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3

강릉 선교장 (2) 족제비가 점지해준 명문 사대부가 가옥의 품격

활래정을 지나니 바로 선교장의 너른 마당 너머로 시원스런 풍경이 펼쳐진다. 낙락장송 적송숲이 울을 두른 낮은 산줄기를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기와집들이 강릉 최고의 명문 사대부 가옥의 위엄과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1748년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1703∼1781)이 족제비의 점지를 받아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어느 날 족제비 몇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중엔 한 떼를 이루어 서서히 북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보고 신기하게 여긴 이내번은 그 뒤를 쫓았고 서북쪽으로 약 2.5리(약 1km)가량 떨어진 어느 야산의 울창한 송림 속으로 족제비 무리가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신기한 생각에 한동안 망연히 서있던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주위를 살피고는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명당이..

강릉 선교장 (1) 월하문 지나서 활래정으로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을 듯 맑은 공기에 따사로운 햇살 내리는 2월 하순, 강릉 배다리마을 선교장을 찾는다. 정확하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번 방문이 다섯 번째쯤 되지 않을까 싶다. 경포호가 이곳 선교장에까지 이어져 있어서 배를 타고 건너 다녔는데, 그래서 이 마을은 배다리마을(船橋里)로 불렸고 이 집의 이름도 선교장이라 불린 것이다. 선교장은 강원도에서 가장 넓고 큰 민가 주택으로 만석군으로 불렸던 전주 이씨의 호화 주택이다. 선교장에 터를 잡은 이는 효령대군의 11세손인 이내번. 경포대 주변 저동에서 살고 있던 그가 족제비떼를 쫓다가 이곳 시루봉 산줄기에 근하게 안긴 천하의 명당을 발견하고 짓게 되었다 한다. 그 뒤로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고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들어서면 제일 먼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