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백령도 (5) 사곶해안의 시베리아여뀌, 모래지치, 갯그령, 갯쇠보리, 우산잔디

모산재 2009. 8. 8. 12:13

 

백령도의 풀꽃나무 (5) / 사곶해안의 시베리아여뀌, 모래지치, 갯그령, 갯쇠보리, 우산잔디

2009. 07. 23. 목요일

 

 

오후도 반나절이 더 지나서야 공영버스는 사곶마을에 우리를 떨궈준다. 5분 좀 못되는 거리에 있는 해안가 솔숲을 지나면 사곶해안이다. 막연히 생각했던 사곶해안을 처음 들어서는 순간 아득하다는 느낌에 빠져든다. 나폴리와 더불어 세계에서 둘 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미세한 모래흙으로 단단히 다져진 해변은 기울기가 거의 없이 평탄하고 넓고 길다. 

 

 

백령도를 이루는 주 암석이 석영질 규암인데 오랜 세월 바닷물에 침식을 받아 쪼개지고 닳아서 형성된 고운 입자의 모래가 파도 에너지가 약한 오목한 해안을 따라 쌓여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썰물보다는 밀물이 보다 강해 모래가 계속적으로 운반되어 와 쌓이고 거센 주변 해류로 점토질 흙이 쌓일 수 없어 이런 대규모의 세립질 모래 해빈(바닷물에 의해 형성되고 바닷물이 닿는 해안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곶해빈, 해수욕장 입구에서 서쪽(백령대교) 방향

 

↓ 사곶해빈. 해수욕장 입구에서 동쪽 용기포 선착장 방향  

 

 

오늘이 음력 초이틀이니 지금 이 시간쯤이면 썰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안은 유난히 넓게 보인다. 썰물이 최대로 진행되었을 때 사곶해안은 폭 300m, 길이 4km의 거대한 천연활주로를 드러낸다고 한다.

 

아직은 본격 피서철이 아니어선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종종 승용차들이 금 재기하듯 한쪽 바퀴는 바닷물에 담그고 한쪽바퀴는 해안에 걸친 채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날씨로 해안 풍경도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는데, 아득한 해안을 따라 백령대교 방향을 향해 갯벌식물 탐사를 나선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아쉬운 것은 해안과 나란히 펼쳐지는 아름다운 송림 사이에 콘크리트 차단벽이 높게 세워진 것이다. 해안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풍경을 망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 차단벽이 밀물 에너지의 충격을 반사시켜 사곶해안이 쓸려나가게 만들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마디풀과 닮은 낯선 풀을 만나 잠시 혼돈에 빠진다. 

 

 

 

 

 

꽃은 마디풀 같은데 마디풀처럼 꽃이 잎겨드랑이에 피지 않고 줄기끝에 형성된 꽃이삭에 다닥다닥 꽃을 한껏 피우고 있다. 어찌보면 여뀌 종류 같기도 한데, 어째서 본 듯도 하면서 낯설기만 할까...

 

 

여뀌를 검색해도 답이 없고, 갯마디풀, 개마디풀, 이삭마디풀 등 마디풀이란 이름이 들어간 풀들을 다 검색해 보아도 맞아떨어지는 이미지가 없다. 특히 '이삭마디풀'이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몽금포, 군자 해안에 분포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어쩌면~' 싶었지만 이미지가 다른 것으로 실려 있다. 무엇일까...

 

 

(전의식 선생님께서 댓글로 시베리아여뀌임을 알려 주신다. 1998년 국립수목원 박수현 박사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보고한 종이라고 하는데, 백령도가 유일한 서식지라고 한다. 전의식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두무진에서 보았던 갯쇠보리가 이곳에서는 흔하게 분포하고 있다. 한창 꽃이 피고 있는 모습이다.

  

 

 

여러해살이 갯보리는 어째서 이삭이 모두 말라서 퇴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7~8월에 꽃이 피는 걸로 되어 있건만...

(나중 확인해 보니 갯보리가 아니라 갯그령이 맞는 듯하다. 갯보리는 2cm 정도 되는 긴 까락이 있는데, 이것은 그런 까락이 보이지 않는다. *갯그령의 이명으로 갯보리가 있는데 그만큼 갯그령과 갯보리가 닮았다.)

 

 

 

 

모래지치는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우산잔디로 봐야 할까. 해안이 아닌 곳에서 보았던 우산잔디에 비해 훨씬 억세고 꽃차례로 큼직한 느낌이다.

 

  

 

 

수송나물인지 솔장다리인지 늘 헷갈리는 풀을 만난다. 줄기가 바로 선 것이 아니었으니 수송나물로 볼까. 잎겨드랑이에 노랑에 가까운 녹색의 꽃이 불분명한 모습으로 핀 것이 보인다.  

 

 

 

인공 담수호인 백령호 제방으로 올라서는 곳에서 억센 줄기에 가지를 번 참골무꽃을 만난다. 이렇게 기골이 장대한 참골무꽃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콘크리트 옹벽 위의 뚝방 길을 올라서서 담수호로 향하는 길에 갯쇠보리 어린풀을 만난다.

 

 

 

예전에 백령도 남쪽 깊숙히 들어간 거대한 갯벌 만곡부는 담수호가 되었다. 91년부터 99년까지 8년간의 공사 끝에 거대한 담수호와 종경지가 조성되었다. 

 

담수호 동쪽 해안 가까운 매립지는 거대한 해바라기밭을 이루고 있다.

 

 

 

아득히 펼쳐진 담수호, 담수호 너머에는 백령도 제일의 경작지 논이 만들어졌다.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 산다는 백령도의 풍요를 상징하는 땅이다.

 

 

 

매립지에서 만나 벌노랑이

 

 

 

매립지에서 만난 술패랭이

 

 

 

매립지 뚝방 해송 나무 아래에 핀 원추리

 

 

 

매립지 뚝방에서 바라본 사곶해안 전경

 

 

 

방조제 바위 틈에 핀 모래지치

 

 

 

백령대교 근처에서 바라본 사곶해안

 

 

 

사전 정보 없이 만난 백령대교는 실망스럽다. '대교'라는 이름에 걸맞는 '볼거리'를 기대한 것이 민망할 지경이다. 너무 거창한 이름, 그냥 백령교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다리 길이가 겨우 9m라니 여느 시골의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 비교하기도 뭣한데 '대교'가 뭔가. 

 

 

 

다리 아래로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물고기들이 많은지 낚시꾼들이 보인다.

 

 

 

 

아직은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은 더 있어야 하지만 날씨가 흐려서 저녁이 다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콩돌해안까지는 가보기로 했으니 발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위에 보이는 해안을 돌아선 곳에 있는 콩돌해안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