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3

합천 황계폭포에서 남명과 문무자의 발자취를 만나다

까마득히 칼 능선을 이루는 산세와 아늑하게 넓은 황매평전을 바라보며 동료들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매평전에 여러 갈래의 큰길이 나고 포크레인으로 파헤쳐 인공 시설을 만드는 걸 보면서 심란해짐을 어쩔 수 없다. 나라가 온통 삽질공화국이 되니 이 멋진 심심산골의 고원까지도 인공 조림과 시설물로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황매산을 본 다음 황계폭포로 가기로 한다. 꽤 훌륭한 폭포이지만 지역 내에서만 알려져 있을 뿐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차황에서 하금으로 난 새 도로를 따라 합천호 곁을 지난다. 합천호를 보지 않은 사람들인지라 몹시 궁금해 하는데, 사실 합천호만큼 흉물은 없어 보여 주기가 민망하다. 주변 산들이 사질 땅이어선지 합천호는 좀처럼 물이 가득찬 모습을 보여 주..

남명 선생의 발자취 (2) : 산천재, 그리고 남명기념관

남명 선생의 발자취 (2) 산천재, 그리고 남명 기념관 2007. 01. 04 산천재(山天齋)는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덕산 사리마을의 끝 덕천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이 벼슬에 뜻을 품지 않고 61세되던 1561년(명종 16)에 사리에 내려와 11년 뒤 돌아가실 때까지 후진 양성에 몰두하던 곳이 바로 산천재이다. 당시 남명 선생의 제자로는 임진왜란 당시 유명한 의병장이었던 곽재우를 비롯하여 오건, 정구, 김우옹, 최영경, 조종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선생이 거처했던 김해의 산해정·삼가의 뇌룡정등이 있으나 만년에 거처했던 산천재가 조식 선생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다. 산천재는 1561년(명종 16년)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방치되다가 1817년(순조 17년)에야 복원되었다고 한다...

남명 선생의 발자취 (1) : 덕천서원(德川書院)

남명 선생의 발자취 (1) 덕천서원(德川書院) 2007. 01. 04 산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식사도 미룬 채 지리산의 한 자락인 밤머리재를 넘어서 덕산으로 향한다. 오전에 남명 선생의 흔적을 살펴본 다음 정취암과 율곡사를 들러서 서울로 향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덕산에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장이 섰다. 장 구경은 덕천서원을 둘러 본 다음 하기로 한다. 덕산에서 다리를 건너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남명 선생의 시조비이다. 두류산 양단수(頭流山 兩端水)를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겻세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이 시조는 남명 선생이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은둔 생활하면서 쓴 것인데, 이 시기에 씌어진 또 다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