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일본 여행 (11) 조선인 20만 명의 코무덤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토요쿠니신사

모산재 2006. 1. 22. 23:12

 

일본 여행 (11) 교토타워-33간당-이총(코무덤)

교토, 2006. 01. 13

 

 

 

금각사에서 교토역으로 이동한 후 산주산겐도(33간당)를 찾느라고 잠시 역 주변을 방황하다. 역에서 가까운 줄 알았는데 가쓰라가와라는 강의 지천을 하나 건너 15분 정도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까이 지하철이 연결되는 곳이었다.

 

 

JR 교토역, 킨테츠 지하철 교토역이 함께 있다. 참신한 건축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 교토타워

 

높이 131m 되는 전망대이다. 각종 위락 시설이 있다.

 

 

 

 

●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교토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절 앞에 해자가 보인다. 뒷편 서쪽으로 니시혼간지와 이어지는 절인데, 일정이 부족해 들르지 못했다.

 

 

 

원래는 하나의 절이었지만 도쿠가와 바쿠후가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나누어 버린 것이라고 한다. 절의 본당이 도다이지보다 큰 일본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 보수 공사중인 모양이다.

 

출처 : 엔하위키 미러

 

 

이 절에는 여신도들의 머리카락을 짠 밧줄이 모셔져 있는데, 건물을 지을 때 목재를 들어올릴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 산주산겐도(33간당)

 

가쓰라가와 강을 건너고 물어물어 찾아간다.

 

가는 도중 하교하는 여학생들 치마를 아주 짧게 입은 모습이 많이 보인다. 10분을 더 걸려서야 도착하니, 웬걸 문을 닫고 있다. 매년 1월 16일에 열린다는 활쏘기대회까지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표정이 모두 다른 1000개의 천수관음상이 있다는, 돌아보노라면 보고 싶어하는 얼굴 하나는 반드시 만난다는 천불당을 보지도 못하고 아쉽게 돌아설 수밖에 없다. 1000개의 관음상도 있지만 본당 가운데 있는 국보인 큰 관음상과 양쪽에 있는 역시 국보인 천둥신과 바람신도 있다는데...

 

인터넷 자료로 아쉬움을 달래고...

 

 

천수관음상

 

 

 

활쏘기대회 모습

 

출처 : 구글 검색

 

 

 

● 도쿄국립박물관

 

33간당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도쿄, 나라와 함께 3대 국립 박물관이다. 1만여 점의 보물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시간이 부족하여 돌아보기를 생략하고 이총(코무덤)을 찾아가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대부분 모르는데, 한 노인분이 길을 안내해주어서 찾다. 박물관을 지나 찾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곳을 만나는 데 바로 토요토미를 모신 신사이다.

 

 

 

● 토요쿠니신사(豊國神社)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시는 신사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이총까지 거리가 100m가 채 되지 않는데, 바로 눈 앞에 이총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마음이 착잡했다. 이총과는 아래에 보이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사진 찍은 위치가 코무덤쪽)

 

 

 

 

● 코무덤(耳塚), 혹은 미미즈카

 

바로 풍국신사를 올려다 보는 위치, 뒤집어 말하면 풍국신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의 명령으로 왜군에 의해 전리품으로 베어진 20여 만 명의 조선인들이 코가 묻혀 있는 무덤이다. 임진왜란의 비극과 상처를 증언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 사람의 코가 185,738개, 명나라 사람의 코가 29,014개, 모두 합쳐 214,752개가 묻혀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의 명령으로 조선인의 코와 귀를 소금에 절이게 한 후 커다란 무덤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미츠카(耳塚)또는 하나츠카(鼻塚)라 불려지다가 현재는 미미츠카(귀무덤)로 불리는데, 이에야쓰가 '코무덤'이 너무 잔인하다하여 '귀무덤'으로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시는 토요쿠니(豊國)신사 바로 정면에 귀무덤을 만든 이유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여기고 전리품으로 이 묘소를 만들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후 베어간 조선인의 귀와 코를 일본 전국을 돌며 한바탕 시위를 벌인 후 여기에 묻었다고 한다.

 

 

 

 

※ 일어 안내문 아래의 한글 안내문

이 무덤은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이른바 분로쿠(文祿) 게이초(慶長)의 역(한국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1592-1598)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에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행됐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귀 무덤(코 무덤)의 유래이다. 귀 무덤(코무덤)은 사적 오도이 토성 등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관련 유적 중의 하나이며, 무덤 위에 세워진 오륜 석탑은 1643년에 그려진 그림지도에도 이미 그 모습이 나타나 있어 무덤이 축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건됐다고 추정된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코와 귀를 잘린 원혼들이 수백년이 지나도록 이국 땅에서, 그것도 원흉을 모시는 신사 앞에서 가위 눌린 채 떠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원혼들에게 임진왜란은 현재진행형이리라.

 

이곳을 찾았던 어느 분이 쓴 글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도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별로 재미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놀러와서 이런 곳까지 들러 '기분 잡치고' 싶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