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중국 운남 여행 (15) : 두 설산 사이 세계 최고 협곡 호도협 트레킹

모산재 2007. 2. 20. 16:19

 

중국 운남 여행 (15) 옥룡설산, 하바설산 사이로 흐르는 금사강, 세계 최고 협곡 호도협 트레킹 

2007. 01. 26

 

 

 

호도협(후타오샤) 트래킹을 떠나야 하는 날이다.

 

 

날이 채 밝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숙소 바로 앞의 골목에서 아침으로 죽을 먹는다. 식당 간판도 없는 민가로 보이는 집의 대문 앞에서. 병규씨가 따끈따끈한 달걀 하나씩을 더 준다. 겨울 옷을 입었는데도 으슬으슬 춥다.

 

 

준비한 버스를 타고 샹그릴라(중덴,中甸) 방향으로 달린다. 지지난해 여름 달리던 그 길이라 낯익고 반갑다. 고개를 넘고 나시마을과 나시하이도 지나 드디어 금사강(진사쟝, 金沙江)을 끼고 달린다. 그 여름에 보았던 누런 흙탕물이 이 겨울에는 옥색으로 바뀌었다. 물결도 잔잔하다. 이 넓은 강물이 호도협을 지나면서 장강이 된다. 

 

 

 

 

2시간 정도 달린 끝에 드디어 호도협 입구 챠오터우(橋頭)에 도착한다. 우리 식 발음으로 교두(橋頭), 그야말로 '다리머리' 마을이다. 호도협은 저 정면으로 난 길로 들어가게 된다. 

 

 

 

 

 

샤오중뎬(小中甸)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샛강.

 

샤오중뎬허(小中甸河). 바로 상류의 협곡에 2년 전에 건설되고 있던 호도협댐이 지금쯤 아마도 완공 단계에 와 있을 것이다. 이 강물도 여름과는 달리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맑게 흐르는 것이 신기하다.

 

 

  

호도협(후타오샤, 虎跳峽) 

중국에서 가장 깊은 협곡의 하나로 윈난 성 리지앙나시족 자치현의 스구(石鼓) 북동쪽에 있다. 양쯔강의 상류인 진사 강(金沙江)이 이곳에 이르러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흘러가므로 '양쯔 강에서 으뜸 가는 물굽이'라고 불린다. 협곡의 길이는 16㎞이다. 오른쪽 기슭에 있는 위룽쉐산(玉龍雪山)의 주봉은 높이가 해발 5,596m에 이르며, 왼쪽 기슭의 중뎬쉐산(中甸雪山)은 해발 5,396m이다. 양 기슭 사이에 있는 물길의 너비는 30~60m에 불과하다.

호도협의 상류 쪽 입구는 해발 1,800m, 하류 쪽 입구는 해발 1,630m에 있다. 양쪽 기슭에 늘어선 봉우리와 수면의 고도 차이는 2,500~3,000m로, 골짜기 언덕은 험준하고 가파라서 성대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골짜기 안의 하천은 하류 쪽으로 흘러내리면서 7개의 험한 비탈을 잇따라 지나게 된다. 물의 낙차는 170m이며 물살이 용솟음치면서 솟아오르고 몇 리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깊고 큰 협곡의 하나로 꼽힌다. 옛날에 산이 무너져 흐름을 막았는데, 지금도 무너져내린 흔적을 볼 수 있다.
- 출처 :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

  

 

 

호도협 트레킹 지도 

 

 

 

               <첫   날> 챠오터우-나시GH : 90분, 나시GH-28Bends 정상 : 90분, 28Bends-차마객잔 : 70분             

               <둘쨋날> 차마객잔-하프웨이GH : 90분, 하프웨이GH-티나GH : 90분  

 

 

 

식수를 준비하고, 차도에서 벗어나 언덕 위 산길로 접어 들며 트래킹은 시작되었다. 이 길은 호도협 건너편의 위롱쉐산을 우러러보며 걷는 산 허리로 난 오솔길인데, 하프웨이(Half way)라는 어색한 이름이 붙어 있다.

 

 

 

 

진사지앙(金沙江)과 샤오중덴허(小中甸河)가 만나서 왼쪽에 있는 호도협으로 흘러들며 장관을 만든다. 밭에는 희고 붉은 꽃을 피운 푸른 완두콩으로 덮였다.

 

 

 

 

길은 거의 오솔길 수준인데, 말굽에 패여서인지 풀썩풀썩 일어나는 미세한 흙먼지로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다. 우리 일행을 따라 현지 마부들이 말을 끌고 뒤를 따른다. 우리가 말을 탈 때까지... 언덕 위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멀리 위롱쉐산의 장엄한 풍경이 떠오른다.  

 

 

 

 

호도협 골짜기는 하류로 갈수록 점차로 좁아지고

 

 

  

 

위룽쉐산은 가까워지며 더욱 장엄하게 다가선다.

