃이삭은 아직도 싱싱한 모습이다.

  

 

  

웅덩이 주변 풀섶엔 부추가 하얀 꽃을 피웠다.

 

 

  

그늘진 개울 언덕에서 뜻밖에 태극나방을 만난다. 날개에 선명한 태극무늬! 처음 만나는 녀석인데도 '태극나방'이란 말이 절로 나와 확인해 보니 과연 맞다. 

 

 

  

무덤이 있는 풀밭엔 수크령도 예쁜 갈색의 꽃밥을 달았다. 이삭의 아래쪽으로는 하얀 암술이 보인다.

 

 

 

  

같은 곳 언덕에 뭉쳐난 이 풀은 무엇이지... 이미 꽃이 진 모습으로 보인다. 

(전의식 선생님께서 댓글로 실새임을 일러 주셨다. 익히 아는 풀인데도 꽃이삭이 핀 모습이 아니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큰조롱은 열매가 제법 성숙해진 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며느리밑씻개풀의 작은 꽃,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싶게 앙증스럽고 환상적이다.

 

 

  

 

다시 돌아와 집 주변 논에서 만난 벗풀, 노란 꽃밥을 단 수꽃은 위에 달렸고 공모양의 파란 암술을 단 암꽃이 아래쪽에 달려 있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혹시나 싶어 여기저기 벼이삭이 피기 시작한 벼포기들을 제끼고 논 속을 들여다보는데, 과연 환하게 핀 연보라 물질경이 꽃을 만난다. 

 

 

 

 

어릴 적 시골에 묻혀 살면서도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던 풀꽃들, 그 생명들이 피워 올리는 향기를 이제 찾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좀더 많았으면 좋으련만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쫓기다보니 저 아름다운 자태를 느긋이 감상할 여유도 없다. 

 

허겁지겁 사진만 찍고서 차 떠난다고 빨리 오라고 소리치는 집을 향해 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