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금정산 풍경과 여름 풀꽃들 (2)

모산재 2007. 9. 4. 21:52


금정산 풍경과 여름 풀꽃들 (2)

2007. 08. 16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서자마자

호랑나비 한 마리가 바위 위에 포즈를 취하고 사진 한방 부탁한다.

 

 

 

해발 801.5m인 고당봉 정상

 

 

 

지금은 고당봉(姑堂峰)이란 이름으로 정해졌지만, 고당봉은 이 이름 외에도 고암(姑岩), 고담봉(高潭峰), 고단봉(高壇峰), 고당봉(高堂峰), 고당봉(姑黨峰), 고당봉(高幢峰) 등으로 불려져 표석에 새기기 위한 바른 명칭 고증을 둘러 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토론과 검여러 논란 끝에 '고당봉(姑堂峰)'과 '고당봉(高幢峰)'의 두 설로 압축되었는데,

 

'고당봉(姑堂峰)'을 주장하는 견해는 우리 나라 모든 산에는 산신이 있는데 고려 때까지 내려오는 모든 산신은 여신이었으므로 금정산의 고당봉도 할미신으로 할미고(姑), 집 당(堂)을 써야 한다는 것.

 

'고당봉(高幢峰)'을 주장하는 견해는 금정산 8경에 '고당귀운(高幢歸雲)'이 있으며,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의상대사의 뜻에 따라 고당봉(高幢峰)으로 명명되었고 의상대사가 문무대왕과 함께 금샘이 있는 곳을 찾아가 7일 밤낮을 독경한 곳이 바로 금정산 고당봉으로 법의 당을 높이 세워 운집한 사부대중을 위해 일승법문을 강설한다는 뜻을 보더라도 '고당봉(高幢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당봉과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02년 발간된 '궤범어사서기궤유전' 산령축에 의하면, "지금부터 40년 전에 밀양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 하고 불가에 귀의하면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여생을 보내면서 불사로 사부대중들의 칭송이 대단했다. 어느날 스님께서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영신(姑母靈神)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으로 범어사를 지켜주겠다’고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고 전하고 있는데, 이에 큰스님이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1년에 두번의 제사를 지내니 아주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고당의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할미 당집이다. 이 할미 당집(고당)이 고당봉으로 굳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 끝에 결국 '고당봉(姑堂峰)'이라는 설이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고당봉에서 바라본 산성 남동쪽 풍경

 

 

 

 

서쪽으로 보이는 낙동강 주변 풍경

 

 

 

고당봉

 

 

 

범어사 방향으로 가는 능선

 

 

 

정상에서 내려가는 험한 하산길

 

유격훈련하듯 매듭에 발바닥을 밀착하여 줄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구실사리 자세히 들여다보기

 

 

 

 

내려가면서 돌아본 고당봉 바위봉우리

 

 

 

특이한 모습의 바위

 

 

 

올려다본 고당봉

 

 

 

금샘

 

금정산과 범어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곳으로,

바위 위에 확처럼 패여서 물이 고인 것이다.

 

 

 

금샘에는 범어사 창건과 관련된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문무왕은 재위 18년(678년) 의상대사와 함께 금정산 고당봉 금샘을 찾아온다. 범천에서 오색 구름을 타고 온 금빛 물고기가 노니는 곳에서 칠일 밤낮을 기도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같은 해 원효대사는 고당봉 미륵암에서 도술로 왜적들을 일거에 격퇴시킨 것으로 전해온다. 왕은 10만 왜병선을 물리친 것을 기뻐하여 고당봉 아래 범어사를 창건케 하였다.

 

 

?버섯

 

 

 

내려오는 길, 꽤 높은 곳인데도 곳곳에 습지가 발달되어 있다.

 

 

 

도깨비사초

 

 

 

민백미꽃일 듯...

 

 

 

물봉선

 

 

 

개수염

 

 

 

바늘골

 

 

 

 

방울고랭이

 

 

 

 

흰가시광대버섯

 

 

 

고동색우산버섯?

 

 

 

편하게 쉬엄쉬엄 산행을 하다보니

범어사로 내려왔을 때에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도 햇살이 살짝 걸려 있을 뿐

골짜기에 자라잡은 경내는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