 

 

 

 

잠시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잡은 마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을 이름은 장생촌(長胜村)이란다. 호도협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쉬어간다는 나시 패밀리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마을이다.

 

 

 

 

봄이 가까이 왔다는 듯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을을 지나는데 앞서가던 일행의 종적이 끊겼다. 산으로 오르는 길과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 갈림길 어느 쪽으로도 일행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침 나타난 마을 소년을 붙들고 서투른 중국말로 종적을 알아 보려는데 나시족이라 말이 통하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마을로 되돌아 들어가 나시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가 보니 거기서 이미 일행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지 않느냐...

 

휴~.  반찬도 국물도 없는 볶음밥을 먹는다. 밥알이 너무 퍽퍽해서 물만 연신 들이키는데, 동행들은 뜻밖에 밥그릇을 싹싹 비워버리지 않는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 여기서부터는 완만하게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말들이 일으킨 먼지 가득한 언덕에 잎새 하나 없이 흰 꽃 한송이가 피었다. 솜나물 닮은 꽃...

 

 

  

 

그리고 대극을 닮은 꽃도 만난다. 우리 나라에는 없는 종류다.

 

 

 

그리고 붉은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매자나무 종류. 온 산 언덕을 덮다시피 흔한 나무다.

 

 

 

 

여기서 잠시 휴식. 이곳을 지나며 가장 험한 오르막길, 이른바 28BENDS라는 오르막 28 굽잇길이 시작된다.(자료에 따라 24BENDS라고도 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말을 몇 사람밖에 타지 않았는데도, 빈 말들을 몰고 계속 따라오고 있다.

 

병규씨가 모두 말을 타기를 권유한다. 저렇게 따라온 사람들 하루를 공치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거다. 나를 포함 몇 사람 빼고는 모두 말을 타기로 한다. 호도협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만해도 추웠는데, 여기서는 겉옷을 벗어제끼고서도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3000m에 가까운 고지이어선지 숨이 가쁘다. 무엇보다도 말들이 일으키는 먼지 때문에 괴롭다. 그냥 말을 탈 것을 그랬나 싶게... 

 

 

 

 

어쨌거나 28밴드를 오르고 나니 한숨을 돌린다. 말들은 돌려보내고. 여기서부터는 평탄한 길과 내리막길이고, 게다가 그늘이라 마치 산보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위롱쉐산은 바로 이마에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

 

 

 

낯달이 위롱쉐산의 두 봉우리 사이에 떠 있지 않느냐...

 

 

 

그리고 저 아래 협곡으로 보이는 호도협의 그 유명한 바위. 호랑이가 저 바위를 징검다리로 협곡을 건너 뛰었다 한 바로 그곳.

 

 

 

   무슨 열매일까...

 

 

  

호도협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나 있는 로우패스

 

 

 

만병초도 자주 눈에 띈다.

 

 

 

 

장엄하게 다가서는 위롱쉐산

 

 

 

 

저녁에 머물게 될 차마객잔이 멀리 보이고

 

 

 

 

이마에 닿을 듯 더욱 가까워진 위롱쉐산

 

 

 

 

그리고 그림처럼 나타나는 차마객잔(茶馬客棧)

 

 

 

 

  숙소 차마객잔은 호도협 건너 위롱쉐산을 우러러보는 곳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이다.

 

 

 

 

차마객잔의 앞마당에서 위롱쉐산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우리 뒤를 이어 여러 나라 많은 여행객들이 이 집으로 들어선다. 같은 길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라 좀 반가운가. 들어설 때마다 박수로 환영하곤 한다.

 

그런데 맨 처음 들어선 사람들이 이스라엘인임을 확인하고 우리 일행들의 표정은 눈에 띄게 냉랭해진다. 그애들 앞에서 그 애들이 못 알아듣는 우리말로 욕설도 하고... 못 알아들어도 눈치까지 없겠는가.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잠시 쉬지도 못하고 지나쳐 갔다. 

 

 

 

위롱쉐산의 일몰

 

 

 

 

 

저녁은 백숙으로 먹는다. 살갗이 푸른 이곳의 토종닭으로 마늘까지 넣어 만든 한국식 백숙의 맛은 훌륭하다. 투명하면서도 향기가 코를 강렬하게 자극해 우리끼리 '신나'라고 불렀던, 누룩내 나는 독한 술을 많이도 마셨다. 시끄럽게 놀아도 되는 편한 시간,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노래도 부르며...

 

 

 

 

그런데 우리는 눈덮인 위롱쉐산이 우두커니 내려다보는 어둠에 잠긴 호도협 외딴 객잔 마당에서 어째서 80~90년대의 노래들을 불러야했던가. 내 땅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에서 말이다... 

 

그날은 오리라,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그날은 오리라, 해방으로 물결 춤추는

벗이여 고이가소서, 투쟁으로 함께하리니.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두움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그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아, 그러다가 나도 알 수 없는 격한 정서에 빠져들며 게스트하우스 벗어난 공터에 퍼져 앉아서 긴 시간 어둠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