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보물 제93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모산재 2017. 7. 18. 22:43

 

여행 마지막날, 일어나자마자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용미리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을 보러 출발!

 

 

 

98번 도로로 들어서자 맞은편 야산 중턱 솔숲에 우람하게 선 석불 2존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에서도 투박한 얼굴 모습이 또렷한데 나란히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진다. 

 

 

파주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長芝山), 석불상 아래에는 용암사(龍岩寺)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다.

 

 

 

 

일주문 아래 주차장

 

 

 

 

 

용암사 일주문

 

 

 

 

 

쌍미륵불이 있어서 '쌍석불사'라고도 하는 용암사. 조계종 사찰로 봉선사의 말사이다.

 

쌍미륵불이 조성된 11세기경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전란 등으로 소실된 채로 있다. 1936년 옛 절터 위에 새롭게 중창되었고, 1979년에 대웅전, 1984년에는 범종각을 세웠지만 1997년에 대웅전이 붙타고 2004년 대웅전을 다시 세웠다 한다.

 

 

용암사 대웅전

 

 

 

 

 

절마당 두 석등에는 박정희 이름으로 각각 "국태민안 위하여 천일기도 광명등" "구국통일 위하여 천일기도 광명등"이라 새겨 놓았다.

 

 

 

절마당 끝 범종각의 범종(높이 197cm, 종입구 115cm). 봉덕사종을 본뜬 모습이다.

 

 

 

 

 

대웅전 서쪽, 삼성각 옆에는 아담한 동자불상과 칠층석탑이 눈길을 끈다.

 

 

 

 

 

사이에 새겨둔 기록을 보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쌍석불에 기도하여 이승만을 낳았고 이승만 또한 1954년 쌍석불을 참배하여 이를 기념하여 쌍석불 어깨 뒤에 세웠던 것인데, 문화재 훼손 여론으로 1987년 철거한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유린한 이승만과 박정희 두 독재자의 흔적을 보고 나니 뒷맛이 쓰다.

 

 

 

대웅전 법당 안에서는 무슨 재를 올리고 있는지 날라리까지 불며 시끄러운 의식을 치르고 있다. 

 

 

 

 

 

 

대웅전 뒤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애이불입상에 다다르게 된다.

 

 

 

용미리 석불입상에 얽힌 전설

 

 

 

 

11세기 말,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

 

 

 

 

2~3분 오르자 이내 솔숲 한가운데 하늘을 이고 서 있는 우람한 불상 2존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바위 암벽을 깎아내고 몸을 새기고 봉우리를 깎아 얼굴과 모자를 올렸다.

 

높이는 17.4m. 둥근 갓을 쓴 왼쪽 부처는 남자, 네모 갓을 쓴 오른쪽 부처는 여자라 전해진다.

 

 

 

 

 

왼쪽 남자 부처는 가슴에 두 손으로 연꽃을 쥐고 있고 오른쪽 여자 부처는 합장하고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다보니 신체 비율은 맞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연스런 맛이 느껴진다. 통일신라 시기의 세련되고 원숙한 멋 대신에 고려 지방 호족의 투박한 맛이 느껴진다.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드는 수법은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5호)이나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에서도 보이는 양식이다.

 

머리 위에 갓이나 천개(天蓋)를 씌우는 것은 눈이나 비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특히 유행하였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이나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 등에서 볼 수 있다.